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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수 작가의 특별한 낭독회
    서재를쌓다 2008. 5. 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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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 일산에서 김연수 작가의 낭독회가 있었다. 우연찮게 한 달여 전에 일산에 있다는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진행된 은희경 작가 낭독회 기사를 봤다. 그 기사에는 다음 달은 김연수 작가가 낭독회를 합니다, 라고 적혀져 있었다. 앗싸. 가야지. 그런데 다음 문장, 일산 주민들만 초대합니다. 이런.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메일을 보냈다. 일산주민도 아니면서 일산주민인 척 한 건 아니고, 일산주민이 아니지만 작가님을 아주 좋아하는 독자라 꼭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이틀 후 메일이 왔는데, 착한 담당자께서는 오히려 먼 거리를 걱정해주셨다. 그래서 아 기다리고 오 기다린 지난 수요일.

       김연수 작가를 보러가는 길인데 일산까지가 뭐가 머냐, 고 생각은 했지만 한 번 갈아타고 내내 서서 가는 길은 정말 길었다. 책도 읽다가 지쳤고, 음악도 듣다가 지쳤다. 다리는 아파죽겠는데 자리는 전혀 안 생기고. 종로쯤엔 자리가 나겠지, 안국동에서는 분명 많이 내릴거야, 굳게 믿었지만 다들 일산 언저리까지 가는 사람들이었다. 몇 정거장 남기고 겨우 앉았다. 뭐 그렇게 힘들게 갔지만 결론은 일산에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도 상쾌하게 돌아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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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김연수 작가는 일산 주민들을 위한 특별한 단편소설을 만들어 왔다. 제목하야 세계의 끝 여자친구. 그리고 이 A4용지 10매 분량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멋지게 낭독했다. 작가님의 설명은 이랬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일산을 배경으로 썼다. 스물다섯의 남자가 자신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에 대해 이게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어떤 아주 햇살이 뜨거운 날의 오후같은 이미지의 이야기다.

       이 낭독이 특별했던 건 중간중간 김연수 작가가 직접 선곡한 노래와 함께 듣는 낭독이였다는 것.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뭔가를 예감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다음날 등산을 하기 위해 배낭을 꾸린 뒤 부푼 기대에 가득 차 올려다보는 창밖의 달무리,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 들어갔건만 똥이 마려운 것인지 굳은 표정으로 앉아서 내게는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는 면접관, 밤을 새가며 1주일 만에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과제를 모두 끝마친 뒤 제일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잠시 책상에 기댄다는 게 한 시간이나 실컷 자고 나서 깨어나 바라보게 되는 핸드폰 액정의 시각, 둥근 달무리나 똥마려운 얼굴, 혹은 어느덧 지나가버린 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문장들은 다른 문장들로 이어지고, "내가 열람인의 발길이 뜸한 식물학 코너에 쪽혀 있던, 아마도 아무도 대출한 적이 없어보이던 그 책을 빌려온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는 문장을 읽은 뒤에 Iron&Wine Naked As We Came가 울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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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ked As We Came의 달콤한 기타선율이 끝나면 김연수 작가가 그 다음 문장을 이어 읽는다. 경상도 사내의 억양이 잔뜩 묻어나는 친근감 어린 목소리로. "잎 지는 초저녁, 무덤들이 많은 산 속을 지나왔습니다."로 시작해 "약간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로 끝나면 이어지는 이바디 '오후가 흐르는 숲'.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였다."로 시작해 "그렇게 최근 들어서 국내에, 그것도 주로 가로수로 보금된 나무이기 때문에 한 그루의 메타세쿼이아를 보는 일은 그처럼 드물었던 것이다."의 나무 이야기로 끝나면 이어지는 정직한 제목의 나무.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부른. 그리고 김희선 할머니과 스물다섯의 괜찮은 청년과의 대화가 이어지고, pete and the pirates'Moving'. 메타세쿼이아 나무 밑에서 2천어치의 우표가 붙여진 편지를 발견하고는 world's end girlfriend 'birthday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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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노래 전에는 내가 이 소설을 세 번 읽으면서 제일 좋아했던 구절이 있다.

