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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 - 모험으로 이끌 우리의 구호, 까옥 까옥 으르렁!
    극장에가다 2009. 8. 1. 18:11




       요즘 부쩍 여행책과 그림책에 관심이 가는 나는,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림책과 여행책을 뒤적거리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책을 원하는지 생각해냈다. 정보와 감성이 함께 하는 책. 누구나 내는 여행책 말고, 어떤 곳을 다녀왔으나 그 사람 특유의 감수성이 듬뿍 묻어나 있는 책이면 좋겠다. 그게 꼭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책을 찾기가 쉽지가 않더라. 그러던 중, 보게 된 픽사의 <업>. 이건 내가 찾던 여행책이 아니던가. 더구나 <업>은 아름다운 그림책이기도 했다. 아, 나는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오는 극장에 앉아 이 여행책을, 이 그림책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넘겨 봤다. 어떤 페이지에는 흥분해서 침을 잔뜩 묻히고, 어떤 페이지에는 눈물 한 방울을 훔쳐 찍으면서. 흠흠.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정말 최고다. 엄지 손가락 두 개 다 Up.

        일단 본 애니메이션 앞에 소개되는 짧은 애니메이션 '구름 조금'부터 좋다. 픽사의 한국계 애니메이터의 작품이란다. 종이책에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있다면, 애니메이션에는 <구름 조금>이 있는 거겠지. 그 짧고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에서는 구름이 생물체들을 만들어낸다. 고 보드랗고 뭉실뭉실한 구름의 손으로 요렇게 저렇게 반죽을 하고, 모양을 만들고, 요술을 부리면 귀여운 강아지가 태어나고, 럭비선수를 꿈꾸는 아기가 태어나고, 천진난만한 얼굴의 고양이도 탄생한다. 그리고 구름들의 친구, 믿음직스러운 새들은 구름이 그 보드라운 생물체들을 보따리에 싸 주면, 땅 위로 내려가 생명을 선물하고 온다. <구름 조금>은 그런 생물체 말고, 악어나 고슴도치, 전기뱀장어 같이 따갑고 아픈 생물체를 탄생시키는 흐린 구름과, 그래서 맨날 찔리고, 물리고 감전당해서 배달하기 몹시 고달픈 새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하늘 위의 귀엽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끝나면, <업>이 시작된다. 

       업. 그러니까 풍선이 수 천개 달린 집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릅답지만, 슬프다. 그건 모험을 꿈꾸던 내성적인 소년 칼이 남아메리카 폭포 옆의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살 꿈을 꾸는 씩씩한 소녀 엘리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고, 아픔과 시련을 함께 겪으며, 남아메리카의 폭포 옆 작은 집을 함께 꿈꾸며, 행복하게 늙어가는 이야기다. 어느덧 두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칼은 엘리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된다. 그 오랜 이야기가 영화의 초반 5분 동안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그리고 그 다음에 영화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시 꿈을 꾸게 된 칼의 이야기다. 칼은 어쩔 수 없이 양로원에 들어가야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다시 어린 시절의 꿈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한 때 남아메리카로, 세계로, 모험을 꿈꾸었던 소년과 소녀. 칼과 엘리. 주둥이가 좁은 커다란 유리병에 남아메리카의 사진을 넣어두고 동전을 모았으나, 사는 데 필요해서,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터져서 자주 깨어내야 했던 그 저금통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 여행에 예기치 않은 파트너, 귀염둥이 러셀이 동행한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다. 엘리에게는 '모험견문록(?)'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책이 있었다. 남아메리카로의 여행을 꿈꾸었던 엘리는 견문록의 첫 장에 도서관에서 몰래 찢은 남아메리카의 사진 위에, 자신이 그린 조그만 집을 붙였다. 그 다음 장에는 모험을 떠난 뒤 자신이 본 것, 생각한 것, 느낀 것들을 적어놓으려 했다. 결국 엘리는 그 견문록을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났고,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 견문록은 충분하게, 아릅답고, 의미있게 완성되어 있었다) 칼은 엘리의 견문록을이자, 자신의 견문록을 생애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완성하고자 결심한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우리들 모두가 우리만의 모험견문록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걸 어린아이일 때도, 머리가 파릇파릇한 학창시절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늘 가슴 속에 고이 품고 있다는 걸. 첫 장의 꿈과, 두 번째 장의 '이제부터 본 것들을 적을 것' 밖에 완성하지 못하고 겉장이 벌써 너덜너덜해진 책이지만, 그 책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 이 책 덕분에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꿈을 가졌던 지금으로 인해서 모든 게 괜찮을 거라는 걸. 실패도 하나의 성공이라는 걸. 꼭 남아메리카에 가지 않아도, 멋진 나만의 모험견문록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도 스물아홉 번째 페이지가 완성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거다.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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