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첫 눈 - 인투 더 와일드
    서재를쌓다 2010. 11. 28. 23:48

       조종사는 내 텐트 위를 세 번 빠르게 연속해서 저공비행하더니 한 번 지날 때마다 상자를 두 개씩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졌고 또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침묵이 다시 빙하에 내려앉았다. 아무 힘없이 버려진 채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울음을 멈추고 목이 쉴 때까지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p.274


       첫 눈이 왔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하늘에서 하얀 이물질이 떨어지는데, 그게 바로 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눈이 펑펑 날리고 있었다. 그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돌아왔다. 

        이번 주의 일이다. 아침,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그 때 예감했어야 했는데. 그 날이 아픈 날이 될 거란 걸. 그 날, 밤에도 울었다. 술집 화장실에서, 버스 안에서. 나는 쿨한 여자가 되고 싶은데, 그건 내 소망일 뿐. 사실 쿨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 날, 나는 너무 바보같았다. 상처받았고, 지난 여름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던 나의 믿음들이 무너졌다. 그건 오해였다. 우린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그 시간 이후로 모든 게 틀어졌다. 분명한 건,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였다는 것. 너의 잘못이고, 나의 오해였다는 것. 그 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슬픈 날이었다. 오랜만에 울었다. 

       그래서 이번주는 조금 우울했는데, 정말 다행인 건 그 날 아침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다는 거. 이 책이 나를 위로해줬다. 정말이다. 다름아닌 지금 이 책이 내게 와 주어서, 나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만나주어서, 마침 내가 그 부분을 읽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몇 번이고 책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인투 더 와일드
    존 크라카우어 지음, 이순영 옮김/바오밥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야생의 삶을 살고자 알래스카의 어느 외진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에겐 약간의 식량과 소총, 카메라와 책 몇 권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철저히 야생의 삶을 살고자 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땅 위를 떠돌았으며, 방황했다. 그 방황의 끝을 알래스카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땅이고, 삶이었다. 동경해 왔던 그 무엇이었다. 그는 자신감에 가득찬 채 숲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는 못했다. 남자는 백일을 알래스카에서 살았다. 사소한 실수를 했고, 결국 그 실수로 인해 숲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남자의 이름은 크리스 매캔들리스. 아니,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렉스라고 소개했다. 그건 그가 방랑을 시작하며 자기 자신에게 붙인 새로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기록한 또 다른 남자, 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작가. 그가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이번주 내내 내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내가 읽은 존 크라카우어의 두번째 책인데, 이 책으로 나는 이 사람에게 완전히 반했다. 잔상이 오래 남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야기 속의 그가 숲에서, 산에서 살아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책을 읽고나서 그런 생각들이 자꾸 마음 속을 맴돌았다. 그도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신문에 관련된 기사를 기고한 뒤에도 자꾸 마음에 남아서, 잊을 수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의 흔적들을 찾아서 이렇게 책으로 엮을 수 밖에 없었다고. 책을 읽으면 그런 존 크라카우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가 책 귀퉁이를 접은 부분이 두 군데인데, 둘 다 크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존 크라카우어의 이야기이다. 존 크라카우어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 왜 존이 크리스의 삶에 의문을 품고, 더 깊이 추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건 사실 크리스의 이야기보다, 존 크라카우어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크리스는 죽었고, 두 사람은 생전 단 한번도 마주친 적 없다. 존은 크리스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존도 말한다. 자신의 젊은 시절과 크리스의 삶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고. 

         이 책이 내게 왜 위안이 되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알래스카에서 이상을 실현하다 죽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고, 나는 그 사람이 멀어지고자 했던 그 세상 속에 있다. 이상하게도 책을 읽을 때마다 외롭지가 않았다. 알래스카의 인적 없는 숲에 홀로 있는 알렉스를 떠올리면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곳이 더 외로웠다. 크리스가 살아 나와, 직접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으면, 그래서 내가 지금 그 책을 읽고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더이상 없으니까. 책 속에서만 존재하니까. 길 위에서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에게 반했다. 그래서 마지막 한 장의 사진에 가슴 아팠다. 존 크라카우어의 표현이 맞다. 그는 행복해보인다. 평화로워보인다. 


       단단하지 못한 깃털 성에를 보니 그 마지막 6미터를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무섭고 성가실지 알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가 갑자기, 더는 올라갈 곳이 없었다. 내 갈라진 입술이 벌어지며 힘겨운 미소로 변했다. 나는 데블스 섬의 정상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은 초현실적이고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늘고 뾰족한 바위와 성에는 넓이가 서류 캐비닛 정도였다. 어슬렁거리며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지점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고 보니, 남쪽 절벽은 내 오른쪽 신발 아래로 760미터 이어져 있었고, 왼쪽 신발 아래로 북쪽 면은 그 길이가 두 배였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 몇 장을 찍고 액스의 굽은 끝을 똑바로 펴기 위해 낑낑거리면서 몇 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방향을 돌린 다음 캠프로 향했다.
    p.29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