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엄마의 집 - 나는 소년이 되었다
    서재를쌓다 2008. 1. 31. 11:26
    엄마의 집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열림원

       갑자기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내 머리카락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들을 당장 잘라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가는 길 모퉁이에 작은 동네 미용실이 있다. 늘 눈여겨 보았던 곳.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컷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니 이건 너무 짧지 않냐고 한다. 그럼 그냥 컷트로 잘라주세요. 그러고보니 자르는 컷트와 짧은 머리 모양의 컷트의 말이 같다.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들을 보며 한창 읽고 있던 전경린의 <엄마의 집>을 떠올렸다. <엄마의 집>의 스무 한 살의 주인공은 엄마가 골라주는 예쁜 여자용 옷이며 신발을 거부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정 원한다면 언젠가 입고 싶어질 때 입을게. 서른 살쯤? 아니, 마흔 다섯 살쯤? 핸드폰에 저장해 온 머리보다 조금 길게 잘랐다. 나는 소년이 되고 싶은 걸까. 스물 아홉의 애인이 없어 선을 보는 예쁜 여자가 되기 싫은 걸까. 엄마는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서 내게 선자리가 들어왔다며 기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별 수 없구나, 싶어 웃으면서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걸 나도 드디어 선을 볼 수 있게 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왜 핸드폰에 그녀의 사진을 저장해가선 똑같이 잘라달라고 한걸까. 그녀는 이제 전 남편을 잃고 두 살짜리 딸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아갈 나와는 나이만 같은 동갑내기일 뿐인데. 조금이라도 더 짧게 자르고 싶은 마음에 뒷 머리를 조금 더 잘라줄 수 없냐고 했다가 동네 미용실 언니는 자존심이 상한듯 금방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것까지 자르면 이쁘지가 않아요. 아줌마처럼 된다구요. 나는 집에 가서 대충 잘라봐야지, 생각하고 만원을 건넸다. 컷트를 하는 내내 생글생글 재잘거렸던 미용실 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삼천원을 건네준다. 정 그러면 일주일 안에 와요. 잘라줄게.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일주일 안에 안 올거고, 미용실 언니도 잘라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그리고 내 등 뒤에서 미용실에 있던 미용실 언니의 언니와 내 험담을 시작할 거란 걸. 내가 컷트를 하는 내내 다른 손님 험담을 한 것처럼. 나는 갑자기 전경린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그녀의 글이 아니라고.

       그 길로 도서관에 들렀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책 진열장을 지나 창가에 의자만 나란히 놓아둔 자리. 여기 앉아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이해될 것처럼. 책갈피를 꺼내고 그 곳에서부터 <엄마의 집>을 읽는다. 내가 아는 전경린은 이렇다. 그래, 그녀의 모든 책은 읽지 못했다. 세어보니 세, 네 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오래 전에 읽은 책들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구가 무척 좋아했다. 전경린. 다른 여자 작가들과 달라서 좋다고 했다. 관습적이지 않아서.  늘 선을 벗어나려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 친구는 전경린을 여전히 좋아한다. 얼마 전 <엄마의 집> 신간 소식을 듣고 문자를 보냈더니 전경린이 좀 더 자주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중반까지 읽으면서 이건 전경린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건 너무 따뜻해. 이건 너무 평온해. 이건 너무 교훈적이야. 이건 너무 평범해. 스물 한 살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사춘기 시절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고, 아빠는 금새 재혼을 했다. 운동권이였던 아빠는 직업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채 세상을 맴돌고, 엄마에게는 새 애인이 생겼다. 어느 날 아빠는 재혼한 여자의 딸을 자신과 엄마에게 맡기고 갔고, 엄마는 그 아이에게 자신을 친척 아줌마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스물 한 살의 내가 사랑했던 K는 여자다. 그래, 이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극적인 상황들의 조합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야기하는 전경린의 시선이 너무나 따스하다. 62년생 실제 작가의 시선이 아니라 88년생쯤의 주인공 아이의 1인칭이라 그랬던 걸까. 이건 친구가 좋아했던 전경린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전경린이구나 싶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 전경린은 말한다. 잠자는 공주도, 덩쿨도, 그 덩쿨을 휘두르는 칼도, 공주를 구하려 오는 왕자도 모두 '나'라고. 덩쿨도, 칼도, 왕자도 모두 공주, 바로 나 자신이라고. 나는 내가 휘감은 덩쿨에 갇혀있고, 내가 스스로 무찔러야 할 칼을 집어 들어야 하고, 그걸 휘둘려야 할 사람은 왕자가 아닌 잠자고 있는 공주, 바로 나라고. 결국 잠자는 나는 내 자신만이 깨울 수 있는 거라고. 이제야 모든 것이 전경린다워진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장까지 조금 따스해져서, 교훈적이게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전경린스럽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변한 것도 전경린이고 그 속에 전경린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느끼며 읽어내려갔다. 삼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순간은 어쩐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덮고 나니 스물 한 살의 주인공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1인칭으로 쓰여진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걸까. 엄마의 이름은 또렷했다. 윤진. 처음 엄마의 이름을 읽었을 때, 작가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밀애>의 여배우 김'윤진'을 떠올렸다. 남편에게서 상처 받는 여자, 아슬아슬한 다른 사랑을 즐기는 여자. 제도 안에서 제도 밖을 꿈꾸는 여자. 결국 그 여자가 이혼을 했던가. 그녀의 사랑이 계속 되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린 아이였던 그녀의 딸이 이렇게 커서 '엄마의 집'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한 십년쯤 후에.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알았다. 이 책에서 주인공 이름은 엄마 윤진에 의해서 꽤 많이 불려졌단 걸. 엄마는 항상 호은아, 라고 다정하게 딸의 이름을 부르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은아. 호은아. 꽤 멋진 이름이다. 소녀같지도 소년같지도 않은 이름.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날 머리를 감고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뒷머리도 자르지 않는 게 나았다. 미용실 언니의 판단이 옳았다. 확실히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가 꽤 무게가 나갔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진 것 보면. 나는 소년이 되었다. 그렇게도 원하던.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