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런 질문은 애시당초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굿은 아니지만 바이를 했고, 상황은 디 앤드되었으니까. 부산역 근처 호프집에서였다. 헤어진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잘 지냈느냐, 살이 좀 쪘네 마네, 맥주잔 언저리를 매만지며 어색한 말들을 주고 받고 있던 중에 갑자기 내 입에서 그 질문이 튀어 나와 버렸다. 정말 그 날 나는 바보 같았다. 너무 바보 같았다. 친구가 택시를 잡고 뒷좌석에 들어가 앉는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야말로 엉엉 울었다. 그 당시에는 쪽팔려서, 바보 같아서, 살이 쪄버려서 이렇게 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그제서야 끝난 굿, 바이였다. 그냥 바이가 아니라 굿바이였다. 내 마음에 한 톨의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은 완벽한 해피앤딩이였다.

   연극 <썸걸즈>에는 한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네 명의 여자는 모두 남자의 과거의 사람들이다. 남자는 호텔에 세련되고 아담한 방을 하나 잡아두고 자신의 과거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다. 세련된 이 남자는 시트콤 프렌즈를 보면서 한 때는 서로에게 맞닿은 살을 뗄 수 없었던 러버였지만 지금은 프렌드에 불과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준비를 끝낸다. 그리고 무대 뒤 빠알간 계단으로 그의 과거들이 하나씩 내려와 문을 두드리고 그 방에 머물렀다가 울고, 화내고, 분노하며 떠난다. 남자는 묻는다. 나 너한테 그렇게 잘못한 거 없는 거지? 우리 굿, 바이 한 거지? 우리 해피엔딩인거지?

   작년에 한 <썸걸즈> 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후기가 너무 인상적이여서 끝나기 전에 꼭 한번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연극이 끝나 버렸다. 그러다 이번에 알라딘에서 초대 이벤트를 하길래 다시 시작했나보다고 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당첨이 됐다. 이석준이든 최덕문이든 상관없을 정도로 두 배우 다 좋은데, 그 날은 이석준씨 공연이었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작년의 그 리뷰 내용을 떠올리려고 애썼는데, 기억력이 나쁜 탓에 딱 한 이미지만 떠오르더라. 한 남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이 가여웠다고 쓰여져 있었던 것 같다. 가서 쓰다듬어주고 싶었다고. 자꾸 마음이 쓰였다고.

   연극을 보면서 자꾸만 2년 전 그 택시 안이 생각이 났다. 호프집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가는 길. 창문을 내렸었던가. 겨울이었으니깐 분명 창문을 안 내렸을 거다. 그런데 꼭 내린 느낌이다. 창문을 있는대로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얼굴 위로 잔뜩 맞으며 막히지도 않고 확 트인 도로를 쌩쌩 달렸던 기분. 택시 안에서 엉엉 울면서 정말 이게 너와 관련된 마지막 눈물이라고 확신한 순간. 이제 정말 과거가 되는 구나. 혼자서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과거와 현재 사이를 곧은 자를 대고 어거지로 잇곤 했던 날들이여 안녕. 이건 정말 내가 너를 위해 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우는 거란 확신이 들었던 순간. 이제는 미련없는 내 과거여 안녕. 

   그러니까 나는 그 날 무대에서 이제는 걸, 이라기 보다는 우먼, 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네 명의 여자들이 높고 빠알간 계단을 내려와서 문을 두드리고 방에 들어오게 되는 동선이 아니라 외투를 걸친 뒤, 고개를 돌려 남자를 한 번 돌아보고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고 문을 닫고 그 문 앞에서 1분을 머물고 다시 높고 빠알간 계단을 올라가는 동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걸들은 아니 이제는 우먼이 된 걸들은 한 때 열심히 사랑했고, 열심히 미워했다. 다시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혹시나 설레였고, 혹시나 망설였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와 우리는 해피엔딩인 거지, 라고 묻는 남자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 방을 나섰다. 그 문 앞에서의 1분. 눈물을 닦고 마음을 추스리고 과거를 땅에 놓아두는 그 1분. 이제 열심히 사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낮은 곳에 놓아두고 탐스러운 빨간 계단을 경쾌한 구두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거다. 응. 남자를 제외한 썸걸즈는 분명 해피엔딩이다. 응. 응.

