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을 하자면 이래요. 그 날은 평소와 다르게 불편한 구두를 신고 많이 걸어다녔고, 지나치게 많이 먹었어요. 그리고 커피 한 잔을 깔끔하게 마시고 <로스트 라이언즈>를 보러 들어갔어요. 그리고 구차하게 변명을 또 하자면 예전에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서 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자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참 이런 소리까지 하다니. 그 때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매일 한 편씩 영화를 봤는데 보다가 너무 졸릴 때가 있었어요. 영화의 좋고 나쁘고에 상관없이요. 그러면 아무 거부감없이 내일도 볼 수 있으니깐 그냥 조금 자자, 그러면서 자주 잤어요. 흠. 그래서요. <로스트 라이언즈>를 보다가 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메릴 스트립에 로버트 레드포드, 톰 크루즈를 앞에 두고 말이죠.

   정치영화라는 건 알고 들어갔지만, 처음에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 영화는 스토리의 영화가 아닌 이야기의 영화거든요. 말이요.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어요. 상원의원인 어빙(톰 크루즈)와 기자 제니 로스(메릴 스트립)이 나누는 이야기, 말리 교수(로버트 레드포드)가 그의 제자와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단 하나의 이야기요. 그들은 어빙 의원의 작전 희생자이자 말리 교수의 제자로써 아프카니스탄에서 생과 사를 오가고 있죠. 영화는 이기적인 현실주의자 어빙과 정의나 특종이냐를 두고 갈증하는 기자 로스와 지나친 이상주의자인 말리 교수, 그리고 유일하게 총알이 쏟아지는 무바지한 현실 앞에 놓여진 너무나 젊고 똑똑한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는 그 곳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계속되는 말들이 스크린 속에서 죽고 받는 가운데 저도 잠의 유혹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어요. 대사들이 들렸다 말았다, 배우들이 보였다 말았다. 그러다가 제가 정신을 차리고 온전히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아프카니스탄에서 죽어가고 있던 두 젊은이가 말리 교수 시간에 발표를 하는 순간부터였어요.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차, 싶었죠.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졸다니 싶었어요. 방금 전까지 전쟁터에 뛰어든 교수의 제자 이야기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방관하지 말고 뛰어들라는 이야기들을 격렬하게 듣고 왔는데, 친구는 옆에서 브리트니 뉴스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게임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하죠. 그저 나와 상관없는 복잡한 현실일 뿐이라며 정치며 사회적 이슈며 방관해 왔던 말리의 또다른 똑똑한 제자는 아마도 달라진 거라고 기대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물론 강의조의 직설적인 레드포드의 화법은 조금 불편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히 전달되어진 것 같아요.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하죠. 젊은이들에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더이상 방관하지 말고 그 속으로 뛰어들라고. 이 사회에 참여하라고.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사람은 너희들이라고. 졸기까지 했던 저는 온 몸이 더 쿡쿡 찔립니다. 지금까지 그저 정치며 사회를 뉴스 속의 기사로만 바라보기만 했던 저로써는 온 몸이 쿡쿡 찔릴 수 밖에요. 영화는 미국의 차기 대선이니 미국이 현재 처해져 있는 현실이니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는 이 영화 끝에 서서 우리나라 현실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암묵적이고 방관적이고 참여하지 않는 저의 모습을요. 그리고 조금 부끄러워지고, 조금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이 영화 앞에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에게 져버린 제 자신을 책망했죠. 아무래도 온전한 영화감상이 되지 못했으니 한번 더 봐야어요. 정신이 또렷한 오전시간에 가서 한번 더 보려구요.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작품들 중 제가 본 영화들은 다 좋았어요. <흐르는 강물처럼>, <보통 사람들>. 이제 <로스트 라이언즈>까지 세 편이네요. 이번 작품을 보고 점점 나이가 들수록 로버트 레드포드가 하고 싶은 말이 뚜렷하고 강력해져서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출연까지 해서 확실히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못박아두잖아요. 너희들, 젊은 사람들, 거기서 얌전히 극장 안에 팔짱 끼고 앉아서 뭐하는 거냐고. 제발 일어나서 극장 밖을 나가면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고. 나쁜 것을 나쁘다 말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행동하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겠냐고. 다른 연출한 작품들도 챙겨봐야겠어요. 특히 <퀴즈쇼>도 아직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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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Different Tastes™ Ltd. 2007/11/12 15:00  delete

    ★★★★☆ (영화 자체는 3개지만 그 내용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1개 추가) <킹덤>(2007)의 작가이기도 한 매튜 마이클 카나한이 자기가 써놓은 시나리오를 놓고 '근데 이런 걸 누가 영화화하겠다고 하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선댄스의 현인에게나 한번 보내보자'고 했다더군요. 애초에 씌여질 때부터 상업적인 고려라곤 별로 없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만들었다가 대박이 난 영화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요.1) 로버트 레드포드가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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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어지 2007/11/12 15: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중엔 정말 인상적인 영화도 있고
    범작도 있어요. 그 중에 <퀴즈 쇼>는 꼭 봐두실만 합니다.

  2. Stephan 2007/11/13 03: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로버트 레드포드는..참 멋있게 나이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인디 영화의 후원자로서...
    들렀다가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07/11/13 12:32 GoldSoul

      정말요. 얼굴에 주름이 그렇게 많아져도 여전히 멋있게 느껴지더라구요. 외모도 영화에 대한 열정도 모두 빛나보여요.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

  3. 이병준 2007/12/05 14:4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레드포드가 나이가 들어가는게 좀 안스럽게 보이긴 합니다. 레드포드가 출연했던 영화중에 납치범에게 납치되었다가 살해되는 영화가 한편 있었는데... 제목이 '클리어링'이었나요? 아무튼 그 영화에서 레드포드는 정말 늙어보였어요. 스파이 게임이나 라스트 케슬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퀴즈쇼는 여러가지 면에서 레드포드의 걸작 중 하나라고 할 만 합니다. 메스미디어의 메커니즘을 그렇게 신랄하게 꼬집기도 쉽지 않을텐데 말이죠. 뭐 잘 알려진 이야기긴 합니다만, 레드포드는 자신이 감독+출연하는 영화에서 지나치게 설교조이거나 교훈적이 되려는 단점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감독만 하는 영화에서는 좀 나은데 말이죠.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  address  modify / delete 2007/12/06 00:23 GoldSoul

      저는 스파이 게임까지만 본 것 같아요. 정말 얼굴이며 목에 주름이 많아졌더라구요. 그래도 멋진거 같아요.퀴즈쇼는 꼭 봐야겠어요. 보통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동해서 하루종일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 방문도 댓글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