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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길
    모퉁이다방 2014. 3. 2. 14:18

     

     

         

         토요일. 박노해 사진전에 다녀왔다. 사람이 많았다. 40여 분 줄을 서서 기다려 입장했다. 사람들이 많아 느리게 사진 한 점 한 점 길을 따라 이동했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 옆 시인의 글귀들도 오래 들여다봤다. 사진 길이 너무 막혀 안 되겠다 싶어 사람들을 뛰어 넘으며 사진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백발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왜소한 체구의 할아버지는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로 그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를 만난 뒤로,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사진을 구경했다. 할아버지가 어느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 카메라의 액정에 찍힌 할아버지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봤다. 그러다 전시장의 한 구석에서 사인을 해주고 있는 시인을 발견했다. 반듯하고 커다란 책상 앞에 자신의 사진을 보러 온 사람들을 의자에 앉혀놓고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네며 정성스럽게 사인을 하고 있었다. 시인은 친절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책을 사다 어떤 대화를 엿들었는데, 제목 아래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는 사진이 팔렸다는 거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에 다섯 개가 넘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는데, 그건 이만큼의 가격에 팔렸다는 걸까. 좋았던 다른 사진에는 시인의 이런 글이 있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기울 때쯤이면 누비아(15)는 당나귀에게 풀을 먹이며 밀밭 사이로 '걷는 독서'를 한다. 들꽃의 향기와 밀싹의 숨결과 새의 노래가 낭송의 음경 속에 가만가만 스며든다.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삶을 읽고 세계를 읽고 자기 내면에 쓰여진 비밀스런 빛의 글자를 몸의 여행으로 읽어나가는 '걷는 독서'. 흑백의 사진 속 소녀는 당나귀를 끌며 책을 읽고 있다. 뒤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있고, 아지랑이 같은 햇살이 소녀와 당나귀를 비춘다. 평화롭다. 시인이 2011년 파키스탄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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