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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서재를쌓다 2011. 6. 12. 21:28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예담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고흐는 가난했다. 자기애가 강했으며, 동생에게 신세 지는 것을 평생 미안해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금요일 밤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와인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 바람도 좋았고, 테라스도 좋았고, 와인도 좋았는데, 내가 못생겨 먹었단 생각이 들었다. 말년의 고흐는 자주 아팠다. 잦은 발작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 동생이 직장에서의 갈등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자 그는 불안했다. 동생과 돈 문제로 심각하게 다투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6개월 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동생 테오가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평생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났다. 술 기운 때문인지. 지난 일주일, 출퇴근 길에 늘 고흐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편지와 그의 그림들, 특히 그의 가난에 대해.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다정한 편지와 50프랑을 고맙게 잘 받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50프랑 고맙게 잘 받았다. 마지막까지 이 말이다. 그의 가난이 마음 속 깊이 박혔다.

         책은 고흐의 편지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후반부에는 동생 테오의 편지도 있다. 고흐는 자신이 늘 동생에게 신세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안해했다. 언젠가 좋은 값에 그림이 팔려 테오에게 진 빚을 다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편지에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현은 늘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는 현실적이고 넓고 깊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의 동생 테오가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형. 형을 믿지만 그도 부담이 될 거라 생각했다. 고흐의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편지글들을 계속 보니 더욱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테오의 편지를 보니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가 깨달았다. 그는 형을 존경했고, 늘 걱정했고, 형의 그림을 사랑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돈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고흐는 안 되면 영혼이라고 주겠다고 말했다. 이 책은 내 2011년의 책. 고흐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의 가난이, 그의 글귀가, 그의 그림이. 곧 고흐의 그림을 보러 갈 거다. 

        책 귀퉁이를 아주 많이 접었다. 자주 훌쩍였다. 다행히도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반 고흐 명작 400선>을 반값 할인할 때 사두었다. 밤 들기 전에 이렇게 저렇게 뒤적거리며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보고 있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좋아졌던 그림은 그의 연인이었던 시엔이 알몸으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그림 '슬픔'과, 의자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노인'. 보고 있으면 정말 슬퍼진다. 


    p.13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p.30
    올 여름 나는 케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p.35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p. 59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거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p. 137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p.140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이곳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와 저녁에 찻집에서 약간의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꼭 필요하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야식으로 찻집에서 두 잔째의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빵을 먹거나 가방에 넣어둔 호밀 흑빵을 먹어도 좋겠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 

    p.154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한 번도 좋고 여러 번도 좋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공부하겠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p.191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p. 208 *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p. 298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홍진경의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자기 귀를 자랐고 자주 사랑에 빠졌으며 동생에게 늘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총명하였으며 심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하는데 그러나 한 번도 그처럼 살아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처럼 정직하게, 그처럼 오만하게, 그처럼 순순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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