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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레시피 - 내 이름은 조이예요
    극장에가다 2007. 9. 18. 16:07


       내 이름은 조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난 빨간색을 좋아해요. 내겐 빨간색이 들어간 알록달록한 목도리, 빨간색 털모자, 따뜻한 빨간색 장갑이 있어요.

       흠. 흠. 사실은요. 그래요. 사실은, 얼마 전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어요. 케이트 이모를 만나러 뉴욕으로 가던 중이였는데. 오랜만에 이모를 만난다는 사실에 엄마와 난 무척이나 들떠있었는데. 끔찍한 사고가 나고 말았어요. 나는 조금 다쳤고 엄마를 잃었죠. 난 단 한번도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 세상엔 우리 두 사람이 전부였거든요. 아빠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구요. 가끔 아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난 엄마 하나만으로 충분했어요. 정말이예요. 정말이지 공작새 털로 눈을 가리며 장난을 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엄마를 어떻게든 죽지 않게 만들거예요. 엄마가 너무나 보고싶어서 가슴이 아파요.


       케이트 이모예요. 엄마대신 이모가 나를 돌봐주고 있어요. 백 개 정도 되는 내 소중한 동물 친구들과 짐을 뉴욕의 이모 집으로 옮겨왔어요. 내 방은 바로 케이트 이모 앞 방이예요. 나는 창가 쇼파에다가 내 동물친구들을 모두 다 나란히 늘어놓았어요. 그러면 좀 든든해져요. 외롭거나 무섭거나 그런 생각이 조금 덜해요. 이모도 일 나가서 집에 없고 엄마가 너무나 보고싶은 그런 밤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 친구들 몇 마리랑 침대 밑에서 잠을 자요. 거긴 정말 아늑하고 편안하거든요. 엄마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잠도 정말 잘 오구요.

       케이트 이모는 사실 좀 부담스러워요. 나도 알아요. 내가 엄마를 잃은 것처럼 이모도 사랑하는 언니를 잃었다는 걸요. 이모도 많이 힘들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모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늘 나를 걱정하죠. 어느 날 아침에는요, 아침을 먹자고 불러놓고는 어마어마한 생선요리를 내놓은 거 있죠? 난 그런 거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아침식사엔 핫케잌 한 조각이면 되거든요. 그리고 어느 날에는 학교가 끝나고 날 데리러 오는 걸 깜빡했죠. 나는 몇 시간을 학교 앞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이해해요. 아기가 태어났고 병원에 갔다왔다고 이모가 말했거든요. 나도 다 알고 이해하는데 너무 화가 나는거예요. 이제 엄마도 없고, 이모도 나를 잊어버렸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혼자라는 사실이 무섭기도 했구요. 언젠가 나도 그렇게 엄마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죠? 


       뉴욕으로 온 뒤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번도 못했는데요, 이모랑 일하는 닉 아저씨 덕분에 나는 식욕을 찾았어요. 그 전에는 이모는 늘 부담스런 음식만 내 놓고, 사실 음식따위는 먹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의 엉터리 인스턴트 요리가 먹고 싶긴 했지만, 애쓰는 이모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었어요. 이모가 일하는 식당에 함께 가자고 한 날이였는데요. 닉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아서 진짜 맛있게 스파게티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거예요. 사실 침이 꼴깍 넘어갔거든요. 아저씨가 일하느라 나한테 스파게티 맡기고 가지 않았으면 난 그 맛난 스파게티 맛도 못 볼뻔 했잖아요. 정말 맛있었어요. 뭐랄까, 그렇게 특별한 맛은 아니였는데도 한 그릇을 다 해치웠어요. 그리고 배가 불렀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찾아왔죠. 사는 게 다 그럴걸까요? 하지만 엄마는 알아주겠죠? 내가 엄마를 잊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밤은 엄마가 꿈 속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케이트 이모도 이제 많이 괜찮아졌고, 닉 아저씨도 굉장히 좋아요. 아, 내가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어서 이모 몰래 엄마랑 같이 찍은 비디오 테잎을 몰래 본 적이 있었는데 이모도 안 자고 있었나봐요. 이모도 내 옆에 와서 함께 봤어요. 엄마가 웃고,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웃고 있는 바닷가 풍경이었는데 이모가 나를 꼭 안아줬어요. 그리고 비밀인데, 나쁜 거라는 건 알지만 이모랑 나랑 다음날 학교도 식당에도 안 가고 하루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놀았어요. 헤헤. 정말 좋았어요. 엄마가 꿈에 나타나면 이모도 나도 이제 괜찮아지고 있다고, 나 이제요 문도 잘 열어주고, 이모한테 투정부리지도 않고, 닉 아저씨의 부조리장 역할도 잘 해내고 있다고, 그리고 여전히 엄마는 너무나 그립고, 영원히 이모와 나는 엄마를 잊지 않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랑해요, 영원히 사랑해요, 엄마.


    -  특별할 거 없고, 스토리도 다소 밋밋했지만, 보고 있는 내내 행복해지는 영화였다.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맛깔스런 음식이 담긴 장면도, 긴장감 넘치는 위기의 순간도, 애절한 감정의 느낌도 없었지만 따뜻했고 서른이 훨씬 넘은 케이트와 열살이 겨우 넘은 조이가 똑같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소소한 느낌들이 좋았던 거 같다. 비오는 날 따뜻한 스프를 앞에 두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케이트가 식당에서 열 받거나 짜증날 때마다 냉동실로 들어가서 조그맣게 김을 내뿜는 장면과 그 곳에서 언니를 잃은 상실감에 엉엉 울던 장면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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