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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도 걸어도 -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리지만,
    극장에가다 2009. 6. 21. 10:54
     


        영화를 보다 깜짝 놀랐다. 장남의, 첫째 형의 기일에 맞춰 모인 가족들. 둘째 딸네가 먼저 떠나고, 부모님과 막내 아들 가족네와의 저녁상. 메뉴는 장어덮밥. 어머니는 밥을 먹다말고 가끔 혼자서 듣곤하는 LP 한 장을 꺼내 온다. 그리고 아들에게 한 번 틀어보라고 한다. 지지직거리며 시작된 노래. 그 노래는 영화 속 어머니의 아픔의, 추억의 노래이기도 하고, 나의 추억의 노래이기도 하고, 노래 속 가사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건 모두 10년 전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는 10년 전에 아들이 죽었고, 나는 10년 전에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10년 전, 우리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친구는 일어수업을 갓 듣기 시작했다. 쉽고 간단한 일본 노래들을 수업시간에 배워왔는데, 하나는 토토로의 주제곡이었고, 또 하나가 이 곡이었다. 블루 나이트 요코하마,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제목도 블루 나이트 요코하마인지는 모르겠다. 친구는 학교 잔디밭을 걸을 때, 일어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 학생회관으로 향할 때, 이 노래를 종종 불렀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외웠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는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로 바로 이어졌는데,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어보니, 그건 내가 기억하는 부분과 멜로디만 따로 떼어내어 부른 거였다. 덕분에 나는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을 일어로 하면,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라는 걸 일어사전도 찾아보지 않고 알았다. 

       영화는 따스했지만, 슬펐다. 감독이 부모님을 여의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누구고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될 영화였다. 아름다운 여름의 풍경을, 아름다운 바다의 파도를 엿볼 수 있는 영화다.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테니깐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아름다운 여름의 바다에 자식을, 형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이 영화는 아픈 영화다. 부모가 자식을 품에 묻고 살아간다는 건, 나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동생 또한 그런 형에 대한 기억과, 그러한 부모님을 마주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일이거다. 나이든 부모는 집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늙어보인다. 좋은 영화였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외할머니는 남쪽 바다가 있는 고향에서 미숫가루를 커다랗게 한 박스 보내주셨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전화를 하셔서 아침에 꼭 먹고 나가라, 양이 많으니 냉장고에 꼭 넣어두라고 당부하셨다. 나도 할머니에게 손녀딸이 운전하는 자가용에 태워드려야 하는데, 일년에 몇 번이고 찾아뵈야 하는데, 영화 속 그이처럼 그러지 못하고, 꼭 뒤늦게 후회를 하게 될까봐. 딸네와 아들네가 고향집을 빠져나오며 하던 무심한 대화들이 생각나 슬퍼진다. 그건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어진 아들의 나래이션. 영화는 모두들 하나씩의 죽음을 간직한 이들이 한집에 모이면서 시작한다. 어떤 이는 아들을 잃었고, 형제를 잃었으며, 어떤 이는 남편을 잃었다. 어떤 이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모여 한 가족이 되었다. 겨우내 죽지 않은 흰 나비는 해를 넘기며 노랗게 변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나비는 흰 나비일까? 노란 나비일까? 영화는 또 다른 죽음으로 끝이 난다.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조금씩 늘어가는 죽음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는 거겠지. 영화 속에는 10년 전에 죽은 아들이 있고, 내게는 10년 전에 시작된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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