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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통영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둘이었다가, 넷이 되고, 여섯이 되었다가, 다시 넷, 그리고 둘이 되었다. 넷이서는 근사한 해안도로를 따라 지는 해를 보러 갔다. 연휴라 사람들이 많았다. 미세먼지가 제일 덜한 지역이었는데도 날씨가 좋지 않아 일몰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다찌집에 가서 해산물도 잔뜩 먹었다. 그 날의 다찌집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복작복작했다. 우리 중에는 취한 사람도 있었고, 맥주만 마신 사람도 있었다. 건배는 여러 번 했다. 숙소까지 간다고 대리를 불렀는데, 숙소가 가까웠고, 기사님은 걱정하지 말라더니 엉뚱한 집 앞에 주차를 하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숙소는 해저터널 근처의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옛날 집이었는데, 방이 두 개, 화장실이 두 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혼자 산책해봤는데, 밤의 풍경과 달라 놀랐다. 사람들의 후기대로 위치도 좋았고, 모자란 것이 없었다. 마당에 작은 풍경이 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풍경소리가 났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었다.
여섯이 되었을 때는 멍게비빔밥과 도다리쑥국, 복국을 각각 먹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집이라 했다. 조금 기다렸는데, 자리는 금방 났다. 깔끔하게 맛있더라. 아직 봄꽃이 피지 않아 허전해보였던 이순신 공원에도 갔고, 통영에 관광온 사람들이 대부분 올라가보는 동피랑에도 갔다. 아빠와 나는 동피랑이 세번째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올라가는 길이 사람들로 복작복작해보였는데, 올라가보니 괜찮더라.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네. 나는 동피랑보다 서피랑이 더 좋더라. 아무 것도 없지만 뻥 뚫린 게 속이 시원했다. 바람도 크고. 품평회에서 1위를 한 꿀빵집에서는 결국 꿀빵을 사지 못했다. 모퉁이에 있는 국내산 팥을 쓰는 가게에서 꿀빵을 샀다. 막내 것도 샀다.
다시 넷이 되었을 때는 박경리 기념관에 갔다. 아빠는 박경리의 기구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쓰럽다고 했는데, 엄마와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좋은 글을 많이 쓰지 않았냐고. 어떤 사람이 행복했냐 불행했냐를 다른 사람이 평가할 수는 없는 거라고. 기념관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 글을 나는 박경리가 행복했던 사람으로 이해했다. 이런 문장이었다. "내가 누군가 고독해서 어찌 혼자 사냐고 묻습니다. 그럴때 나는 대답할 바를 모릅니다." 각자의 속도로 작은 기념관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런 시가 있었다.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아빠는 이 시를 핸드폰으로 찍어뒀다. 이런 문장도 있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기자신과 자주 마주 앉아보세요." 이런 문장도.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업입니다. 작은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을 사랑하세요. 슬픔을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대로 견디어야 합니다." 엄마가 바로 코앞이라고 하는 바람에 선생의 묘소까지 다녀왔는데, 풍경이 어마머마했다. 한 외국인 남자가 혼자서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그는 선생의 팬이었을까, 통영 풍경 명소를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었을까.
우리 가족이 아는 통영 맛집, 주민들만 찾을 것 같은 다소 허름한 돼지갈비집에 갔다. 가만 앉아 있는데 신기했다. 이렇게 넷이 앉아서 돼지갈비를 먹고 있다니. 맥주를 한 잔 하고 있다니. 소주를 나누고 있다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갈비는 변함없이 맛있었고, 엄마 아빠는 자주 웃었다. 만나는 사람 아버지 생신 때 드리라고 엄마가 갈비 10인분을 포장 시켰다. 엄마가 주문하고, 아빠가 계산했다. 그걸 둘이서 숙소까지 들고 왔다. 걸어가면서 보는 야경이 얼마나 근사한데, 걸어가. 엄마의 말에 걷기 시작했다. 초반의 아름다웠던 야경은 10인분의 갈비 때문에 점점 흐릿해졌다. 진작 버스를 탈 걸, 이 거리를 걷는 것은 체력 좋은 엄마만이 가능했다, 너무나 힘들다, 툴툴거리면서 한 시간여를 걸었다. 그냥 들어가기는 왠지 아쉬워서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바다를 마주보고 맥주 한 캔씩을 했다. 역시 여행에서는 고생한 시간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만고의 진리. 편의점 앞이었나, 걸어오는 길이었나, 만나는 사람이 말했다.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나는 만나 볼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그러니 좋은 두 밤을 보내고 올라왔다는 이야기. 지금쯤 통영에는 봄꽃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겠지. 예쁘게 피어라. 또 갈게. 그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