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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례 없는 결혼식
    모퉁이다방 2007. 12. 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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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토요일은 친척 결혼식 때문에 올라온 엄마랑 데이트도 하고, 오래간만에 이모랑 삼촌이랑 외할머니도 뵙고. 일요일에는 동아리 동기 언니 결혼식이였어요. 그런데 이 결혼식에 주례가 없었어요. 특이하고 참신하더라구요. 아, 마냥 부러웠습니다.

       일단 식장 바깥에 입장할 때 살포시 밟아 줄 카펫을 깔고 그 끝에 새신랑이 서 있어요. 2층에 신부 대기실이 있었는데, 새신부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신랑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거예요. 무슨 노래였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였는데도 참 좋아보이고 멋졌어요. 행복한 게 온 몸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신부, 신랑 입장을 한 뒤에 사회자가 간략하게 신부와 신랑을 소개하더니 두 사람이 사랑의 서약이 있겠다고 하는 거예요. 신랑이 마이크를 받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이어서 신부가 마이크를 받아서 이야기를 해요. 앞에서 신랑이 다 얘기해버려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될지 모르겠는데,부터 시작해서 어제 이 멘트 준비한다고 머리가 아팠다고, 여기 오신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리고 잘 살겠다고. 그리고 나 누구는 누구를 신랑으로 맞아...로 시작하는 결혼 서약 멘트를 읊었어요. 신랑이 할 줄 알고 자기도 준비했는데 신랑이 안 해서 자기라도 해야겠다면서요. 그러니깐 신랑이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신부의 서약 멘트를 귀엽게 약간 바꿔서 읊었어요.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부모님이 마이크 앞에 나오셔서 인사 말씀을 하셨어요. 둘이 공부하라고 대학원 보냈더니 연애한다고 공부 소홀히 하는 줄도 몰랐다면서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정작 결혼식에 가서 결혼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나 이야기를 길게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이야기두요. 먼 친척 결혼식을 가면 결혼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면서 축의금 내고 밥만 먹고 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이런 결혼식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박수도 많이 받구요.

       여러 이야기 하는 시간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 드리기 전에 신랑이 준비한 게 있었어요. 신부를 세워놓고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서툴게 건반을 누르면서 이적의 '다행이다'를 불렀어요. 사실 잘 부르지 못했는데도 잘 부르는 것보다 더 멋졌어요. 떨리고 음정도 자꾸 틀렸지만 그 진실한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얼마나 연습했을까. 얼마나 떨릴까. 그리고 얼마나 행복할까. 큰 박수를 받고 노래를 마치고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의 축가가 있었어요. 신랑의 고등학교 친구랬는데 하나도 떨지 않고 좌중을 압도하면서 노래를 불렀죠. 처음 곡은 잔잔한 팝송이였구요. 두번째 곡은 NatalieCole의  LOVE였어요. 노래가 시작하자 다른 친구들 몇 명이 함께 나와서 경쾌한 막춤을 추면서 흥을 돋궜어요. 노래가 끝나가자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신랑, 신부 행진을 도왔어요. 그래서 신랑,신부는 결혼식 행진곡이 아닌 친구가 불러주는 LOVE를 들으면서 예쁜 폭죽이 터지는 중간에 경쾌하게 행진을 했어요.

       처음에 주례가 없어서 당황했는데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격식을 차리지 않아서 어른들은 불편해 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보는 저희는 참 행복해 보이고 더불어 즐거웠어요. 판에 박힌 주례사에 10분만에 끝나는 결혼식이 아닌 당사자들이 준비하고 보여주고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결혼식이여서 좋았어요.

       언니, 잘 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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