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금요일 밤, 끄적대다
    모퉁이다방 2007. 8. 11. 02:47
    01. 홍진경 부친상

    라디오를 꾸준히 듣고 있다.
    거의 케이비에스 쿨 에프엠을 듣는다.
    황정민 아나운서 출산휴가때문에 요즘 진행하고 있는 박지윤 아나운서에
    9시에 이현우, 11시엔 박수홍, 그리고 12시가 되면 홍진경.
    오늘 못 들었는데, 포탈 검색어에 '홍진경 부친상'이라고 뜨더라.
    기사보니깐 오늘 홍진경씨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CMKM는 못 읽었는데, 그 책이 출판되고 난 즈음이었을 거다.
    홍진경씨 미니홈피를 알게 됐는데, 거기 있는 글들에 반해버렸다.
    조그만 사진들 밑에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에 대한 글들을 써놓았는데
    사실 홍진경씨가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쓴다는 것에 놀랐다.
    그녀의 글에는, 그래, 그녀 자신의 말처럼 음율이 있다.
    그리고 문장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다보면 이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겠다.
    그녀는 섬세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
    상처도 쉽게 받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동네 개들이 멸종되지 않았고,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아직 없지만,
    자신은 조금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
    일기를 써서 내 앞에서 종이를 들고 조곤조곤 발표하는 것 같은 그녀의 글들이 좋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좋아졌다.

    오늘 부친상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 전, 미니홈피에 올라왔던 아버지에 관한 글이 떠올라 들어가봤는데
    없어졌다. 지웠나보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얘기였고,
    화창한 봄날, 사람 많은 여의도 벚꽃길을 걸어가는데
    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고.
    지나가는 아버지 나이즈음 되어보이시는 어떤 분의 좋은 옷, 좋은 가방을 보고
    평생 아버지께 저런 선물 한번 해드리지 못했다고
    이번에 건강해지시면 꼭 비싸고 좋은 선물 해 드릴거라는
    그런 글이었다.
    그냥 읽어내려가던 나도 울컥하던 글이였는데,
    써내려간 그녀는 다시 읽게 될 때마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글은 흔적도 없었다.

    그녀가 가끔씩 쓰는 글을 기다리고
    매일매일 12시면 내게 놀러와 조잘조잘거리며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니
    나는 어느새 그녀가 내 지인같이 느껴져 버렸나보다.
    그 기사를 보는데, 저 글이 생각났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마음을 잘 추스리길.
    그리고 늘 그랬듯 가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올려주고,
    매일 12시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조잘거림으로 찾아와주길.
    그녀가 매일 한곡씩 전해주는 DJ추천곡을 빨리 듣고 싶다.
    그 노래들도 단번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그런 곡들이다.
    감성적이고 조금은 우울하지만 편안하고 오래된 옛날 노래들.


    02. 엄마의 문자

    엄마가 밤에 문자를 보내셨다.
    일찍 주무셔서 밤에 문자를 잘 안 보내시는데.
    창원 고모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거기 가고 있다고.

    오늘 죽음이 바로 내 코 앞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홍진경씨의 아버지.
    자주 뵙지 못했지만 창원 고모 할머니.
    현실은 아니지만 읽고 있는 책 <바리데기>에서의 여러 죽음들.
    <바리데기>를 읽고 있는데, 재밌어서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데
    목이 턱턱 막혀서 속도가 더디다.
    한 장 넘기면, 목이 턱 막히고 또 한 장 넘기면 가슴이 시려서
    빨리 읽어내려갈 수가 없다.
    그러면 또 쉬었다가 읽고, 읽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3년인가, 4년인가.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엄마, 아빠는 그 얘기를 타지에 있는 우리에게 시시콜콜 안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빠가 전화를 하셨는데
    목이 잔뜩 잠기셔서는 할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시다고,
    얼마 안 남으신 거 같다고,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평생을 믿고 의지해온  커다란 기둥인데
    그 기둥이 흔들리니까 아빠는 많이 힘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떨리는 목소리로 두 번이나 반복해서 흔들린다고.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상복을 입은 아빠를 보는데, 아빠의 등이 너무나 작아서 눈물이 왈칵 났다.
    아빠가 전화기 너머로 건네줬던 그 말이 생각났다.
    평생을 믿고 의지해온 내 기둥.
    나는 그 기둥이 정말 오랫동안 지금처럼 튼튼하기를.
    흔들리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나도 계속 나이를 먹고 있고, 아빠는 계속 늙어가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불효하는 못난 딸.


    03. 매미

    1시가 넘어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났다.
    맴맴.
    너무나 선명하게.
    그 소리를 따라가봤더니 신발장 부근에서 나더라.
    집 안에 매미가 들어온 거였다.
    나는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매미를 찾지도 않고
    도로 불을 끄고 방 안으로 들어와서 매미 소리를 한동안 가만히 듣고 있었다.
    수년을 땅 밑에 있다, 땅 위에서 올라와 단 며칠만 살다가는 매미.
    오늘 밤 내내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죽음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 녀석이 우리집 안으로 뛰어들어온 거다.
    슬프기도 하고, 뭔가 으스스하기도 하고.
    오늘 밤 내내 저렇게 울겠지 싶었는데, 금세 소리가 사라져버렸다.
    우리집 현관에서 그 녀석의 생이 끝난걸까?
    아니면 매미같은 건 있지도 않은걸까?

    맴맴 맴맴.
    이 소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은 매미꿈을 꿨음 좋겠다.
    거기에 홍진경씨도, 그녀의 아버지도, 고모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빠도,
    바리의 언니들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등장하는 그런 꿈.
    밤에 듣는 매미 소리 말고
    낮에 듣는 매미 소리 같이
    기똥차게 활달한 그런 꿈.
    모두다 행복하고 아무도 헤어지지 않는 그런 꿈.  


    04. 아, 다시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