       나는 생각해봤다. 맞아요. 그랬어요. 십 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떤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봤다.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는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시인과 여자친구는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거리에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게 됐다. 다시 수만 년이 흐르고, 빙하기를 지나면서 여러 나무들이 멸절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는 살아 남을 지도 모르고, 그 나무는 한 연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희선 씨에게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그렇게요."
     
       그리고 마지막 곡. 이 곡의 이미지에 맞는 톤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던. La Buena Vida La Mitad De Nuestras Vidas가 밝게 흘러나오면서 김연수의 아주 특별한 낭독이 끝났다.

       아, 이 1시간이 얼마나 달달했는지. 이 소설이 이 낭독회를 위해 특별히 만드셨다는 김소연 시인의 말을 들은 순간. 멀리, 힘들게 오길 잘했구나, 안 왔으면 어떡할 뻔 했냐며 좋아라 했다. 낭독이 시작되자 조명은 어두워지고 분위기 좋은 향초 냄새가 그득했다. 스위치를 누르면 파파팍 깜빡거리며 로딩시간을 두고 켜지는 스탠드 불빛 아래서 김연수 작가가 낭독을 시작했다. 노래 제목이 써진 바로 윗문장을 읽고나면 스탠드를 껐다. 그러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작가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까닥거리고 미소를 띄며 음악을 느꼈다. 마치 내 선곡 죽이지? 라는 것처럼. 목이 타는지 자주 물을 따라 마시고, 가끔 우리들을 염탐하듯 씨익 둘러보기도 했다. 가수나 배우처럼 늘 TV를 켜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또 언제 얼굴을 마주할지 모르기에, 나는 자주 그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가 낭독한 문장의 목소리 위에 립싱크를 해 보기도 했다. 행복했다. 즐거웠다. 달콤했다.

       내 옆에 5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앉았는데, 아아, 낮은 탄성을 터뜨리시며 자주 노트에 뭔가를 메모하셨다. 뭘 적으시나 궁금해서 훔쳐봤는데 이런 식이었다. 김연수 작가. 성균관대 영문과. 밴드하는 게 꿈이었음. 햇살이 뜨거운 날의 오후. 시 모임. 기타리스트. 죽음의 향연. 자주 만나는 작가 일산의 김선생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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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들.

    - 사실은 제가 소설을 다 쓰고 나면 혼자 춤을 춰요. 소설을 쓰면서 음악을 계속 듣고 있거든요. 한 가지 음악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다 쓰고 나면 시간이 거의 새벽쯤이죠. 최대한 늦춰서 원고를 보내기 때문에, 출근하기 직전에 원고를 보내는 거죠. 해가 뜰 때 정도, 다 썼다는 생각이 딱 들고 기분이 아주 좋아요. 그러면 덩실덩실은 아니고요. 30대 후반답지 않게 예쁘게 춤을 춰요.
    (김소연 시인이 30대 후반답지 않은 예쁜 선곡들이라고 하니깐 센스있게 받아치셨다는)

    - 마지막에 나온 음악, 그 이미지를 가진 소설을 쓰겠다, 라는 생각으로 쓴 소설이예요. 그래서 톤도 약간 밝게 가는 톤으로 썼던 것이구요. 나이도 스물다섯살 정도가 나와서. 스물다섯살이 사실은 이렇게 괜찮은 생각을 할 리가 없어요. 스물다섯살의 남자들이란 좀 바보 같거든요. 그렇게 하면 소설이 엉망이 되니까.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서 이게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그런, 어떤 아주 햇살이 뜨거운 날의 오후 같은 그런 소설을 쓰려고 한 것이죠.

