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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last Point Calico
    모퉁이다방 2015. 2. 27. 23:51

     

     

    [Cerveja 1] Ballast Point Calico Amber Ale

     

       여자는 겨울 내내 생각했다. 일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 너무 일하기 싫다. 눈이 올 때는 따뜻한 방에서 배 깔고 누워 책보며 영화보며 뒹굴고 싶었고, 바람이 불면 진한 국물을 우려내 따뜻한 찌개를 끓여 먹고 싶었다. 2월의 어느 저녁, 베이컨이 둘러진 안심 스테이크를 먹으며 여자는 알았다. 겨울 내내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던 사람이 두 사람이나 더 있다는 걸. 저는 그래서 빵을 먹어요. 여자의 앞에 앉은 그녀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빵을 마구잡이로 먹는다고 했다. 저는 그래서 자요. 자는 게 제일 좋아요. 여자 옆에 않은 그녀는 세상에서 자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월요일이 되면 그녀의 핸드폰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자명종이 울리는데, 대개 11시 즈음이다. 어느 월요일에는 오후에 울린 적도 있었다. 나는 맥주를 마셔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와 그의 동료는 신촌에서 내렸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정거장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서로의 가난함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정거장을 놓쳤다. 연대 앞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신촌역 쪽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뉴스에서는 다음 날 엄청난 추위가 찾아올 거라고 했다. 걷는 동안에도 여자와 동료는 서로 자신의 가난을 경쟁하듯 이야기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지자 여자와 동료는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 이야기할 가난은 아직도 산더미 같지만, 오늘은 늦었고,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니 이만 헤어져야 했다. 여자의 버스는 금방 왔다. 여자는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목요일 밤의 버스는 한산했다. 여자는 요즘 음악을 통 듣질 않았다. 마음이 가는 음악이 없었다. 여자는 음악앱에서 1위를 하고 있는 음악을 재생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가사를 들었다. 남자가 노래했다. '꼭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널 이해할 수 있어.' 남자의 노래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자는 한 남자를 생각했고, 한 여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생각했다. 아, 왜 이렇게 슬프지. 내 얘기도 아닌데. 여자는 술기운에 살짝살짝 졸면서 마음이 아팠다.

     

        봄이 올 거다. 이렇게 추운 건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근거다. 곧 꽃이 필 거다. 벚꽃이 활짝 피면 어떡하지. 그 꽃길을 걷지 못하면 어떡하지. 올해는 좀 더 남쪽으로 가서 벚꽃구경을 하리라 결심했었는데. 여자는 빵도 먹고 싶어지고, 맥주도 마시고 싶어지고, 잠도 자고 싶어졌다. 우리는 남자의 노래처럼, 모두 '떨어지는 같은 시간 속'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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