   나는 물었다. 바보 같이. 멍청하게. 하지만 혹시나 설레여하며. 그런데 그 땐 왜 그랬던 거야? 11자. 나는 정말 밝고 경쾌하게 저 11자를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그가 1분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면. 1분이라도 그 때를 후회하는 기색이 보였다면 나는 그 날 택시 안에서 엉엉 울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제주도 바다에 뭔가를 버리고 돌아오진 않았으리라. 그랬다. 11자에 대한 대답은. 그 땐 마음이 식었으니까. 10자. 나는 <썸걸즈>를 보면서 간절히 바랬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요. 너무 멍청해 보이잖아요. 혹시나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네 명의 우먼들은 걸이 되어 빠짐없이 그 질문을 내뱉었다. 11자. 그리고 남자는 대답했다. 너밖에 없다고,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남자의 대답은 모두 같았다. 10자. 그런데 내가 극장을 나서면서 느꼈던 건 12자였다. '나도 그녀들도 바보 같지 않다' 응. 응. 우리는 바보 같지 않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미워한 이건 굿, 바이고 해피엔딩이다. 비록 남자의 사랑이, 남자의 대답이 새빠알간 거짓말일지라도.  

,
   지난 수요일, 신경림 시인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신경림 시인도 시인이지만 노래 손님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신청하면서 꼭 당첨됐음 좋겠다 했는데 운 좋게도 초대받았다. 요조와 김광진. 신경림 시인은 이번에 <낙타>로 시집을 내셨고, 김광진씨는 '아는지'로 6년만에 컴백하셨고, 요조는 앨범 낸지는 좀 됐지만 요새 꽃미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더욱 유명해지고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홍대 상상마당으로 가서 요 세 분을 만났다. 생각만큼 좋았다. 뜻밖의 선물도 받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조. 드디어 요조를 직접 만났다고요조. 왠지 무대 위에서 수줍음을 많이 탈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말도 잘 하고, 라이브도 잘 하고. 목소리가 어찌나 마음을 녹이던지. 슈슈..슈팅스타,로 시작하는 '슈팅스타'를 불렀다. 야호.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LOVE'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진심으로 좋아하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라고 요조가 말하자 신경림 시인께서 그래서 내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했더니 내 시인이 신경림이는 이제 망했다고 했어요,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 웃어버렸다.




    요조가 낭송한 신경림 시인의 '즐거운 나의 집'. 시에 나오는 주소들은 시인께서 거주했던 진짜 주소들이란다. 사회자가 집에 관한 추억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하니 술 마시고 집 목 찾아 들어간 적이 있어요. 이사한 새 집을 못 찾아가서 파출소로 가서 집 찾아달라 했죠, 하시는. 아, 이런 표현 좀 그렇지만 이 날 신경림 시인은 진정으로 귀여우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광진. '편지'를 직접 들었다. 이 노래만 들으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서늘해지기도 하고 따스해지기도 하고. 김광진씨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덩치가 크셔서 놀랐다. 역시나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서 말씀하셨던 수익률 1위를 달성했던 더 클래식 펀드 이야기를 하시면서 여러분에게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동시에 주고 있는 유일한 가수입니다,라는 재치있는 멘트까지 날리셨다는.




