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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
    모퉁이다방 2014. 12. 14. 16:51

     

       금요일에는 야근을 하다 먼저 퇴근을 하고 낮에 내린 눈을 치우며 시동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U씨에게 카톡이 왔다. 지금 가자고 하면 안 갈거죠? 누룽지 통닭장작구이집 이야기다. Y씨랑 가방을 챙겼다. 그래, 가요. 말로만 듣던 누룽지 장작구이 집에서 500cc 세잔을 하고 Y씨랑 서울로 가는 택시를 탔다. Y씨가 통닭을 먹으면서 그랬다. 우리 이제야 진짜 회사원 같애요. 5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이다.

     

       토요일에는 일찍 눈이 떠졌다. 지난주 토요일에 출근을 해서 10시까지 몸을 움직인 터라 지난주 내내 피곤했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이틀 내내 늦잠을 자려고 했었다. 고민하다 세수만 하고 잠바를 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핸드폰으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조조를 예매했다.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봤다. 남자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했고,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긴 하는데, 어두운 면을 다 보여주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끝났지만, 영화는 내내 낭만적이었다. 무척 추웠다. 일기예보에 주말 내내 춥다고 했다. 어쩔까 하다가 불광천을 걸어서 증산도서관으로 갔다. 세번째로 가는 건데 또 살짝 헤맸다. 2층 종합자료실에 앉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김연수의 새 단편을 읽었다. 12월에 곡예사 언니가 메세지를 보냈다. 김연수의 새 단편을 읽었고 조금 울었다고. 언니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는 메세지를 가끔 보낸다. 그건 좋은 소설을 읽었고 너도 읽으면 좋아할 것 같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45쪽에서 61쪽에 걸쳐 있던 이야기였고, 이 문장을 만났다.

     

    그러니까 나는 후쿠다 준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어서, "날개를 주세요"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유복하게 살기도 하고, 고향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살하려고 하기도 하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번도 만나본 일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김연수

     

        소설에 남자와 여자는 일본 여행 중에 마크 로스코의 벽화를 보러 간다. 나는 수첩에 '마크로스코 벽화'라고 적어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저녁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고파 잠이 오질 않았다. 누워서 핸드폰에 이런 저런 단어를 검색해봤는데, 낮에 읽은 소설이 생각나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마크로스코'라고 검색해봤다. 그의 무미건조한데 이상하게 따뜻한 느낌이 나는 그림을 몇 점 보았는데, 이 그림들이 소설의 마지막 묘사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년 겨울 한국에서 <레드>라는 연극이 상연되었고, 그 연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크 로스코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인 걸 알았다. 오늘 본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남자 주인공이 영국에서 상연된 연극 <레드>에 출연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와, 세상은 이렇게 둥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구나,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일요일,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동생이 라디오 켜는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결국 오늘도 늦잠은 못 잤다) 또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춥다고 해서 리모콘을 뒤적거리다 3500원을 주고 <모스트 원티드 맨>을 결제해서 보았다. 이동진이 극찬한 이유를 알겠더라. 영화는 재밌었고, 긴장되었고, 쓸쓸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면 끝나고 집까지 걸어왔을 거다. 오늘 같은 날씨라도. 3시 즈음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 시작 풍경을 우연히 보게 됐다.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리고, 눈이 오는 풍경을 올려다 봤다. 아, 겨울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오늘 우도 미역과 제철 굴을 넣고 떡국도 끓여 먹었다. 국물이 무척 시원했다. 지금 시각 5시. 다시 눈이 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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