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비다방의 강아솔
    무대를보다 2014. 5. 9. 22:29

     

     

     

       2월, 우리는 신촌의 맥주창고에 앉아 있었다. 그날 언니와 헤어지면서 일기를 꼭 쓰고 자겠노라 말했다. 술집의 풍경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손님이 거의 없었다. 새로 개업한 가게였고, 토요일 밤에 이렇게 술 손님이 없다니 곧 망할 것만 같았다. 그 가게에 한참 뒤에 등장한 세 팀의 손님이 모두 특이했다. 한 여자가 잔뜩 술이 취한 채 비틀거리며 혼자 들어와서 결국 맥주잔을 깼고, 의대생들이 우루루 몰려와 잘 빠진 몸매의 여자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리고 또 한 팀. 한 쌍의 커플은 장애가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그 속에 우리가 있었다. 나는 이 모든 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 그 틈에 앉아 나는 언니의 제주도 여행이야기, 오키나와 여행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키나와 이야기는 참 좋아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달린 오키나와 도로 위의 언니, 우연히 들른 해변에 마침 열리고 있었던 오키나와 영화제에 있는 언니, 매일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을 퍼 먹는 언니의 모습이 머릿 속에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금령아, 오키나와에 가봐. 거긴 천국이야. 금령도 분명 좋아할 거야. 언니가 말했다.

     

       그 날,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는 터라 뭔가 전해주고 싶어 향뮤직에 들러 강아솔 앨범을 샀다. 며칠 뒤에 언니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강아솔은 여자 루시드폴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어제 상수에 있는 제비다방에 갔다. 강아솔이 지하에서 1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도 불렀고, 남의 노래도 불렀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는데, 가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고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그리고 남의 노래를 두 곡 더 불렀는데, 모두 루시드폴 노래였다. '봄눈'과 '오사랑'. 강아솔이 네가 틔운 싹을 보렴, 이라고 노래하는데 2월의 그 날의 풍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신촌의 곧 망할 것 같은 술집의 비현실적인 밤 풍경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오키나와의 선명한 바람과 바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