   예전에 푸른밤 라디오를 듣다가 성시경씨가 김광진씨를 소개를 하는데, 그 전에 '마법의 성'을 들은 후였다. 저같으면 '마법의 성'같은 노래를 하나 만들면 평생 다른 거 안 하고 음악만 하고 살텐데 이 분은 펀드매니저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는데. 동감. 부럽습니다. 작곡에 수익률 1위 펀드 매니저에.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신곡 '아는지'까지 들었다. 이 노래 처음 들을 땐 왠지 밍숭맹숭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날 제가 흠뻑 반해버린 분이 있었는데, 신경림 시인의 후배 시인으로 나왔던 박성우 시인. 제가 생긴 건 측은지심이지만 무려 면장 딸이랑 연애를 해 봤습니다, 라는 식의 멘트로 객석을 유쾌하게 만들어주셨다. 문청때부터 동경해왔던 시인 옆에서 말을 하려니깐 제가 자꾸 헛소리를 하잖아요, 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다 박성우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하나 낭송했는데 어찌나 찌릿하던지 울어버렸다. 특히 이 부분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를 어찌나 맛깔나게 읊으시는지. 자신은 몸으로 먼저 시를 쓴다며. 시를 쓰려 했는데 괴로웠다는 관객의 질문에 자신은 그렇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고. 이렇게 시를 써서 결혼도 하고, 딸도 생겼고, 하면서 허허허 농부같이 웃는다. 그런데 낭송할 때의 목소리는 천상 시인이다. 깊고 아득한.

   그만 울어버린 시는 바로 이 시다. 그 날 바쁘게 나와야해서 시집도 못 사고, 사인도 못 받았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주문했다. 박성우 시인의 시집 <가뜬한 잠>.
 

  봄날은 간다 
                          박성우

  깜장양말에 깜장구두다
  아코디언으로 주름잡는
  여섯 악사 모두
  깜장중절모에 깜장염색머리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은
  평상시 노는 할머니를 차지고
  행인들은 흘러간 옛노래를 따라
  느티나무 봄 그늘로 흘러들어온다

  손자에게 목욕가방을 맡긴
  할머니가 마이크 전해받는다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
  여섯 악사들은 봄날은 간다고
  아코디언 주름을 접고 펴는데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
  에서 꿀을 먿은 할머니는
  연분홍 치마를 놓치고 놓쳐
  아코디언 반주만 봄날은 간다

  중절모 사회자의 시작 손짓에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봄날은 가고
  허명순 할머니는 열아홉 허명순이로 간다

  열아홉 꽃망울은 복사꽃밭서 터지고
  복사가지 흔들흔들 꽃잎은 흩날린다
  어찌야 쓰까이 요로코롬 피어부러서,

  노래 마친 할머니도
  아코디언 연주하던 중절모들도
  할머니 봄날 앙큼하게 더듬어보던 나도
  느티나무 아래 평상도
  평상시 봄날로 간다


그리고 이 시.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날 시인은 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시는 쓰는 사람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주어야 한다고.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나는 이 말을 메모하며 시가 있어 시인이 있어 다행이라고, 봄이 있고 가을이 있어 다행이라고, 음악이 있고 내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도 안되는 연산을 이어나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날 창비에서 <완득이> 10권을 나눠줬는데, 당첨! 그리고 알라딘 만우절 이벤트 1등에 당첨돼서 받은 아이리버 E100! 너무 좋아요! 완득이, 얼마나 사랑스런 녀석인지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가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그리고 홍대에서 맛집 발견. 튀김집인데 생맥을 판다. 맥주도 튀김도 아주 맛난다.

 
,

   해물 치즈 떡볶이와 고추만두, 소고기 김밥을 먹은 뒤였다. 적당히 먹었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는데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밀려드는 나른함. 자판기 아메리카노의 쓴 맛으로 노곤함을 달랬지만 언젠가처럼 '무려' 연극을 보면서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예전에 <갈매기>를 보다 졸았다. 가을이었고 몹시 추운 날이었다. 바깥에서 들어오니 극장 안이 너무 따뜻했다. 저절로 눈이 감겨 살짝 졸았는데 내 옆에 앉은 커플이 나를 보며 킥킥 댔다. 자기야, 내 옆에 여자 잔다. 크크. 어찌나 정신이 벌떡 들던지. 그 말을 듣곤 눈알이 띄어나올 정도로 눈을 번쩍 뜨고 봤다. 잠깐 연극을 음미하려고 눈을 감았을 뿐인 척하면서. 그 커플에게 더이상 내가 자지 않는다는걸 알려주려고 자주 과장되게 몸을 비틀어대면서.
 
