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from 모퉁이다방 2011. 7. 5. 00:28
  
    일요일 조조로 <풍산개>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쏟아지는 빗속을 걷는데,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졌다. 열심히 살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 느낌의 영화였다. 좋은 영화였지만, 중간에 끊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초록마을에 들렀다. 동네에 초록마을이 생겼다. 말린 표고버섯을 사고, 오징어와 새우와 홍합이 들어있는 해물칵테일을 샀다.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비싼 플레인 요구르트도 사고, 택배에 함께 보낼 허브차 티백과 비타민도 샀다. 다시 비를 뚫고 집에 들어와 멸치다시마 육수를 내고 불린 표고버섯을 넣고 오징어 새우 홍합에 청량고추 하나 썰고, 두부 반 모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였다. 현미밥이랑 같이 맛나게 먹었다. 

    오늘은 나쁜 꿈을 꿨다. 좋지 않은 꿈이 아니라 나쁜 꿈이었다. 나는 꿈 속에서 그 꿈 때문에 놀랐고, 화났고, 짜증이 났고, 슬펐다. 자명종 소리에 맞춰 일어나 씻고 출근준비를 하고 남은 된장찌개에 밥 한술 뜨고 지하철을 탔다. 책을 읽는데 불현듯 그 꿈 생각이 났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잊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니 생각이 났다. 고흐의 책을 읽고 있었다. 퇴근길에 아빠에게 전화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꿈 생각이 나서. 그래서. 오늘 회사에서 여러 일을 망쳤다. 기분도 엉망. 지난주부터 월요일마다 수업을 듣고 있다. 요리에 관한 수업이다. 선생님이 감정적인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먹고, 먹었고, 스치고, 스쳐갔던 음식에 형용사를 붙여서 기록해두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물에 편한 느낌의 음식에 보리밥과 된장찌개가 있다. 영국에는 우리의 쌀밥과 같은 매쉬 포테이토가 있단다. 나는 이 음식에 수식어를 붙여본다. 고흐의 매쉬 포테이토. 그의 감자. 그의 오트밀. 버스에서 내려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는데, 방금 전화가 왔다. 나는 나쁜꿈을 꿨다고 했다. 그의 토스트. 아빠는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에게 버터 가득한 계란토스트를 구워주셨다. 요즘 나는 좀 우울하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느낌. 나 정말 지금 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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