    -  골치 아픈 소설 되게 많이 썼거든요. 오늘과 같은 소설은 잘 안 써요. 고문에 가까운 소설만 쓰거든요. 낭독하면 반은 나가실. 제가 발음도 안 되는데다, 한자도 많고, 굉장히 어려워요. 오늘 본 소설을 가지고 제 책을 사시고 저한테 항의하고 그러시면 안돼요. 미리 말씀 드려요. 제가 원래 쓰는 소설은 굉장히 어려운 소설이예요. 남들처럼 호란도 딴 걸 해 보고 싶었겠죠. 그래서 클래지콰이를 하다가 어쿠스틱한 쪽으로 해 보겠다 해서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었어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르면 호란 혼자 만들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두 명이 합쳐져 가지고 이바디라는 이바지 음식 있죠? 그 이바디. 함경도 식으로 읽으면 이바디. 그래서 호란 목소리를 제가 되게 좋아하거든요. 노래를 워낙 좋아하니까 가수들에 대한 존경심이 커요.  저는 모든 가수들이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호란도 마찬가지로. 제가 팬이죠. 그런데 어느 날 호란이 책을 냈어요. 호란의 다카포. 책을 냈는데 저한테 붙여준 거예요. 얼마나 좋았겠어요?  딱 펼쳤더니 김연수 선생님에게, 적혀 있더라구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같은 또래 내지는 어린 줄 알고 있었는데. 저는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김연수 선생님에게, 되어 있으니까 가까이 할 수 없는 감정이 확.    

    -  소설을 발표하고 나면 항상 이 느낌의 음악을 들으면서 썼다, 말하자면 사운드트랙을 내고 싶은 거죠. 이 음악과 같은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라는 게 저의 꿈이었는데. 작년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책을 낼 때 만들었어요. 음악들을. 내가 쓰면서 이런 식의 문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음악들을 녹음해서 주위에 나눠졌죠.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아직까지도 그걸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30장만 찍고 더이상 찍질 않았거든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사운드트랙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끼워..줘..야 되겠죠? 그냥 팔면 아무도 안 살테니까. 끼워 주는 걸로 해서 한번 냈으면 좋겠어요.
     
    - 소설을 쓰기 전에 음악을 막 찾아 헤매요. 닥치는대로 막 듣다가 이 소설에 막 맞겠다는 음악을 찾으면 그때부터 그것만 들어요. 딴 음악은 듣진 않고. 한 음악만 계속 들어요. 소설을 끝날 때 보니까 저는 아이팟 프로그램을 쓰는데 거기 재생횟수가 나와요. 끝날 때 보면 89번 정도 한 곡만 들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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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그 통속적인 게 너무 좋아요. 대중음악의 느낌이, 클래식보다 너무 좋아서 제가 살아가면서 몇 번 아,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음악듣다가 들거든요.      

    - 제가 지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인문적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기억력이 되게 안 좋아요. 그래서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추천하고 싶은 음악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구요. 추천해주고 싶은 음악은, 제가 요즘 되게 좋아하는, 영원히 좋아할만한 사람인데요. 포르투갈 출신의 작곡가가 있어요. 호드리구 레앙이라고. Rodrigo Leão이라고. 이 사람이 원래 있었던 그룹이  Madredeus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엄마신. 거기 있다가. 그 룹도 제가 좋아하는 그룹이예요. 이 사람 음악은 주로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었던 음악인데. 음악 자체가 계속 다른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들이예요. 실용적으로는 저는 사운드트랙을 많이 듣거든요. 보통 어떤 심상을 가지고 만든 음악들. 저는 영화를 안 봐요. 영화 보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해요. 영화를 안 보는데 그 이유 또 하나도 사운드트랙을 많이 듣는데 내용과 연결이 되면 곤란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안 본 채로 사운드트랙을 들으면 제 독자적인 이미지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거든요. 그래서 실용적으로 들을 때는 영화 사운드트랙을 많이 듣는 편이죠. 그리고 최근에는 베이루트라는. 이 사람도 혼자 하는데 이름을 베이루트라고 지었어요. 베이루트를 좋아하고 그렇습니다.
     
