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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스카니의 태양 - 길을 떠나는 당신에게
    극장에가다 2009. 8. 4. 21:59
     


        길을 떠나는 당신에게 짧은 답장을 쓰다, 이 영화가 생각났어요. 이동진 기자의 칼럼에서였을 거예요. 이 영화를 소개한 글을 읽었는데, 당장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거예요. 그런데 디비디는 모조리 품절이고. 어떻게 봐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다, 케이블 방영예정 리스트를 뒤적거렸어요. 그러다 스토리온에서 방송해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날, 그 시간만을 기다렸죠. 역시 내 인생은 잠 때문에 망할 거예요. 자느라고 중간부분까지 다 놓친 거예요. 벌떡 일어나 땅을 치며 후회하면서 뒷부분을 봤는데, 영화 배경인 투스카니가 그렇게 멋진 거예요. 내가 다이안 레인의 외모를 사랑한다는 얘기 했나요? 난 아직도 <언페이스풀>을 케이블에서 해 주면 몇 번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멍 때리고 다시 보는 사람이거든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도 다이안 레인은 너무나 예쁜 거예요. 더군다나 직업이 작가래요. 난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타자기나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오케이거든요. 아무튼 그랬죠. 그래서 뒷부분만 봤는데, 이번에 <렛미인> 책을 주문하다 이 영화 디비디가 입고된 걸 발견하고 그 날 생각이 나서 눈 딱 깜고 주문했어요. 난 지금 궁핍하니까, 눈 딱 감아야 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보게 된 거예요. 투스카니의 태양. 

         이 영화가 2004년 4월에 개봉했다고 되어 있으니까, 흠. 2004년에 내가 이 영화를 봤다면, 엉엉 울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난 그 때 멍청했으니까요. 딱 하나만 보고 있었으니까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이혼을 당하면서, 위자료를 되려 '주'고, 맨날 큰소리로 질질 짜는 남자의 옆방으로 이사를 와, 써지지도 않는 원고나 붙잡고 있고. 그 우아한 외모의 다이안 레인이 말이죠. 그러고 있단 말이예요. 그러다 프란시스(다이안 레인의 극  중 이름이예요)의 절친 산드라 오가 이탈리아 고급 여행 티켓을 선물해줘요. 실연의 아픔일랑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와라. 여행하는 사람들이 다 게이니, 아주 깊숙한 내면의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시스는 여행 중 한 마을에서 어떤 여자의 표정에 반하고, 어떤 집에 반해서 그곳에서 머무르기로 해요. 남편에게 위자료 주고 남은 전재산으로 투스카니에 허물어져 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기품있는 집을 마련해요. 그리고 그 집을 꾸미는 거예요. 벽을 헐고, 여기저기 수리도 하고. 그러니까 프란시스는 아주 길고 깊은 내면의 여행을 하는 거예요. 자신의 마음 속 벽을 허물고, 그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페인트칠도 하고, 예쁘게 꾸미고, 아파서 삐걱대는 곳들을 수리하고. 그리고 결국 사랑이 찾아 왔을까요? 아니예요.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좋아요. 사랑이 찾아 온 거 아니라, 행복한, 온전한, 괜찮은 '나'를 다시 찾은 거예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한 마을 안에서. 사랑을 찾은 게 아니라,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나'를 찾은 거예요. 이 영화가 멋진 이유가 그거예요. 

        영화가 아주 예뻐요. 이탈리아의 풍광이 아주 예뻐서, 하나도 꾸미지 않았는데도 빛이 나요. 언젠가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예요. 나는 이제 실연의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를 보여 주고 싶어요. 이제는 <봄날은 간다>처럼 아픈 걸 더 아프게 만드는 영화를 보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이런 예뻐지는 영화를 보여줄래요. 돈까스를 먹이고, 시원한 캔콜라를 따서 주고, 그 아이가 담배를 필 줄 안다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이불집에 갈 거예요. 예쁘고 따뜻한 이불을 사서, 가까운 디비디 방에 갈 거예요. 내가 가져간 <투스카니의 태양> 디비디를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새 이불을 펴서 함께 볼 거예요. 디비디방을 들어가기 전에는 비가 오고, 나온 뒤에는 비가 그치면 더 좋을 텐데. 그러면, 실연의 상처 따위 조금 쉽게 잊혀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예전에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에이. 왜 좋은 건 늘 늦게 발견하게 될까요. 그러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요. 영화 속 다이안 레인처럼 씩씩하고, 아름답게 그 길을 걷다 와요. 허물어야 될 벽이 있으면, 허물고, 고쳐야 될 마음이 있으면 망치질도 하구요. 예쁜 색으로 페인트칠도 해요. 그 곳의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구요. 그 곳의 좋은 공기도 많이 마셔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씩씩한 '당신'이 되어서 돌아와요. 알았죠? 건강히. 아름답게. 프란시스처럼. 투스카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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