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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은 키스
    극장에가다 2012. 6. 26. 23:43

     

     

       일요일 오후, 내가 좋아하는 광화문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개봉했을 때 포스터만 보고 유치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평들이 좋았다. 친구에게서 토요일 밤에 연락이 왔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일요일 오후에 같이 보자고. 일요일은 무척 더웠다. 땀이 그냥 줄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친구와 만나 영화를 보고 종로까지 걷고,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와 카레를 먹고, 명동으로 걸어 가 버블티를 사 먹고, 다시 종로로 돌아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이 고마운 영화가, 무료한 6월의 일요일 오후에 우리에게 와 주었다.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와 2주 동안 고민했던 구두를 주문했다. 나도 사랑스런 오드리 토투처럼 구두를 또각거리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한 것 같다. 한 사람도 허투루 지나간 사람이 없다. 오드리 토투의 남편은 잘 생기고, 멋진데다 용기까지 있다. 그는 오드리 토투에게 첫 눈에 반했고, 그 날 그녀에게 대쉬해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의 두번째 남자는 못 생겼지만, 섬세하고 유머감각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충격으로 정신을 놓고 있던 오드리 토투의 키스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그 키스로 인해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영화는 그때부터 이 못 생긴 남자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을 기억해 두고, 감동적인 선물을 건넬 줄 아는 사람. 그녀 앞에 있으면 자신이 최상의 사람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 그녀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가는 사람. 이 남자, 정말 못 생겼는데 영화가 계속될수록 그렇게 못 생겨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생겨 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는 ㅠ) 그리고 심지어 질투의 화신, 사장도 인간미가 철철 넘친다. 또 한 사람. 오드리 토투의 친구. 클럽 장면이었다. 오드리 토투는 클럽에서 혼자 춤을 추고, 친구는 그녀의 슬픔을 본다. 친구의 눈에 금새 눈물이 고인다. 친구는 두번째 남자를 만나고 실망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남자에게 무안을 준다. 그 친구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 올까. 오드리 토투에게는 왔다. 아주 좋은 사랑이, 아주 근사한 사람이. 그녀는 이제 '그 날', 중간쯤 읽다 덮어버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갈피가 있는 페이지를 펴고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후에 보기 딱 좋은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오드리 토투와 두번째 남자가 그랬듯이 조금 걷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원제 'La delicatesse'는 섬세함, 배려 깊음이라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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