   연극이 시작하고 얼핏 그때처럼 잠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등장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너무 진부했다. 바람이 나 가정을 떠난 엄마. 그 엄마를 미워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딸. 뻔하잖아. 엄마 민자씨는 카바레에서 노래하는 카수고 그 카바레에는 역시 바람이 나 도망친 엄마가 있는 딸 또래의 다른 동료 카수가 있다. 딸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민자씨를 외면하고, 민자씨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러 애쓰고. 딸 미아에겐 시인을 꿈꾸는 끝이 뽀족한 삼각김밥같은 '청춘'의 짝사랑이 버겁다. 그러니 이 연극은 온통 사랑타령이다. 사랑이 식어 부인을 구타했던 민자의 남편, 그래서 바람난 민자, 그래서 버림받은 딸 미아, 그런 고슴도치 미아를 사랑하는 청춘.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사랑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과 그 사랑을 지독히도 불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랑공화국이다.

   연극은 늘 왜 이렇게 진부한 설정들이 많은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던 즈음 노래가 울려퍼졌다. 민자씨가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 가발을 쓰고 현란한 반짝이 의상을 입고 김추자의 '무인도'를 부르던 순간. 민자씨가 태양에게 솟으라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고, 캄캄한 밤에도 별들은 빛나라고 노래하던 순간부터 오른쪽 가슴이 간지러워지면서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러다 결국 울어버렸다. 죽은 남편에겐 미안한 거 하나 없지만 너한텐 정말 미안하다고 민자씨가 흐느낄 때. 물방울 소리때문이니 제발 내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딸에게 부탁할 때. 저 멀리서 사랑이 올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장가를 불러줄 때. 아, 이 연극은 엄마와 딸의 연극이구나. 그래서 뻔하지만 마음이 이리 뭉클해지는 거구나, 싶었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연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내가 엄마의 뱃 속에서 꼬박 열 달을 보냈다는 사실 말이다. 어쩌면 당연하고 뻔한 일인데, 생물 시간에도, 막연히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 생각했던 어떤 시간에도 나는 내가 엄마의 뱃 속에서 열 달을 고스란히 뛰어놀고 힘겨운 산고의 고통을 엄마에게 짊어주고 풍덩 이 세상에 나왔다는 걸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열 달. 나는 엄마의 뱃속에 있었다. 마치 캥커루처럼. 우리는 하나였다. 엄마가 맛있는 걸 먹으면 나는 그걸 받아 먹었고, 엄마가 행복해하면 나는 양수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을 하며 행복함을 느꼈다. 나는 점점 엄마 뱃속에서 부피가 커져갔고 발로 뻥뻥 차면서 엄마를 기쁘게 해 주었을 거다. 그 꿈같은 열 달. 이 세상 어느 누가 나와 그렇게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 때의 기억이, 그 때의 느낌이 지금의 내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안전히 품고 있었던 단 열 달간의 기억만으로 나는 이 험한 세상을 아주 씩씩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러니 나는 이 연극의 객석에 아줌마들이 많은 게 좋았다. 아줌마들은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울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느낌을 민자씨가 읊는데 내 뒤에서 크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소리다. 마지막에 민자씨가 '무인도'를 다시 부를 때 어떤 아줌마가 목청이 터져라 부른 '파도여'. 나는 우리 엄마도 여기 있었으면 저렇게 목청 터지도록 '파도여'를 부르면서 깔깔거리고 박수를 쳐댔겠지 생각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남쪽에 있는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었다. 같이 보았으면 엄마가 정말 좋아했을텐데.

