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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바람과 봄비
    모퉁이다방 2008. 4. 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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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에서 잔뜩 먹을 것을 산 뒤 한강고수부지로 갔다. 가지고 온 돗자리를 깔고 우리는 마주 앉아 카스 2캔과 웨팅어 2캔과 스타우트 패트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마셨다. 술에 취하는 대신 강바람과 뒤섞인 봄바람에 취했다. 화장실을 세 번씩 다녀오고, 요즘 보는 TV 프로그램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신정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마치 만나본 사람인 것처럼 말했고, 쾌도홍길동의 성유리 대사를 자꾸 흉내냈다. 난 역시 운이 좋소. 당연히 친구의 얼굴에서 성유리를 떠올릴 순 없었다. 난 역시 운이 좋소. 통통오리배의 페달을 늦은 밤에도 열심히 저어대는 사람들이 있었고, 놀랍게도 통통오리배 옆에 진짜 오리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강바람에 바다 내음새가 났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대학 시절을 기억해내며 깔깔거렸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우리를 스쳐 지나간 남자들을 기억해내며 껄껄거렸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봄바람은 사람을 참 설레이게 만들더라.  


       투표를 하고 롯데리아에 들러 거품이 풍성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줬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이바디를 들었다. 가만히 창 밖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는 풍경이 꽤 근사했다. 담배를 피우며 운전하는 한진택배 트럭이 지나갔다.. 한진택배 아저씨도 꽤 근사했다. 비에 젖은 횡단보도도 근사했다. 사람들은 내가 앉은 창 밖의 좁은 처마 밑에 자주 머물고 갔다.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2분동안 담배를 피우고, 5분동안 누군가를 기다리고, 1분동안 비를 피했다. 나는 이 모든 게 정말 근사하게 느껴졌다. 봄비가 오는 날, 집에 쳐 박혀 있지 않고 창가 자리에 앉아 이천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는 너덜너덜한 츄리닝의 떡진 머리를 질끈 묶은 나도 꽤 근사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갔다. 봄비는 사람을 참 근사하게 만들더라.


       이바디 앨범을 다 듣고, 커피를 리필해 집으로 돌아왔다. 롯데리아에서는 이천원에 갓 내린 따끈따끈한 커피를 두 번 마실 수 있다. 개표방송은 시작됐고, 나는 사표를 던지고 온 게 분명해졌다. 빗소리가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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