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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바도
    여행을가다 2017. 6. 27. 15:41


       토요일. 가우디 건물 까사밀라 썸머나잇을 온라인으로 예매해뒀다. 조식을 먹고, 어제 야경투어를 했던 고딕지구를 낮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까사밀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어제와 변함없는 조식. 오늘의 빵은 첫날과 같은 크로와상. 같은 메뉴이지만 좀 다르게 먹어보고 싶어 바게뜨의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치즈와 하몽을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었다. 크로와상까지 다 먹으니 또 배가 엄청 불러오고. 오늘은 모자를 챙겼다. 출발해봅니다. 야경투어의 가이드님이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보는 플라멩고 공연을 추천해서 온라인 예매를 하러 들어갔더니 직접 가서 표를 사는 게 조금 싸더라. 그래서 극장에 가서 중간정도의 가격으로 티켓을 구입했다. 여기 음악당 기둥 부근에서 푸른바다의 전설이 촬영되었단다. 기둥 앞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셀카는 어떻게 찍든지 좀 애처로워 보인다. 인스타그램에 셀카와 함께 "나는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다들 짝이 있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주문을 외운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현재 이 셀카문구는 시리즈가 되어 올라가고 있다. 읔- 최대한 즐거워 보이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포인트!

       메모해두지도 않고, 지도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어제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어제는 리세우 극장에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까딸루냐 음악당에서 시작했다. 고딕지구는 정말 낮과 밤이 다르더라. 어둡고 혼자 걷기에 무서웠던 거리가 밝고 혼자 걷기에 더 괜찮은 거리로 변모해 있더라. 오래된 건물들, 오래된 골목들. 좋았다. 츄러스 맛집과 따로 구입하길 권장했던 초콜릿 맛집도 보였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사먹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 츄러스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다음번에 기회되면 먹어보자고 위안했다. 가이드가 왕의 광장 부근의 기념품 가게가 비교적 저렴하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상점직원이 있었다. 나를 보더이 단번에 꼬리아? 한국에서 '7살' 동안 살았다고 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았단다. 그러면서 티셔츠를 싸게 주겠다고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지도가 그려진 상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귀여운 바르셀로나 상징물들이 그려진 티셔츠에 관심을 보이니 벽에 걸려있던 걸 푹 찢어서 보여준다. 아, 나는 이걸 살 수 밖에 없겠구나. 결국 티 하나랑 친구가 선물해준 캔들에 쓰려고 라이터 하나를 샀는데, 라이터는 망설이다 안 산다고 하니 깍아준다 하더니 계산할 때 그대로 받겠다고 하더라. 그냥 제값을 줬다.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티 더 사라할까봐 사실대로 없다고 말했는데, 전화번호를 물어봤다는. (그래도 고마웠다;;) 

        아까 미사 중이라 입장하지 못했던 대성당에 다시 갔다. 나는 스테인드글라스만 보면 편안해진다.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사진을 찍으면 절대 내가 보고 있는 그대로 찍히지 않는다. 훨씬 아름답다. 그냥 가만히 올려다 보는 수밖에 없다. 대성당을 나오니 광장 한 켠에서 클래식 악기들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까딸루냐 전통 춤인 사르다나를 추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일요일에 엄청 큰 대열로 사르다나를 추는 광경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작은 동그라미였다. 쉽고 단단한 춤. 책에서 읽은 사르다나 춤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음악이 끝나니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도, 사르다나를 추던 어르신들도 모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음악이 또 시작되니 다른 동그라미가 금새 만들어졌는데, 한 할아버지가 한창 진행되는 춤에 슬그머니 다가가 살며시 두손을 내밀어 합류하셨다. 귀여우셨다. 

