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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수아 30.06.10
    서재를쌓다 2010. 7. 4. 21:48

        그가 알고 있는 슬픔 중에는, 이른 아침 막 깨어났을 때의, 준비되지 않았으면서 아무런 방어도 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슬픔이 가장 시적이었다. 창밖에는 새가 울고 입안에는 비린내나는 눈물이 가득 찼으며 아주 멀리서 자동차의 소음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듯이 그렇게 들려오고 창 아래로 난 길에는 이른 시간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 부엌에서는 개가 신음하고 나뭇잎과 햇빛과 바람, 발코니의 꽃들은 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그는 침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마치 그가 바로 어제 심장이 쨍 하고 깨어질 만큼 치유되지 못할 슬픔을 가졌는데 오랜 잠 때문에 그 일을 잊어버리고, 마치 종이가 물속에서 녹아버리듯이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고, 망각의 강을 따라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흘러 여기에 있게 된 듯한 그런 막연한 슬픔을 느끼곤 했다.
    '양의 첫눈' p.12-13 [올빼미의 없음]


        지난 수요일, 배수아를 만나고 왔다. 배수아를 무척 좋아하는 B가 나를 초대해줬다. B는 꿈만 같은 일이라 했다. 그 날 우리는 마약떡볶이를 먹고, 배수아를 만나러 갔다. 배수아를 만나고 나서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수요일밤의 배수아가 얼마나 근사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배수아는 까만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는데, 아주 긴 드레스였다. 모자가 달려있었는데, 꼭 연극 무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의상이었다. B는 배수아의 목소리를 듣더니 상상한 그대로라고 했다. 범상치 않은 소설가였다. 그녀는 성기완의 질문에 그건 대답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류의 답변을 생글거리며 건넸다. 모든 것이 독자의 몫이라 했다. 자신이 독일에 가는 것은 생활하러 가는 것이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독일에 가서 3개월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온다 했다. 왜 독일이냐는 질문에는, 그저 그렇게 됐다고 했다. 영어권은 싫었고, 프랑스는 맞지 않았다고.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고, 그녀가 낭독을 시작했다. 나는 낭독하는 내내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소설가는 연극배우같이 낭독을 했다. 톤을 낮게 깔며 노작가의 목소리를 내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치 오늘 이 시간만을 기다려온 듯이, 완벽하게 낭독을 했다. 

       근사한 수요일 밤을 보내고 읽기 시작한 배수아의 소설집. 어느 아침, 지하철에서 저 구절을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시적인 슬픔. 7월, 배수아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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