    -  약주는 많이 안 먹고 술만 먹습니다. 약주 먹을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  제가 만들어내는 건 거의 없구요. 다 찾는건데 전제조건이 하나 있어요. 말하자면 소설에 미친 사람들의 전제조건과 같은 건데요. 뭐냐하면 우리가 모를 뿐이지 모든 사물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라는 믿음같은 게 하나 있어요.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이야기가 감춰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모든 게 이야기가 다 존재 한다. 지금 막 만들어진 게 아니면. 그러고 나면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거죠. 책은 일단 저는 소설책 많이 읽구요. 가끔씩 뭐 최근에 죽음의 향연이라고 광우병 관련해서 광우병이 도대체 문제가 뭔가, 하는 건데 무진장 재밌어요. 그런 거 읽구요. 그러니까 주로 재밌어서 책을 읽어요. 뭘 찾아야 되겠다고 해서 책을 읽는 건 아니고요. 재밌으니까 제가 재밌는 책들만 골라서 보는 거구요. 그 시간까지 뭘 찾는 것은 저는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일단 이야기를 만들어서 쓰다가 보면 중요한 소재가 어떤 사물이 됐건, 사람이 됐건, 시대가 됐건 큰 이야기는 존재를 하구요. 큰 이야기들 말고 작은 이야기들도 다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은. 저는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일단 현실성을 띄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중요한 의미를 다 띄는 물건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경험들을 되게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1958년도 여름에 무슨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문을 뒤져보는 거죠. 그러면 틀림없이 사건이 있어요. 그러면  그걸 찾아서 제가 쓰는 거죠. 있을줄 알았다, 하고 찾기 때문에 찾는 건데요. 소설 쓰다보면 일단 그 전제조건, 모든 것들은 일단 이야기가 있다, 숨어있을 뿐이지, 그걸 일단 믿으시구요. 믿은 다음에 소설을 쓰면서 거기에 가면 있을 것이다, 감 같은 게 들면 그 때 자료를 찾아보는 거예요. 제가 뭐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적인 작가네, 했는데 별로 안 지적이구요. 책도 예전에는 많이 봤는데 연세가 약주 먹을 연세가 되어가지고 요즘 책을 많이 못 봐요.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참 부끄럽습니다만 젊었을 때 책을 많이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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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했습니다. 했구요. 딸도 있구요. 그 딸이 이 도서관을 굉장히 자주 다녀요. 어린이 도서관에서 지내는데, 집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따님이죠. 제가 따님이라고 부르거든요. 굉장히 훌륭한 분이셔가지고. 그 분이 아홉살이예요. 크구요. 오늘 또 온다고 했는데 올 분이 아니예요. 말은 온다고 했는데 막상 닥치면 자기 좋은 거 하고 약속을 잘 안 지키기 때문에. 안 오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질문 되게 좋아합니다. 큰 따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죠. 그 분도 오늘 오신다고 그랬는데 안 오시네요. 걸어서 15분이면 올 수 있는거린데.

    - 열무는 말이죠. 제가 아주 싫어하는 음식이예요. 입에 대질 않는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열무라고 지었구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안 먹습니다. 열무는. 잠깐 먹었었는데.

    - 사실은 소설가가 되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하면 닭살이긴 한데 사실은 소설가가 되어서 사람이 된 경우예요. 제가 소설가가 아니었을 때. 스물 두 살, 세 살  이럴 때죠. 소설 열심히 써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참을성도 없고, 가치판단도 아주 저능적이었고, 말도 그냥 막 내뱉고 이런 사람이었어요. 소설을 쓰고 나서,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게 참 독특한 경험인데요. 어떤 거와 가깝냐면요. 마라톤. 마라톤을 하면 차이가 나는데. 제가 한번 경험을 했어요. 제가 뛰다가 포기를 했어요. 뛰다가 포기한 사람들은 뒤에서 회수차가 와요. 페이스 메이커들이 지나가요. 3시간, 3시간 반, 4시간, 4시간 반, 5시간 지나가는 거죠. 뛰다보면 앞으로 4시간이 지나가고, 저는 뒤로 가고 있죠. 그 다음에 4시 반이 지나가죠. 그러면 꼭 회수된다는 거죠. 5시간이 지나가요. 그러면 그 뒤에 차들이 오는 거죠. 회수되어서 가는데 그 차 안은 정적이예요. 아무도 얘길 안 해요. 다들 이러고 있어요. 제가 타고 간 차는 VJ특공대가 올라왔어요.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러면 막 욕하고 당장 집어치워라. 그러면 회수차 타고 결승점에 들어가는데 일주일동안 죽는 줄 알았어요. 몸이 아파가지고. 온 몸이 쑤시고 부러져 나갈 것 같고. 마라톤은 너무 힘들다. 정말. 한번은 다 뛰었어요. 보통 36km부터 고통이 시작되거든요. 그 때부터는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예요. 걷을 힘이 없어서 뛰는 그런 자세예요. 경보 자세로 뛰는데. 그로부터 10km 더 가야 한다 하면 그 때 속도로 봐서는 1시간 반 정도 더 가야되나, 어떨 때는 시간만 보내자, 시간만 보내면 어떻게든 들어갈 테니깐 그런 자세로 들어갔어요. 끝까지. 들어가고 나서 그 다음날 하나도 안 아파요. 몸이 정말 하나도 안 아파요. 소설을 쓰다보면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보통 마감이 있기 때문에, 마감을 지켜야 되는 거죠. 보통 안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안하고 안하다가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아까 제가 아까 춤을 춘다고 했잖아요. 무진장 좋은 거예요. 무진장 그렇게 좋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소설가가 되어서 얻은 것 중에 가장 큰 건 그걸 알게 된 거 같아요. 인내심, 그런 문제도 아니구요. 참을성, 그런 문제도 아니고 뭔가 알기 시작한 거예요. 어떤 식으로 세상이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 거 같아요. 그게 얻은 가장 좋은 것이구요.    

