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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 그의 문장은 빵집 주인 같아서재를쌓다 2008. 2. 15. 10:08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커피를 내렸다. 친구가 싸 준 원두커피. 브라우니 한 조각을 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초코 케잌. 그것들을 야금야금, 홀짝홀짝 먹어치우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다시 읽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자신이 정말 행복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두 단편을 읽으면서 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해준 것에 정말 행복해했다. 지상의 말이 하늘까지 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당신은 글은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도움이 되었답니다.
'대성당'의 마지막 부분도 뭉클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부분에 나는 울어버렸다. 사경을 헤매다 결국 아이를 잃은 부모. 케잌 하나가 뭐라고 끊임없이 협박 전화를 걸어온 빵집 주인. 이 세 사람이 컴컴한 새벽에 결국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한 빵집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말이다. 아이없이 중년을 지나는 외로움을 아는 빵집 주인이 이제 아이없이 중년이 될 부부에게 그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코끝으로는 이내 갓 구운 행복한 빵냄새로 가득해졌고, 그 가운데 쓸쓸한 세 명의 뒷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루 아침에 애지중지하던 아이를 잃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미리 주문해놓은 케잌을 찾을 수 없는 것. 그렇지만 어느 순간 베이킹 파우더를 넣어 한껏 부풀어진 빵들처럼 슬픔도 외로움도 잊고 살아가는 일에 부풀어오를 수 있는 것. 그래야만 하는 것이므로.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들은 짧고 건조하다. 무엇을 했다고로만 가득차 있는 그의 문장에서는 수분이 날아가버린 말라버린 야채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전혀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감성의 뭉치들이 스물스물 몰려오다 먹구름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 순간 슬퍼지고, 쓸쓸해지고, 때로는 행복해진다.
엉뚱하게도 이제 내가 사랑하게 된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빵집 주인이 카버의 문장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에게 친절한 인사따위는 건네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 그저 빵을 굽고 그 빵을 파는 사람. 그러다 케잌을 찾아가지 않는 손님에게 그것을 잊어버린 거냐고 짧게 호통만 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 전화를 끊고나서는 주인 잃은 케잌을 물끄러미 쳐다 봤을 것 같은 사람. 그러다 어느 날 찾아온 정말 주인을 잃은 케잌의 부모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편안한 빵을 배부를 때까지 내 올 사람. 그래서 염치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방금 잃은 부모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들게 할 사람. 조심스럽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은 사람. 그러면 보지 않아도 눈가가 촉촉해져 있을 사람. 투박한 손을 가졌을 사람. 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사람.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묵묵히 빵을 구울 사람.
빵집 아들이었던 김연수 작가가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자신의 기억 속 어떤 빵냄새를 기억해냈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분명 어떤 종류의 빵 냄새든 떠올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허기진 하교길에 빵집으로 후다닥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갓 구워진 빵 하나를 깨물었을 때의 냄새였을까. 아니면 그가 자전적 소설 <뉴욕 제과점>에서 말하던 버려지는 빵 부스러기들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어치울 때의 냄새일까.
커피도 달고, 브라우니도 달다. 이 모든 걸 감싸고 있는 공기도 달고. 오늘 하루는 나도 달고, 당신도 달았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일이 늘 그래프의 상위 곡선을 그릴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쯤은 제법 달달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이른 아침 두 눈을 비비고 만든 시원한 무와 바지락을 썰어넣은 무국을 마시며 예감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