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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랜덤 - 달의 반대쪽에는 꿈을 꾸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
    서재를쌓다 2008. 9. 30. 23:52
    로버랜덤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톨킨이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동기때문이었다. 톨킨의 둘째 아들 마이클에게는 굉장히 좋아한 나머지 밥 먹을 때도, 손 씻을 때도 놓지 않는 바둑이 인형이 있었는데, 어느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뜬다고 잠시 자갈밭에 놓아두고는 잃어버렸다. (이걸 보면 마이클은 인형보다는 물수제비가 더 좋아한 건데) 이 인형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납인형이었는데 자갈밭에 놓아두었으니 찾기는 다 글렀다. 며칠을 울며 바둑이 인형을 그리워하는 아들을 위해 톨킨은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로버, 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는데, 요 장난꾸러기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은 거야. 마법사는 화가 났겠지. 그래서 로버를 아주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리고 인형가게에 전시해 놓았는데, 그걸 마이클 니 또래의 아이 엄마가 사 가서, 그 아이의 인형이 되어버린 거지. 그 아이는 간청하는 자세로 앞발을 내밀고 있는 그 인형을 너무 좋아해서 밥 먹을 때도, 손 씻을 때도 놓지 않았어. 하지만 물수제비를 인형보다 더 좋아했던 아이는 아주 잠깐 그 인형을 자갈밭에 내려놓았지. 그러곤 잃어버린거야.

       로버 강아지, 아니 지금은 인형이지. 그 인형은 얼마나 답답하겠어. 자기는 원래 강아지였잖아. 크기도 컸고,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인형의 모습으로는 간청하는 자세밖에 못 취한다고. 그래서 다른 마법사를 찾아가 간청을 하지. 간청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로버의 사정을 들은 마법사는 로버를 그냥 달나라로 보내. 자기는 그만큼 능력이 없다는 거지. 아무튼 달나라에서 강아지로 되돌아가서 달 사나이와 달 강아지와 신나게 뛰어 놀아. 거기엔 달의 뒷면이라고 꿈의 세계가 있는데, 어린이들이 꿈을 꿀 때 거기로 오는 거야. 그러니깐 로버는 거기서 자신의 주인(물수제비 좋아하는 애 있잖아)을 만나게 되는 거지. 그러다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달의 뒷면에서 뽕-하고 사라지고 나니깐 로버는 그 아이가 그립고, 지구도 그리워진 거지. 그래서 또 간청하는 자세를 취해.

       그러니까 마법사는 이번엔 바닷속으로 보내. 처음에 바지 뜯어서 인형으로 만든 그 마법사가 예쁜 인어 아가씨랑 결혼을 해서 바닷속에서 사는 거야. 가서 직접 용서를 빌라는 거지. 그래야 인형에서 강아지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또 바닷속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복도 많은 놈. 달이며 바닷속이며 말이 되냔 말이지. 아무튼 이번에도 로버는 신나게 즐겨. 바닷속에서도 친구를 금방 사귀고. 사교성이 뛰어난 녀석이야. 마법사는 너무 바빠서 로버를 강아지로 만들어주는 걸 자꾸 잊어버리다가 어느 날 잘려서 쫓겨나고 한가해지니깐 그때서야 로버의 간청을 들어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간청 인형 로버는 쾌발랄한 강아지 로버로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야. 그런데 달도 여행하고 바닷속도 여행한 주제에 그대로겠어? 어른스러워 진거지. 생각도 깊어지고, 더이상 말썽꾸러기 로버가 아닌 거야. 

        뭐 대충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책 속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유쾌한 한 편의 동화지만,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이 너무 예뻐서, 너무 따스해서 나는 이 책이 좋아졌다. 그런 아빠는, 아이의 슬픔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위로해주는 아빠는 너무 근사하다. 나는 우리 아빠가 지금 충분히 좋으니까, 그런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 남편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봤다. 

        이 책에는 동화니까, 싶을 정도로 예쁜 표현들이 세 군데 있었다. 나는 노오한 표지에 맞춰 노오란 포스트잇을 그 페이지들에 붙여놓았다. 첫 번째 페이지는 51쪽, 아침의 해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어릴 적에 스케치북에 그려 넣었던 새빨간 동그라미에 직선의 햇살을 그린 해가 눈, 코, 입을 가지고 방긋 웃는 그림을 생각해 냈다. 귀여워, 귀여워.

       이건 두 번째 페이지. 달빛을 귀찮게 하고, 이 구절을 읽고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달 사나이는 로버에게 달에서 꼭 하지 말아야 할 몇가지를 일러준다. 달빛을 귀찮게 하지 말고, 흰 토끼들을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집으로 와라. 지붕 창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 한참을 웃었다. 그래, 토끼 죽이면 절대 안 되지. 너무나 예쁜 상상력. 

        기억해야 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달의 반대쪽에 있다. 달 사나이가 있다면, 그래서 그가 꿈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꿈을 꾸면 달의 반대쪽으로 단숨에 날라갈 수 있다면, 그 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나면 그 사람과 다시 헤어지는 거라면, 나도 꿈 속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반지의 제왕>도 영화로밖에 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톨킨의 글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톨킨이 다정다감하고, 감상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며, 모험을 즐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겠다. <로버랜덤>은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시시한 동화다.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를 것 같다. 읽으면서 점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있긴 했다. 그런데 마음. 이 이야기를 만든 톨킨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 동화는 한없이 따스해진다. (실제로 내 친구는 아이를 위해 동화 몇 십 편을 직접 만들었다는 지인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아, 그런데 이 이야기는 톨킨의 둘째 아들 마이클보다는 첫째 아들 존이 더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단다. 마이클은 초반부 이야기에 만족하고 흥미를 잃었다나. 하여튼 부모 마음 알아주는 건 첫째가 최고라니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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