        배가 고파 타파스 맛집을 검색해봤는데, 근처에 저렴하고 친철하다는 후기의 가게가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바로 근처인데,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검색한 맛집보다 가격이 더 비싸고 그리 친절하지 않았지만, 들어왔으니 시켰다. 일단 물과 맥주. 타파스는 4개 세트를 주문했는데, 추천 받아서 그대로 주문했다. 맥주가 들어가고, 타파스를 하나하나 먹어보는데 나쁘지 않았다. 아, 괜찮네. 생각이 들 즈음 맞은편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내가 찾던 바로 그 가게였다. 아아아. 그렇지, 뭐. 내가 그렇지. 흠. 그래, 그냥 맥주나 하나 더 시키자. 세르베사 뽀르 빠뽀르. 든든해진 배로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가게를 나섰다. 고민하다가 그냥 숙소로 들어가기는 너무 배가 불러 구엘저택에 갔다. 어제 가이드가 들어가보면 참 좋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큰 감흥은 없었다. 구엘은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가우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지 오웰과 피카소가 모두 가우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어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지 오웰은 가우디가 부자들의 건물만 지어댄다고 싫어했다고 한다. 옥상에 오르니 바르셀로나의 강한 햇볕이 그대로 쏟아졌다. 가우디와 가우디의 꿈을 실현시켜준 구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숙소에서 까사밀라 입장 시간까지 쉬었다. 아, 정말이지 저질 체력이구나. 중간에 크게 쉬어주지 않으면 돌아다니질 못하겠어. 샤워를 하고,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원피스로 갈아 입고 까사밀라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안테나 뮤직의 워리어스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아, 신난다. 나는 지금 바다 건너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고 있다. 바람 결에 실려 내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신재평이 콧소리를 콩콩 내며 여름날을 노래한다. 까사밀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관람은 옥상에서부터 시작해서 두 층까지 내려온다. 그 밑에는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의 전반적인 건축 세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둘러보는 동안 자리는 아팠지만 좋았다. 아, 구엘저택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어서 내게 지루했던 걸까. 다 둘러보고 나와서 저녁을 먹을 만한 데를 찾다가 그냥 까사밀라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만석이라고 해서 테라스에 앉았다. 피곤하지만, 일단 맥주. 대구 요리를 시켰는데, 색깔이 무척 예뻤다. 맛도 근사했다. 중간에 바뀐 웨이터가 내가 읽고 있는 가우디 책을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캄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니 좋아하는 뮤지션이 서울에 있다고 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이루마라고. 내 왼쪽 테이블에는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내 오른쪽 테이블에는 왠지 대만 사람인 것만 같은 귀여운 청년이 혼자 와서 맥주와 음식을 시켰다. 썸머 나잇 입장 시간이 되어 이루마를 좋아하는 친절한 웨이터에게 팁을 남기고 테라스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올라간 까사밀라 옥상. "특히 옥상은 카사 밀라 감상의 하이라이트로 옥상에 오르는 순간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는 사라지고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우주가 펼쳐진다. 한여름 밤에는 음악 연주회를 열어 아주 특별한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의자는 따로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앉으면 된다. (7박 8일 바르셀로나, p.142)"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잔잔한 물결을 닮은 건물과 정말 다른 세상에 온듯한 굴뚝과 구조물들이 즐비한 옥상에 앉아 밴드의 재즈 연주를 들었다. 음악이 딱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 여름밤 바르셀로나 도심 한가운데서 몇몇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 마법같은 분위기가 무척 설레였다. 비록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밴드가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이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외롭긴 했지만, 좋았더랬다. 옆 사람이 말을 걸어주는 마법같은 순간을 꿈꿨지만, 그런 순간은 절대 오지 않았고, 모두들 삼삼오오 행복해 보였더랬다. 도시는 어두워졌고,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이 적당히 쓸쓸한 것이 괜찮았다.


    바르셀로나, 넷째날 - 오늘의 행복했던 일 : M사이즈를 입어야 하는 내게 S사이즈를 추천해준 고딕지구 기념품 가게 직원. 살 빼서 입어야지 했는데, 왠걸 숙소에 와서 입어보니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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