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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천
    여행을가다 2018. 10. 14. 21:19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숙소성애자인 나는 어디선가 강원도 홍천에 있다는 근사한 숙소 사진을 보고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을 했더랬다. 칠월이었고, 둘다 금요일 연차를 냈다. 출발 전,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사러 마트에 들렀는데 아마도 장마를 앞두고 하는 할인 행사를 보고 마음이 동해 세차장에 갔다가 나름 거금이 드는 서비스를 받았더랬다. 몇 시간 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좁은 산길을 달릴 줄도 모르고. 차에 나뭇잎들이 닿을 때마다 안타까워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홍천의 깊은 산 속 숙소에 도착했다. 층층이 단독 복층 건물이 있었다. 제일 꼭대기 층에는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로 된 휴식공간이 있었다.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니, 인상 좋게 생기신 아저씨가 달려오셨다. 오늘 예약한 사람이 우리 뿐이라고 했고, 수영장도 나뭇잎들을 걷어 두었으니 이용해도 된다고 하셨다. 숙소 뒤쪽에 자두나무가 있는데,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냥 툭툭 떨어지는 중이라고 마음껏 따 먹으라고 했다. 무척 달다고 했다.    

     

       세차 때문에 마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늦게 출발했는데,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다는 이야길 들으니 산속이라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좀더 빨리 올 걸 후회도 됐다. 짐을 풀고 아저씨가 말한 자두나무로 가서 자두를 따려는데, 기구를 이용해도 잘 따지 못하는 걸 보시더니 오셔서 네 손 가득한 양을 아주 손쉽게 후두둑 따주셨다. 여기 자두가 정말 달아요. 약을 안 친 거라 그냥 바로 먹으면 돼요. 건네 주시는 자두를 옷에 슥슥 문질러 한 입 먹어봤는데(사실 별 기대가 없었다), 정말로 엄청나게 맛있어서, 따주시는 양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받고 있었다. 저녁시간 바베큐 준비를 부탁드리고, 맥주 한 캔씩 가지고 나와 수영장에 나란히 발을 담그고 앉았다. 둘다 수영을 못하니까 들어갈 계획은 없었는데, 아저씨가 구명조끼도 있고 튜브도 있다면서 들어가서 놀라고 말씀해주셨다. 같이 간 사람은 그동안 주로 펜션으로 놀러갔고, 나는 호텔이 제일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숙소의 관리자인 아저씨 덕분에 펜션에 대한 호감도가 완전히 상승했다. 하얀색 선베드에도 누웠는데, 조용하고, 선선하고, 신선했다.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바베큐를 준비해주시면서 깻잎과 상추도 잔뜩 주시고, 김치도 주시고, 밥도 넉넉하게 한 그릇 퍼다 주셨다. 바베큐장은 숙소 바로 옆에 사면이 투명한 유리로 된 작은 독립된 공간이었다. 밖에서 목살을 바삭하게 구워다 모기장을 피워놓은 바베규장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각자의 술을 마시고, 쌈을 가득 싸서 고기를 먹었다. 금방 어두워졌다.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금새 화해를 하고 수영장 옆 파라솔에 앉아 가지고 간 까바를 마셨다. 청량한 탄산과 알딸딸한 알코올이 근사한 밤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흥이 오르자 다시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앉았는데, 그때 같이 간 사람이 그랬다. 왠지 오늘이 엄청나게 기억에 날 것 같아. 여행에서 숙소는 늘 나의 담당인데, 늘 좋은 숙소로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 수영을 못한다는 우리에게 수영장이 그렇게 깊지 않다고 한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한번 들어가볼까? 내가 말하자, 같이 간 사람이 그럴까? 하더니 구석에서 구명조끼와 튜브를 가져왔다. 내가 구명조끼를 입었고, 같이 간 사람이 튜브를 끼었다. 아니, 그 반대였나. 아무튼 내가 먼저 들어갔다. 괜찮다고, 발이 충분히 바닥에 닿는다고, 아주 좋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고, 같이 간 사람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물은 적당히 따듯했다. 구명조끼에 의지해서 발장구를 쳐 봤는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더라.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어릴 때 물에 빠질 뻔 한 적이 있어 무서워 가만히 서 있는 사람에게 나를 믿으라고 하면서 튜브를 끌어줬다. 앞으로 천천히 나가자 그 사람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러더니 발장구를 치며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각자 얼굴을 뒤로 젖혀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기도 했다. 통유리로 된 휴식공간에 있던 아저씨가 내다보더니 드디어 들어갔네요! 하면서 껄껄껄 웃으셨다. 우리는 물속에서 엄청 좋아요, 라고 외쳤다. 그렇게 깜깜한 밤, 물 속에 함께 있으면서 같이 간 사람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도 근사한 밤이 되었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오래오래 추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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