   친구와 나는 연극을 보고 나와 편의점에 들러 큰 캔맥주 4개와 오징어와 땅콩을 샀다. 아카시아향이 솔솔 풍기는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이 밤을 즐겼다. 친구의 친구는 웨딩사진 촬영을 지난 주말 마쳤고, 그 덕분에 친구는 집에 다녀왔다. 친구의 집은 제주도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제주도의 따스한 바람을 생각했다. 노오란 유채꽃도 상상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엄마에 대해 얘기했다. 언젠가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을 상상했다. 호주머니에 손 넣고 분위기 잡기를 좋아하는 아이, 외할머니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아이, 외할아버지를 끔찍히 따르는 아이, 동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 미술관 가기를 좋아하는 아이. 왠지 우린 지뿔도 없으면서 당장이라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성별은 딸로 벌써 정해놓았다. 딸이 최고라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 그 때 우리 사이로 시원한 봄바람이 솔솔 불었다. 아, 좋은 징조다. 우리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흠.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시(詩)같다. 연극 중에 시인을 꿈꾸는 청춘으로 인해 자주 읊조려지기도 하고, 민자씨며 미아며 그냥 툭툭 내뱉는 대사들도 마치 시의 한 구절들같다. 사랑에 대해 논하는 부분들에서 특히. 딸과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들에서 특히. 시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지극히 객관적이다. 그러니 온 세계의 사람들이 하나의 시에 감동하고 쉼없이 읊어대지 않는가. 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 민자씨의 사랑도 마찬가지. 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객관적인 시는 어느새 지극히 주관적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게 된다. 미아의 시가 민자씨의 시가 되었듯이.

   다소 서툴지만 젊은 배우들이 열심히 사랑해달라고 소리지른다. 짝사랑하는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실은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왔다는 마음을 알아달라고. 그리고 그 중심에 양희경이 있다. 그녀는 단연코 이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은 이 젊은 네 사람이 없으면 쓰러진다고, 이 무대를 보러 와주는 여러분이 없다면 쓰러진다고 이마 가득 땀을 머금은 채 이 무대의 진정성에 대해서 마이크를 부여잡고 이야기했다. 이 무대를 나서는 순간 우리들의 앞 날에 황금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고. 아, 정말 멋진 멘트 아닌가. 나는 마지막까지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는 정말 멋져보였다. 진실된 배우이자 아름다운 아줌마, 희경씨에게 박수를. 짝짝짝짝짝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 김추자의 <무인도> 중 -



,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이야기인 셈이죠. 서른이 아직 먼 당신이, 서른을 코 앞에 둔 당신이, 그리고 서른을 훌쩍 지나온 당신이 겪게 되거나,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이야기예요. 제 이름은 조나단이예요. 그냥 존이라고 불러줘요. 제가 지금 제일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 틱틱, 붐. 째각째각, 쿵. 왜 이렇게 제 가슴이 초조하고 째각거리기만 하는지 아세요? 전 일주일 후면 서른이 됩니다. 그래요. 어쩌면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지 숫자 삼십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요. 어릴 때는 꿈꿨죠. 내 나이 서른이 되면, 근사한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그렇게 동경하는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내 작품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는 그런 서른의 모습이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나를 꼭 닮은 아이 하나쯤이 있는 그런 서른살이요. 그런데 지금 저는 형편없어요. 누추한 아파트에, 초조함 때문에 피아노 건반도 제대로 두드리지 못하고 있고, 여자친구도 이제 이런 저의 모습에 점점 지쳐가는 듯 해요. 나도 이런 내가 질리거든요. 제대로 된 곡도 작곡하지 못하고, 생활을 위해서 끔찍한 식당 웨이터 일을 해 나가고, 테라스에 나가 대마초를 피워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나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내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건 꿈, 바로 이 녀석 하나예요. 언젠가는 저 화려한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 내 노래를 울려 퍼지는 꿈, 내가 그렇듯 누군가 내 노래를 들고 위안이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꿈, 그리고 언젠가는 이 대마초 없이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이요.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힘이예요.

