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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시맨 - 남은 건 눈, 담배, 사케
    극장에가다 2009. 2. 21. 02:01



       <오이시맨>을 봤다. 그야말로 오이시,한 기분을 기대하고서 본 영화였다. 일단 포스터의 빛깔이 아주 서정적이었다. 내 감성을 후비고 드는 색감이었다고. 또한 조제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본 홍보(!)문구에 의하면, 음악과 요리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음악과 요리. 캬. 거기다가 청춘. 얼마나 기막힌 조합인가. 개봉하자마자 봐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 그리고 개봉하자마자 봤다. 보긴 봤는데, 문제는 보는 내내 졸렸다는 것. 기대한 것을 넘어서 매우 실망스런 영화였다.

       그래서 다시 찾아낸 전단의 시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 때 잘나가는 뮤지션이었지만 지금은 변두리 노래교실의 강사로 일하고 있는 현석.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는 노래교실 수업을 듣던 재영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결국 홋카이도의 몬베츠 공항에서 태연하게 담뱃불을 빌리는 괴상한 옷차림의 메구미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민박집에 묵게 되는데... 우연히 서로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음악과 소리, 그리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서로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면서 두 사람의 로맨스는 잊혀지지 않을 겨울의 기억이 된다.'

        그래, 시놉에 나오는 사건들이 영화에 언급되기는 한다. 하지만 시놉에 적혀져 있는 감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타까웠던 영화. 영상은 예쁜데, 너무 과하기만하단 느낌. 일단 스토리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뭔가 엉성하게 만들다가 만 느낌이 강했다. 깊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들어왔는데, 영화가 나를 퉁퉁 밖으로 내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에서 발견한 건, 이민기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과 언젠가 꽁치의 머리를 통째로 먹어봐야되겠다는 것 정도. 아, 일본에 몬베츠라는 이름의 지방이 있다는 사실까지.

        영화의 전체 내용은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내가 참 좋아라하는) 정유미의 대사 몇 마디로 함축될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 때 영화 속 정유미는 번지점프대 위에 서 있었고, 마지막 시도를 실패한 뒤였다. 교관이 당신은 오늘 뛸 수 없으니 이제 밴드를 풀라고 했을 때,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유미의 나레이션에 의하면 그 해의 첫눈이었다. 나중에 그 일을 회상하는 포장마차 안에서 이민기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난 이런데, 세상은 너무 아름답잖아요"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정유미는 뛴다. 퍽, 하고 난다. 번지점프에 성공한 거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서 밝아지기로 했어요." 그녀는 이혼녀였고, 이민기가 그 전에 이혼녀가 왜 그렇게 밝아요?, 라고 물었던 차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런 (내가 참 좋아하는) 정유미의 과정을 밟는 이민기의 이야기다. 그래서 결국엔 이민기도 정유미처럼 밝아지는 이야기겠지? 나는 이런데, 세상은 아름다우니까. 상처는 여전하지만 이 모든 걸 극복하고 밝은 사람으로.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뭘까. 흠. <카모메 식당>과 <안경>,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마지막에는 <여자, 정혜>까지. <오이시맨>을 보는 내내 다른 영화들만 잔뜩 떠올랐다. 마치 이민기와 치즈루 사이에 언어의 장벽처럼, 이민기의 이명현상처럼.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화가 온전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주 많이 기대했던 영화라서 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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