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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바이 그레이스 - 당신을 온전히 그리워 할 수 있는 시간
    극장에가다 2009. 10. 23. 23:00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스탠리(존 쿠삭)의 부인은 직업 군인이다. 현재 그녀는 부재 중이다. 이라크로 파병 간 상태. 스탠리에게는 사랑스런 두 딸이 있다. 착한 첫째 딸과 귀여운 둘째 딸. 엄마가 이라크에 가 있으니 불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빠는 큰 딸 하이디에서 이라크 관련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막내 던은 엄마와 약속을 했다. 시계에 같은 시각으로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눈을 감고 서로를 생각하기로.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그게 궁금했다. 오후 네 시쯤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끝난 뒤였고, 오후였고, 해가 지기 전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내내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엄마를 잃은 던에게 이제 그 시간이,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할지, 얼마나 간절할지 생각해봤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일 테지만 온전히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 그래야만 하는 시간. 던도 언젠가 지금의 엄마의 나이가 되겠지. 삶은 엉터리고, 놀이동산 따위가 하나도 신나지 않는 나이가 올 거다. 왜 엄마가 이라크에서 죽어가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가 되는 나이가 올 거다. 그 때까지 시간은 계속 흐를테고,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알람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울릴 것이다. 띠띠. 띠띠.

        지난 주 씨네21 김연수 칼럼(아주 좋았던) 중에 아이포드 터치의 금연 (시도)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온다. 그 프로그램대로 담배를 피우다 보면 흡연량이 나도 모르는 새 줄어들어 언젠가 금연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나. 현재 자신이 피우는 담배의 개수를 입력하면 담배를 피울 시간을 정해준단다. 오늘,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오후 5시 넘어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꺼내들고 창가에 기대서 마셨다. 어느 쪽 하늘은 주홍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고, 어느 쪽 하늘은 아직도 새파랬다. 어느 나뭇잎은 아직도 싱싱한 초록빛이었는데, 어느 나뭇잎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포드 터치에 실연 (극복) 프로그램이 없을까하고. 아프고, 힘들고, 그냥 딱 죽어버리고 싶은 실연의 상처를 이 프로그램이 치료해주는 거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에만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매일 매 순간 생각해서는 안된다. 딱 그 시간만. 그렇게 아이포드가 시키는 대로, 그 시간에만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보다 언젠가 하루에 2분만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프로그램. 그 때 결정하는 거다. 그 사람을 영원히 잊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그리워하시겠습니까.

       던에게 필요한 건 그 반대 프로그램. 늙어 죽을 때까지 지금의 엄마를 기억하기.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니까. 그래서 도움이 되는 일들도 있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잊고 사는 멍청한 인간들이니까. 이 그리움 (지속)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던은 평생 지금의 엄마를 기억하는 거지. 처음에 자신이 지금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입력하면, 프로그램은 하루에 어느 시간만큼 엄마를 그리워해야 하는지 정해줄 거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들(하지만, 그 말들이 결코 마지막이 될 지 몰랐던), 마지막으로 안아주었을 때의 냄새(역시 마지막이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거다. 오늘은 그 말들을 떠올리세요. 5분동안. 오늘은 그 냄새를 맡아보는 거예요. 코를 킁킁거려봐요. 10분동안. 해가 지기 전에 매일 변함없이 그리워하는 거다. 알람이 울리면 천국의 엄마와 같은 시간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거다. 
     
        아, 이 영화는 어떠냐면, 아주 서서히, 천천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울린다. 생각치도 못한 장면에서 울컥 울음이 쏟아지곤 한다. 내가 볼 땐 좋은 영화다. 85분의 시간을 함께 보낼만 하다. 존 쿠삭이 살이 많이 쪄서 등장하고 (85분 내내 슬픈 그의 눈을 봐야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음악을 맡았다. 엄마가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사랑스런 두 딸에게 전하지 못하고, 놀이동산까지 긴 여행을 떠나는 아빠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씩씩하게 이를 잘 극복할 두 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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