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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을 갉아먹는 마음의 병, 거식증
    극장에가다 2007. 9. 1. 02:47

       니가 생각하는 니 몸을 그려봐.
       갸날픈 몸을 가진 여자는 자기 키만큼 커다란 도화지에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몸을 그린다. 여자는 도화지 위에 자신을 그려넣지 않는다. 갸날픈 여자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통통한 남자인 것만 같은 몸을 검정색 펜으로 그린다.
       정말 이게 너의 몸이라고 생각해?
       여자는 진심으로 이 몸이 자신의 몸과 똑같다고 말한다. 갸날픈 여자를 도화지에 바짝 붙여 세우고 여자의 몸을 따라 빨간색 펜으로 선을 그린다. 진짜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서 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너무나 다른 두 몸을 보는 여자.
       이게 진짜 너야.
       빨간색 펜은 진실을 말하고, 검은색 펜은 마음의 굴절을 말한다. 여자는 거식증, 섭식장애, 영혼을 잠식시키는 병에 걸렸다.


       <영혼의 병, 거식증>은 섭식장애에 걸려 치료센터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네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샐리, 브리트니, 알리샤, 폴리. 네 사람은 모두 마른 체형이지만 자신은 살이 쪘다고, 늘 살을 빼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말랐지만, 예전에 살이 쪄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악몽이 때문에 더 이상 조금만큼의 살도 찌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친구들은 날씬하고 예쁜데 나만 살이 이렇게 쪄 있다고, 쌍둥이 동생보다 내가 더 살이 찌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얼마만큼의 칼로리들이 먹는 즉시 살이 되는 끔찍한 상상때문에 그들은 씹어서 삼킨 음식들을 토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저체중으로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센터에 들어왔다. 하지만 치료생활은 생각보다 힘겹다.

       섭식장애는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많은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모두 다 섭식장애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섭식장애, 마음의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살이 찌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늘 내가 남들보다 뚱뚱한 것만 같아서 불안해 한다. 거울을 봐도 눈 앞에 보이는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거부하고 토해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 혹시나 늘었을 체중을 염려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보았을 때 주인공들로 소개되거나 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여성들의 몸을 보고 놀랐다. 사실 거식증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말라서 사람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뼈만 남은 형상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치료센터에 있는 여성들은 그저 마른 여성들이었다. 요즘은 하도 다이어트다 몸짱이다 해서 살이 찐 여자들을 거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다들 날씬하고 말랐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더 심하다. 브라운관에서 보면 조금 덜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보면 쇠꼬챙이처럼 말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몸을 갈망하고 모방하려하고 있지 않나.

       때때로 그녀들은 말한다. 살이 찌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에서 비롯된 질병이지만 그 정신의 끝을 따라가보면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조건 날씬한 것, 음료 광고를 하나 보더라도 날씬한 그녀처럼 되기 위해 마셔야 하는 무엇이라는 식이고, 끊임없는 다이어트 방법이나 관련상품들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날씬해야 사랑받는 사회. 그래서 병들어가는 사람들. <영혼의 병, 거식증>을 보면서 그녀들을 걱정하게 되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을 걱정하게 되고, 그리고 언젠가의 내가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너무나 이상적이기만 한 몸매에 물들어 있는 거 아닌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보여지는 것에 치중한 다이어트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물들이고 있는지. 내 마음을 추스리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마음을 추스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큐를 보면서 계속 들었다.

       결국 그녀들은 치료센터 안에서 온전히 병을 극복하고 문을 나서지는 못했다. 어떤 이는 보험때문에 중간에 나와야 했고, 어떤 이는 진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나야만 했고, 어떤 이는 치료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왔으나 다시 토하기 시작하고 체중은 감소했으며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우울증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이 더 큰 문제일까? 끊임없이 토해내고 살을 찌우고 싶지 않아하는 저체중의 그녀들의 병든 마음일까? 날씬한 여성들만 유난히 원하고 사랑하는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일까? 부디 그녀들의 검정색 선과 빨간색 선이 같아지기를,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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