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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노바 - 쇼팽이 폴란드를 떠날 때
    극장에가다 2009. 11. 3. 23:12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이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쇼팽의 이별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엠피쓰리플레이어에 이 곡을 집어넣었다. <제노바>에서는 커다란 두 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콜린 퍼스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 또 하나는 슬픔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콜린 퍼스가 제노바로 이사를 한 것. 이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랄 건 없다. 그저 무덤덤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막내가 한 번 길을 잃는 일이 있긴 했다. 바닷가 근처 수도원이 있는 산에서였다. 아이는 엄마가 보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일 지도 모른다. 엄마는 막내가 걱정돼 이승을 계속 떠돌고 있는 걸 수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막내의 깊은 그리움이겠지. 그 일을 제외하고는 별 일 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적어도 시간만은 말이다. 막내는 가끔 악몽을 꾸고, 목놓아 엄마를 그리워하고, 아빠와 언니는 아내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생활을 이어간다.

       다시  클래식 음악. 쇼팽의 이별곡. 다음날까지 이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좀 안다는 O씨에게 이 곡에 관해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쇼팽은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많은 생을 프랑스에서 살았어요. 쇼팽이 폴란드를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게 되었을 때 만든 곡이예요. 쇼팽은 떠나면서 안 거죠. 이제 다시는 폴란드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폴란드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두고 떠나야만 했었다고. 영화 속에서는 첫째가 이 곡을 연주한다. O씨의 설명을 듣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감독이 왜 이 곡을 선택했을지, 그리고 이 곡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그리고 쇼팽의 이별곡은, 곡이 만들어진 배경을 몰라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가만히 눈을 감고 듣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이 아름다운 곡이더라. 특히 처음 시작 부분이 좋다.

        영화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들은 낯선 땅 제노바를 끊임없이 걷는다. 그 곳은 덥고, 강렬한 곳, 그리고 복잡한 곳. 아이들은 매일 아파트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선생님 집까지 걷는데, 그 골목길은 여차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복잡한 곳이다. 그리고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감으로, 다음 번에는 어떤 표식을 기억해두었다가 그걸 따라 집을 찾아간다. 어떤 날은 언니랑 나란히 걷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화난 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걷는다. 또 어떤 날은 막내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엄마의 손을 잡고 걷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귀엽고 예쁜 막내가 부디 아무 탈없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엄마도 너를 용서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악몽은 이제 그만 꾸라고,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지 말라고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막내처럼 제노바의 그 복잡한 골목을 정신없이 헤매다 마침내 발견하게된 넓은 광장을 앞에 두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서럽게 목놓아 울고 싶어졌다. 좋은 영화였다.


         아, 영화 속에 콜린 퍼스가 강의하는 중에 한 학생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번을 읊는 장면이 있는데, 그 소네트가 너무 좋았다. 영화에서와 똑같은 번역본을 찾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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