    - 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십 년. 적성도 딱 맞고. 여성지도 비슷해요. 맨날 때려치우고 싶은데 약간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있어요. 그랬는데 아까 말했다시피 그 전까지는 소설을 그렇게 쓴 경험이 없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끝까지 한번 써 보는 거, 끝까지 가 보는 거,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직장은 역시 무서운 곳이예요. 여성지에서 그렇게 일 할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일을 무진장 시키는 거예요. 하기 싫어 죽겠는데. 거의 밤샘하는 야근을 한 일주일 시키더라구요.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소설을 그렇게 써본 적도 없는데. 그래서 소설을 한번 이렇게 해보자.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해보자, 한번 끝을 내 보자, 라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했죠. 그 때쓴 게 굳빠이 이상이라는 책이예요. 회사 다니면서도 쓰고, 회사 그만두고 나서도 썼는데. 그 때 생각엔 만신창이 되면서 가 봤는데 아니더라, 그럼 말자, 글 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그 소설을 쓰다가 내가 소설을 쓸 수가 있겠구나, 이제는 소설 쓰는 방법을 알겠구나, 라고 깨달음같은 걸 얻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소설만 계속 쓰는 거죠.  

    - 제가 손꼽아 신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기다리구요. 폴 오스터라고 있어요. 신작 기다리구요. 지금 한국에 왔을텐데 오르한 파묵, 신작 기다리구요. 제가 진짜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예요. 마르케스, 신작 기다리구요. 줄리언 반즈라고 영국 작가. 그 정도. 그런데 다 남자작가네요.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들리는 부분만 옮겨 적었다. 일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긴 시간동안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었다. 조곤조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와 낮게 흐르는 음악소리. 톱니바퀴가 돌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나와 옛 여자친구의 이름과 같은 김희선 할머니는 세계의 끝까지 함께 걸어 어느 시인의 마지막 편지를 찾아냈다. 어쩌면 시인은 이 편지가 결코 발견될 리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발견되더라고 결코 주소의 그녀에게 배달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메타세쿼이아, 살아 있는 화석> 따위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스물 다섯의 남자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 넷, 아니 그 이상으로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는 크기만 다를 뿐, 속도만 다를 뿐 삐걱삐걱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날 수 있고, 톱니바퀴도 둥그니까 자꾸 돌아가다보면 제자리로 돌아 올 수 있다는 이야기. 너와 내가, 김희선 할머니와 김희선 아가씨가, 난아와 나나가 모두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 결코 그 사실이 우표값이 2천원할 때까지 발견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플레이어를 멈추니 삐걱대며 느리게 돌아가는 내 톱니바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맞물려 있는 김연수 작가의 톱니바퀴가 윤기있게 돌아가며 말한다.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으세요. 그러니까, 여름나무처럼 꿋꿋하세요. 그러니까, 제 블로그가 다시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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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싸. 김연수 블로그가 다시 열렸다. 한밤중에 그걸 발견하고 좋고 좋고 좋아서 가슴이 스컹크처럼 벌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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