   이건 내 서른 살의 생일을 앞 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예요. 꿈을 포기하려고 한 순간도 있었지만 끝끝내 포기할 수도, 좌절할 수도 없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일곱 살의 꿈이 서른 살, 지금의 꿈으로 성장했듯 그때부터 함께 서로를 의지해왔던 친구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가 가진 세 종류의 구찌 벨트가 부럽긴 하지만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이 좋아요. 그 녀석이 꿈꾸는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구요. 그렇지만 세 가지 다른 구찌 벨트가 있고 엉덩이 온도에 맞게 시트가 따끈따끈하게 데워지는 BMW를 가지고 있는 내 친구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못난 남자친구지만, 그래서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지만 내 꿈을 믿어주고, 함께 꿈꿔주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믿어주는 여자친구를 사랑한답니다. 나도 정말이지 그녀가 최고의 무용수라고 생각해요. 누군든 그 곳이 어디든 믿음이 뚜렷하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걸 그녀는 내게 깨우쳐 주었죠. 내가 서른 개의 초 위로 큰 숨을 내쉬며 촛불들을 끄게 되는 서른 살 생일의 그 시간까지, 어떤 꿈들이 꺼지고, 어떤 꿈들은 꺼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뮤지컬 <틱틱붐>은 주인공 존의 나래이션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은 친절하게 무대가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꿈과 자신의 생각들과 자신의 감정들을 무대 앞에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자신의 꿈은 브로드웨이에 올릴 기막힌 곡들을 작곡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하고,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데 하나도 해낸 것이 없다고 불안함을 토로하기도 해요. 째각째각거리다가 어느순간에는 쿵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고. 이건 자신이 무척이나 초조하다는 증거라구요. 서른 살의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구요. 그리고 우리는 존의 대마초를 함께 들이마십니다.
  
   존이 친구들을 소개시켜줍니다. 일단 자신의 불알친구 마이클이요. 말끔한 양복에 깔끔한 쑥대머리를 한 마이클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예요. 얼마 전까지 함께 누추한 생활을 하며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그 꿈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잘 나가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존은 그를 자랑스러워해요. 그리고 여자친구 수잔이 있어요. 수잔은 무용수예요. 무용을 가르치고 있죠. 그녀는 존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언제나 무대를 꿈꾸며 초조해하는 불안한 그이를 걱정하다가 결국 함께 작은 바다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자로 제안을 해요. 그렇지만 존은 뉴욕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이예요. 존이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도, 존이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대도 모두 이 뉴욕 안에 있거든요. 뮤지컬 <틱틱붐>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예요.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렌트>를 만든 작곡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갔어요. 그런데 무대가 막이 오르고 얼마되지 않아 존이 무대 위에 서서 이야기하는 단어들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서른, 꿈.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두 단어요. 아, 또 서른에 앞둔, 꿈을 이루지 못한, 하지만 그것을 놓치지 않은 이야기구나. 세상에는 서른을 절망해하는 사람도, 이루지 못했지만 붙들고 살면서 언젠가는,이라며 불안해하는 사람도 정말 많구나.  그리고 100분동안 진행될 이 무대에서 나는 또 잔뜩 위안을 받고 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정말 저는 이 무대에서 잔뜩, 아주 듬뿍 위안을 받았어요. 이 무대의 주인공 세 사람은 정말 달라요. 존은 꿈을 붙들고 절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구요. 마이클은 꿈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부유한 삶을 택해요. 그리고 배우의 꿈을 포기한 자신에게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아요. 지금 이 삶이 내 삶이고, 이 삶을 즐기는 친구예요. 아, 나는 그의 당당함에 반했어요. 후회하지 않는 삶에 반했구요. 수잔은 사이가 소홀해진 존과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해요. 자신이 제안한 작은 바닷가에서 가정을 이루며 살자는 제안을 존이 거절했지만, 그리고 일 때문에 존과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지도 불안해하지도 않고, 그를 믿고 자신을 믿고 그들이 함께 꾸는 꿈을 믿으며 떠나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서른이 되면 이런 믿음이 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수잔이 그랬어요. 이 세 사람은 자신의 지금 삶이 누추하더라도 꿈을 버리고, 꿈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예요.

