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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극장에가다 2014. 12. 31. 23:43

     

     

     

        와, 근사했다. 구름 말이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그 '클라우즈'. '클라우드'가 아니라 '클라우즈'. 스위스의 실스마리아라는 곳에서는 이탈리아로부터 넘어오는 '클라우즈'들을 만날 수 있는 깊은 협곡이 있다. 구름들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는데, 이 깊은 협곡을 넘어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꼭 파도 같다. 그러니까 산의 파도라고 해야 하나. 강의 파도라도 해야 하나. 영화에 언급되는 것과 같이 뱀 같기도 하다. 거대한 구름뱀. 구름들이 살아 있는 뱀처럼 협곡을 지난다. 부드럽고도 강렬하게. 지난 토요일,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기 전, 미용실에 갔다. 늘 가는 이태원의 미용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언니 혼자서 운영을 했는데, 너무 바빠서 그런지 인턴 한 명이 들어왔다. 친구가 이태원에 살 때 다니기 시작했으니 3년 즈음 된 것 같다. 이 미용실 언니는 드라이도 자연스럽게 해주고, 손님의 취향을 잘 알아서 내게는 말을 잘 안 건다. 그래서 좋았다. 동생이랑 같이 미용실을 다니는데, 동생에게는 정말 쉴 새 없이 말을 건다고 해서, 사람을 잘 파악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날은, 여느 날처럼 말이 없다가 갑자기 말문이 터졌다. 물론 주인 언니가. 그러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맙소사 동갑이었다. 그러다 새해도 다가오고 서로에게 이런저런 일이 있고,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 그 주인'언니'가 그랬다. 우리 마음은 늙지 마요. 물론 뒤에 이어진 말은 그러니까, 연하랑 놀아요. 요즘 연하랑 노니까 에너지가 막 샘솟더라구요, 였다. 어쨌든 그 날의 결론은 우울해하지 말자, 마음만은 늙지 말자, 늙어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늙은 거다, 라는 거였다.

     

        머리를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갔는데, 사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미용실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이다. 20년 전에 젊은 여자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20년 후, 같은 연극의 나이든 여자 역을 제안 받는다. 젊은 여자 역의 이름은 '시그리드', 나이든 여자 역은 '헬레나'. 줄리엣 비노쉬는 처음에는 거절을 한다. 계속해서 제안이 들어오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그 역할을 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는 젊고 아름다운 '시그리'드를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그런 이야기이다. 줄리엣 비노쉬는 '헬레나'를 맡기로 결심하고, 연습을 하고, 무대 위에 서면서 자신의 나이듦을 뼛속까지 느낀다. 그리고 '헬레나'와 마찬가지로 한때 자신에게 있었던 젊음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다시는 자신에게 올 수 없는 그것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 곁에 줄리엣 비너쉬의 젊은 매니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있다. 사실 그녀가 영화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젊음과 나이듦의 장점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헬레나' 줄리엣 비너쉬가 20년 전 자신의 '시그리드'를 마주하는 순간. '시그리드'는 말한다. 아무도 '헬레나'를 신경쓰지 않아요. 그건 시그리드 역을 연기하는 클로이 모레치의 대사였지만, 줄리엣 비너쉬는 그녀에게서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모두 '시그리드'였다가 '헬레나'가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시그리드'들은 자신이 영원히 '시그리드'인 줄 알고, '헬레나'가 되었을 때는 '시그리드'일 때를 기억한다. 누구나 '헬레나'가 되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헬레나'가 된다. 그러니 헬레나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제일 힘들다. 이런 영화를 새해를 앞두고 보았다. 그리고 해를 넘기며 계속 이 영화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은 실스마리아의 뱀처럼, '클라우즈'처럼 가고. 나는 '좋은' 헬레나가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니, 새해에도 노력하고 노력해야 하겠다. 이렇게 2015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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