20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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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서재를쌓다 2015. 7. 30. 23:32
동생은 박웅현 빠순이다. 어디서 박웅현을 알아와서는 를 매일 들고 다니며 읽었다. 모든 부분이 좋다고 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박웅현이 나온 팟캐스트를 같이 듣자고 했다. 집에서 둘이서 낮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술도 들어갔으니, 좋다고 듣자고 했다. 박웅현이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건 우리 둘에게 필요한 거였다. 내가 말했다. 다시 들어보자. 방금 자존감 부분. 다시 들었다. 다시 들어도 좋았다. 다시 들어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였다. 동생이 물었다. 한번 더 들을까?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가 우리는 그 부분을 녹음하기로 했다. 동생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들을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어느 쓸쓸한 귀가길에 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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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 첫 산책여행을가다 2015. 7. 26. 20:20
323호에 묵었다. 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 나인지라 포르투갈에서도 잘 잘거라 생각했다. 시차 생각을 못했고, 혼자라는 생각을 못했다. 처음엔 시차 때문인지 모르고 왜 이렇게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포트루갈의 밤이 한국의 낮이었으므로 잠이 오질 않아도 심심하진 않았다. 수시로 동생들과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내일을 위해 이제는 정말 자야 한다며 커튼을 치고, 스탠드 불도 끄고, (무서우니까) 알아듣지 못하는 텔레비전만 켜놓고, 누우면 그제서야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들었고 이른 아침이면 깨어났다. 잠이 많은 내가 그렇게 벌떡 일어날 수 있었던 건 혼자이기 때문에. 깨어줄 사람도 없고, 나가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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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 도착여행을가다 2015. 7. 21. 22:47
마침내, 리스본에 도착했다.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동안 공항에서 기다리고 또 3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나는 두 번 시간을 고쳐야 했던 거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번, 리스본에서 한 번. 손목시계의 오른쪽 버튼은 건전지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는 한 뽑아 들 이유가 없었는데. 무려 하루에 두 번이나 오른쪽 버튼을 들어올려 시간을 고쳤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긴장했다. 원래 리스본 공항에 떨어지기로 한 시간은 22시 50분. 이 시간에 정확하게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더랬다. 버스는 없고, 지하철이 있는데, 내가 과연 시간 지체없이 갓 도착한 도시에서 지하철을 제대로 갈아 탈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이건 환승 다음으로 내게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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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비행기에서여행을가다 2015. 7. 19. 14:27
이름이 M이라고 했다. 짐을 올리고, 옆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있다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혼자세요? 사진을 전해주려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 M씨도 처음 말을 걸 때 두근두근했다고 했다. 제발 한국사람이기를, 혼자이길, 바랬다고 한다. 덕분에 프랑크푸르트까지 심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얘기도 하다가, 같이 밥도 먹다가, 각자 영화도 보다가,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M씨는 독일에서 하룻밤 묵고 크로아티아로 간다고 했다. 네명이서 같이 여행을 할 예정인데, 카페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행할 도시들을 말해줬는데, 모두 생소한 지명들이었다. 꽤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기로 계획했다고 했다. 그 도시들을 지나갈 네 명의 남녀를 생각했다. 신날 것 같았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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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출국여행을가다 2015. 7. 16. 23:28
포르투갈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과 나는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했다. 동생은 휴가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나는 이번에는 혼자 떠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도쿄가 아니면 포르투갈에 가길 원했고, 나는 도쿄는 지난 가을에 다녀왔으니 포르투갈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경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어차피 카드 할부다. 다녀와서 열심히 일해서 갚아야 하는 것. 선여행 후결제. 동생이 에어텔로 알아봤고, 결제를 끝냈다. 나는 너무 짧은 것 같았다. 동생은 여름휴가는 이것 밖에 내질 못한다고 했다. 나는 유럽의 호스텔에서 친구도 사귀고 싶었다. 동생은 서운하다고 했다. 이 여행상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또 티격태격했다. 늘 그렇듯이. 빠르게 화해를 하며, 우리 이번 여행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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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여행을가다 2015. 7. 13. 02:45
나는 잘 도착했어요. 포르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약간 지연되었지만, 프랑크푸르트에 시간에 맞춰 도착했어요. 환승도 무사히 한 뒤 한국사람들이 북적대는 게이트에서 한국말을 들으며 안도했고, 좋은 좌석에서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맥주, 한 번의 와인을 먹고 마시며 인천에 도착했어요. 공항에는 떠날 때도 배웅해줬던 B가 나와줬고, 낮술을 하며 이런저런 여행 얘기를 나눴어요. 공항버스에 타자마자 쓰러졌고, 집에 도착해서는 매콤한 라면이 땡겨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탄산 가득한 카스 캔맥주를 사와 먹고 마시고 또 바로 쓰러져 잤어요. 주말 내내 잤다 깼다를 반복했고, 오늘은 동생과 삼겹살을 먹으러 나갔어요. 아, 포르투에서 사온 포도주도 한 잔씩 했어요. 포르투갈에서 나는 매일 새벽에 깼고, 세시간 밖에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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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 마침내, 포르투갈여행을가다 2015. 7. 1. 13:14
포르투갈에 가게 됐다. 올해 2주 휴가가 나올 줄 알고, 그때 가려고 했는데 아니여서 포기하고 있었다. 동생이 여름휴가로 가자고 했고, 그래 까짓것 경비는 돌아와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결제를 했다. 그러다 여행을 앞두고 동생이 다리를 접질렀고, 그냥 포기하면 왠지 포르투갈도, 혼자 떠나는 여행도 영영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혼자 가보기로. 지난 일요일에는 마침 씨네큐브에서 가 재상영하고 있어서 친구와 함께 다시 봤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를 궁금하게 만든 영화.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살아온 인생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영화. 의미 있는 생이 시작될 거라는 희망을 건네 준 영화. 믿어지지 않지만 (별일이 없다면) 이번 주 토요일, 나도 그가 여행했던 리스본에 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