   뮤지컬 넘버들도 좋아요. 흥겹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구요. 배우들의 연기가 이 뮤지컬에서 정말 중요했는데 세 배우 모두 어찌나 잘 하던지요. 존은 100분동안 무대를 단 한번도 떠나지 않구요. 수잔과 마이클은 1인 다역을 연기하는데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최고였어요. 그리고 서른과 꿈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힘이 나고 위안이 되었어요. 지금은 세상을 뜬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니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그 스....티.....비 말이예요. 아, 정말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쏟아지는 거예요. 요즘 내가 정말 눈물이 많아졌구나 느끼면서요. 다행이예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거라서요.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지는 꿈들을 볼 수 있어서요. 후반부에 존이 마이클과 함께 해 온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아주 긴 나래이션과 노래를 부르는데요. 그 긴 나래이션을 듣고 있는데, 지금 달리고 있는 존의 모습이, 그 순간 존이 스쳐 지나가는 세상의 풍경이 머릿속 안에 새파랗게 펼쳐지는 거예요. 마치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상상을 하는 것처럼요. <틱틱붐>은 어쩌면 책을 읽는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이 1인칭 시점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이 책의 주제는 학창시절 제가 사전 귀퉁이에 늘 써두었던 글귀처럼 '꿈을 잃지 않으면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구요. 이 책은 특이하게 감미롭고 흥겨운 노래가 흐르기도 하구요. 짧은 율동이 곁들어지기도 하구요.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아요.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존처럼 꿈을 이루게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힘이 생겨나구요. 그리고 서른 개의 촛불을 온 힘을 모아 끈 존처럼 그 꿈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거예요. 인생은 길고 꿈은 영원하니까요. 아, 힘이 불끈불끈 납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틱틱붐. 더 이상 존은 초조해하지 않겠죠?       

,


   여기 한 때 초록빛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최고의 팀이였던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축구팀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최고의 팀이였어요. 각자 살아온 환경도 생각하는 가치관도 달랐지만 이들은 온전히 축구 아래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오직 달리는 것, 내 곁에 패스를 해 줄 니가 있다는 것, 너의 패스를 잡아 골을 넣을 수 있는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였지요.

   우선 선수들을 소개할께요. 우선 벨파스트의 주장 존이예요. 존은 정말 축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아이예요. 이 세상은 모두 축구에 의해서 돌아가는 줄 아는 녀석이예요. 그래서 사랑에도 쑥맥인 녀석이예요. 여자친구는 늘 존에게 축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달라고 하지만 사실 여자친구도 그라운드 위에서의 존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해요. 순진하고 순수해서 축구와 친구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녀석이예요.

   그리고 토마스가 있어요. 축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녀석이예요. 아니, 축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당장 이 축구를 때려치우고라도 꼭 이 놈의 빌어먹을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예요. 이 녀석의 눈에는 항상 분노가 서려 있어요. 평화로운 아일랜드를 식민지 삼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영국놈들을 어떻게든 해야한다고 소리를 치고 다녀요. 그래서 늘 깔끔한 영국풍 셔츠를 입는 큰 키에 귀공자같은 얼굴로 그건 조상들의 일일 뿐이고 우리는 그 일에 상관없이 잘 지내야 한다고 미소짓는 프랭크와 마주칠 때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요. 그 놈과 자신이 한 팀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죠.

