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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소나타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극장에가다 2009. 3. 21. 02:0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우선 엔딩크레딧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영화는 계속된다. 화면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소리는 이어진다.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 사람들이 소곤대는 이야기 소리, 피아노 소리. 피아노 뚜껑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나면 영화가 온전히 끝난다. 그 엔딩크레딧을 가만히 보고, 아니 듣고 있는데 어제 다이어리 귀퉁이에 적어두었던 저 구절이 떠올랐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금요일 저녁. 약속은 없었지만,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 극장에 갔다. <도쿄 소나타>를 혼자 본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혼자 봐야 한다. 혼자 보고, 혼자 나와서, 혼자 전철을 타고, 혼자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혼자 집에 돌아와야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의 어떤 감정(이걸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여운을 혼자 즐겨야 하는 영화다. 그러니 이 영화는 되도록 혼자 보시길.

        일단 카가와 테루유키에 대한 나의 애정을 고백한다. 나는 <유레루>에서 그에게 반했다. <유레루>는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오다기리 죠를 보기 위한 영화였지만, 난 그 영화에서 카가와 테루유키라는 보물을 발견했다. 그는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뒷모습으로 연기하는 배우니까.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마지막 테루유키의 눈물은 그야말로 눈물이 눈물을 부르는 것이다. 사실 난 그전부터 이미 울고 있었는데(난 울보니까), 서서히 눈물이 고이고, 곧(흐르지는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넘쳐날 것만 같은 테루유키의 눈을 카메라가 비춰주는 동안 내 눈물은 넘치고 넘쳐 목에까지 줄줄 흘렀다. 또 내가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이야기지. 뭐.  혼자 보길 더더욱 잘했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이 집의 막내 켄지가 '드디어' 피아노를 연주한다. 켄지는 영화 내내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는, 배우고 나서는 무척이나 소질이 있는 천재 소년으로 등장하지만, 켄지의 피아노 연주가 소리'내어'지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 딱 한 장면 뿐이다. 그 전에 켄지는 피아노 교습을 받는 아이를 멀리서 훔쳐보고, 아빠에게 피아노를 배우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리나지 않아서 버려진 건반을 주워오고, 그 건반으로 몰래 다니는 피아노 교습이 끝나면 혼자 방에서, 그러니까 켄지의 국경 안에서 연습한다. 소리나지 않는 건반으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켄지가 천재 피아노 소년이라는 걸 내가(혹은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건 켄지의 피아노 연주 실력 때문이 아니라 켄지의 피아노 교습 선생님이 '너는 아주 많이 재능이 있어'라고 하는 말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상영시간이 2시간여에 가까워질 무렵, 켄지가 연주를 시작한다.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곡이다. 이 영화가 그 곡만을 위해 달려왔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실직하고, 외롭고, 혼자 있는 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한 우리들. 그래, 난 당신을 잘 모르니까. 이건 내 이야기다. 영화 중간중간에 도쿄 전경이 멀리서 보여지는 씬들이 있다. 그저 도쿄(도쿄가 맞을 거다. 제목이 도쿄 소나타니까)를 아주 멀리서, 훤히 내려다보이게 잡는 씬이다. 그 장면이 영화 속에서 두 번인가 세 번 나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찡해졌다. 감독이 다정하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묻고 있는 듯 해서. 그러니까 '모두들 잘 살고 있습니까?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모두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혼자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한양대를 넘어서부터 지상 위로 올라가는 전철의 창밖 야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도쿄의 전경이 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감독의 질문도. '당신, 괜찮은 거예요? 역시 힘들죠? 사는 건'. 

        영화의 클라이막스. 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켄지의 피아노 연주라기보다는 세 가족이 각자 '힘든' 밤을 보내고 '결국', 그리고 '드디어'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꿀맛 같은 밥.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게 되어 있는 이름, 가족. 그리고 우리들의 집. 그 힘겨운 밤을 보내는 동안 코이즈미 쿄코와 카가와 테루유키, 그러니까 켄지의 엄마와 아빠는 몇 번을 이렇게 읊조린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쿄코의 대사는 압권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이 모두 꿈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눈을 감고 다시 뜨면,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역시나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난 기억력 별로 없는 여자). 나는 쿄코의 '다시 시작하고 싶어'라는 대사를 그대로 도려내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래서 그 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화면보다 자막을 또렷하게 바라봤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도쿄 소나타>는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실직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건너편에서 두 손을 잡아주며 나를 일으켜줄 이가 없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노만은 배우고 싶다는 희망. 내내 절망이었던 영화가 온통 희망이라는 단어로 뒤덮히는 순간은 아름다운 켄지의 피아노가 연주되는 순간. 그 음악에 제일 감격했던 사람은 바로 그의 아빠. 하루 아침에 회사에서 잘리고, 친구를 잃고, 세상에 있는 온갖 슬픔과 아픔을 받아들이면서도, 집 안에서는 든든한, 의젓한, 믿음직한, 체면이 서는 아버지이고 싶은 그. 아빠의 눈에 눈물이 정말 가득 고인다. 그러니 당신도 울 수 밖에 없을테지. 내가 그렇게 울어버렸듯이. 

       영화 속 사사키 가족의 집은 전철이 지나다니는 철도 옆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가끔 시끄럽다. 하지만 전철이 지나가는 가끔을 뺀 많은 시간들이 조용한 집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 집의 전경이 비춰질 때마다 사사키 가족이 이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의 풍경들을 상상해봤다. 사사키 부부가 이 집을 산 건, 결혼을 하고 한참 후였을 거다. 첫째를 낳은 후, 혹은 둘째를 낳은 뒤일 지도 모른다. 이 집에 처음 온 사사키 가족의 모습. 시간마다 지나가는 전철 소리에 놀라고,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놀라고. 뭐든지 놀라웠던 이들의 처음. 그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켄지의 집에서도, 지금 이 시각 우리 집에서도, 바람이 분다. 커튼이 펄럭인다. 비 내음새가 섞인 바람. 그 비가 그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아야겠다. 살아갈 수 있다. 다시.


    * 켄지가 연주한 곡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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