   또 다른 친구들, 다니엘과 컬리도 있어요. 다니엘은 늘 무언가를 훔쳐 와서는 언젠가 꼭 부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를 치죠. 이 녀석은 축구에 별 관심도 없는 듯 하고, 사실 큰 부자가 되지도 못할 것 같긴해요. 그리고 컬리요. 우리의 컬리. 축구를 사랑하지만 언젠가 카센터를 열고 싶다고 말하는, 그보다는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녀석. 그 사랑스러운 녀석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자축 파티를 열었던 그 날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행하게도 살해 당해요. 아웃 당할 짓은 전혀 않은 녀석이였는데, 전반전도 채 끝나지 않은 이 게임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게 된 거예요. 한 선수가 사라져버린, 한 때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팀이였던 녀석들은 서서히 분열되고 깨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게 각각 부서져갑니다. 마치 우리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냐는 듯이.  

    여기까지가 뮤지컬 <뷰티풀 게임>의 1막입니다. 2막은 굉장히 정치적으로 어둡고 폭력적인 색깔을 많이 띄게 되요. 결국 축구밖에 없다고, 축구만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존은 분노에 가득찬 세상 앞에서 처참하게 쓰러지고 말아요. 그라운드 위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자신과 친구들은 운동장 밖 세상을 나오는 순간, 세상은 더이상 정당한 심판과 열정적인 응원과 정의로운 규칙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배신과 철저한 자신의 욕망과 욕심으로 얼룩진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을 존은 뮤지컬의 말미에 깨달게 됩니다. 그래서 커튼콜에서 다시 한번 다같이 부르는 박력넘치는 'The Beautifel Game'은 슬프고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한 때 뷰티풀 게임이였던 우리의 세상은 사라져 버리고 땀을 흘리며 달려나가야 할 곳, 내게 패스를 해 줄 니가 더이상 없다는 것, 니 패스를 받고 골로 연결할 골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이제 더 이상 우리를 환호해 줄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한 때 그런 때가 있었기 때문에 서글퍼지는 거예요. 커튼콜의 그 힘찬 무대에 눈물이 찔끔 날 뻔했어요. 

  티스토리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그것도 아주 좋은 자리에서 뮤지컬을 봤어요. 감사합니다. 축구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요. 사실 축구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던 뮤지컬이였어요. 그리고 정말 좋은 넘버들도 몇 곡 있었지만 <뷰티풀 게임>은 들려지기보다 보여지는 측면에서 강했던 무대였어요. 축구 경기를 표현한 안무들은 정말 축구장의 선수들을 보는 것같이 박력있고 사실감 있었구요. 무대장치들도 실제 축구경기를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연해되는 것 같이 화려했구요. 배우들의 몸도 전부 다 좋아서 정말 축구선수들 같더라구요. 땀 흘리는 몸을 그대로 보여준 무대였어요. 기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과는 틀려서 좋았던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요 정말 오랜만에 아, 무대가 저런 거였구나, 마음껏 느끼면서 힘차게 박수를 쳤습니다. 정말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뛰어난 노래 실력과 유연한 몸을 갖추고서 무대 위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커튼콜의 짜릿한 희열감을 느껴보고 싶어요. 이번 생에는 제게 그런 능력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터라 열심히 그 무대 위를 동경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 메리의 독백이 이어지면서 무대 한 켠의 사진에서 존, 토마스, 프랭크, 컬리, 다니엘이 한 사람씩 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경기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며 찍은 사진이였는데 어느새 사라지거나 황폐해진 사람들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런 것이 저를 이 뮤지컬을 축구도 아닌, 정치도 아닌, 한 때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청춘을 추억하는 무대로 더 기억하게 만들었어요. 지금은 내가 너를 쏘아 죽이는 황폐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도 한때 초록빛 그라운드처럼 싱그러웠다고. 몸을 부대끼며 아름다운 땀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어버린 거냐고. 축구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우리들이 맞느냐고. 노래나 가사전달력에서 부족한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제겐 충분히 멋진 무대였습니다. 짝짝짝. 당신들은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