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from 서재를쌓다 2018.06.14 22:06




   홈플러스에서 야키소바면과 소스를 샀다. 면 세개와 소스 세개가 한 묶음이다. 순한맛과 매운맛이 있었는데, 고민하다 둘다 샀다. 두 번 해 먹었는데, 두 번 다 2인분이었다. 순한맛과 매운맛을 하나씩 섞었다. 마트에서 천원짜리 컷팅 양배추와 붉은색 초생강도 샀다. 컷팅 양배추는 딱딱한 것과 보슬보슬한 것 두 종류가 있었는데, 보슬보슬한 배추로 골랐다. 집 건너편에 야채가게가 생겼다. 자주 애용하는 역앞 가게보다 훨씬 싸다. 거기선 작은 당근 세 개를 샀는데, 역시 천원이었다. 좋아하는 정육점에서 대패삼겹살도 샀다. 대패삼겹살은 늘 이 집이다. 두 번 해 먹고 딱 한 번 더 해 먹을 만큼 남았다. 재료 준비는 끝. 이제부터는 간단하다. 야채는 모두 채썰어두고, 대패 삼겹살을 먹기 좋게 자른 뒤 기름을 두르지 않고 익힌다. 돼지기름이 살포시 나왔을 때 야채를 넣는다. 야채와 고기가 적당히 익었을 때 면과 소스를 넣고 면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뒤적거려 준다. 작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장자리가 바삭한 반숙 계란 후라이를 후다닥 만들어 둔다. 소스가 면과 야채에 잘 어우러지면 후라이를 얹고 맛나게 먹어주는 거다. 싱거우면 굴소스를 약간 넣어준다. 맥주도 빠질 수 없지. 맥주는 예쁜 유리잔에 따라 마신다. 


    히라마쓰 요코는 야키소바를 이렇게 표현했다. "해 질 녘 시원한 바람. 정원에 뿌리는 물. 땀띠분 냄새. 유카타의 촉감. 멀리서 축제의 북소리가 들려오면 귀를 기울인다. 또는 온 가족이 전철을 타고 나가 해수욕. 들뜬 마음에 수영을 너무 오래해 새파래진 입술을 햝으면 바닷물 맛이 나고, 목이 타고, 배는 등에 붙는다. 여름 축제도 해수욕도 야시장도 본오도리도 그리운 그 여름과 함께 떠오르는 맛, 그것이 야키소바다. 좋아했는데, 소스 야키소바. 건더기라곤 양배추와 숙주 정도, 몇가지 들어 있지 않아 오히려 파래와 빨간 생각절임이 주연을 맡는다. 드문드문 발견하는 튀김옷 부스러기가 기쁘다. 고소한 소스 뒤범벅의 야키소바는 이벤트 기분이 가득 들게 한다. 진하고 짠 소스의 맛과 향, 이것 또한 일본 여름의 맛이다."


   오늘 뭐 먹지? 제목에서 촌스러운 느낌이 마구마구 드는 이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권여선과 안주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더도 말고 딱 한 가지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서 맛난 맥주와 함께 먹고 싶어졌다. 대단한 것 같지 않지만, 실은 대단한 음식(이라고 쓰고 안주라 부른다)들이 이 책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들깨가 듬뿍 든 순댓국, 해장에 좋은 만둣국, 집필할 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속을 각각 다르게 말아두는 김밥, 따끈따근할 때 바로 먹는 육전, 설명이 필요없는 누룽지와 명란달걀찜 (명란은 사랑입니다), 해장엔 또 이것이지 물냉면, 동해안의 싱싱한 물회, 여름에 쌈 싸먹기 좋은 땡초 가득 들어간 깡장, 여름나기에도 좋고 안주로도 좋은 밑반찬들, 혼자서 한 그릇 독차지 할 수 있는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먹으면 좋은 냄비우동, 문학관의 심심한 급식 탓에 급 마련된 두부와 김치제육볶음 안주 술자리, 단골 시장에서 사온, 단골이라 게다리까지 덤으로 받아와서 국까지 끓인, 쌀밥과 찰떡궁합 갈치조림, 추운 계절에 더 생각나는 칼칼한 감자탕,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맛난 꼬막조림, 추운 겨울 동네 시장에서 먹는 어묵 한 꼬치와 짭조름한 국물 한 컵, "내가 앞으로 집밥을 좋아하게 될지 싫어하게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내 손에 달"린 집밥집밥, 마른오징어를 물에 불린 뒤 고소하게 튀겨먹는 오징어튀김, 쇼핑몰에서 두 상자를 잘못 배송해 그날 저녁에 조림도 해 먹고, 구워서도 먹은 고등어, 먹고 싶은 것만 해 먹는 부러운 명절상 (명절음식재료가 다 떨어지면 치맥을 시켜먹는다는!), 그리고 끝내 져버린 간짜장까지. 


    권여선은 소설도 잘 쓰고, 술도 잘 마시고, 요리도 잘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단식을 한 번 경험해 본 작가는 그 뒤 종종 단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는 자의였고, 나는 타의였고, 작가는 여러번이지만, 나는 달랑 한번 뿐이지만. 입원을 하는 동안 며칠 단식을 하며 몸이 굉장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관장도 했겠다, 몸에서 나쁜 것은 모두 빠져나가고 정화되는 느낌. 그리고 못 먹는 탓에 예민해져 여러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는데 (마음을 잡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들 목록을 적어보기도 했다), 결론은 오늘보다 나은 인간이 되자, 였다. 세상에 단식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다니. 그리고 단식 후 먹게 되는 음식이 간이 일도 없는 흰죽일 지라도 엄청나게 맛있게 느껴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미각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인 것이다. 아, 책의 제일 마지막에 작가가 좋아하는 중국집 에피소드가 있는데, 정말 읽다 빵- 터졌다. 이건 실제로 읽어 보아야 합니다. 하하하. 요리 귀차니즘에 빠져있는 나를 두 번이나 야키소바를 만들게 한, 이 책의 기억해둘만한 구절들도 옮겨본다. 정성껏 만들어서 맛나게 먹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 




    다만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 26쪽


   첫 단식 이후로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단식을 한다. 단식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오래된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 하나씩 꺼내 들여다본다. 내가 살아온 과거들은 차근차근 짚어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은 곰곰이 따져본다. 그러다 문득 달걀을 푼 라면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행복한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과오를 떠올리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내 곁을 떠난 사람들 생각에 슬퍼하기도 한다.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맵게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극히 사소한 이유로 화가가 되지 못한 것에 서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따위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이 쓸데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속에 웅크린 채 언젠가는 내가 한 번 뒤돌아 보아주고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아처럼 어리고 상처 입은 감정들이다. 내가 그렇게 해준 뒤에야 그것들은 비로소 조용히 잠이 든다. 

- 74-75쪽


   (...) 병치레를 많이 했던 내가 어렸을 때 몹시 앓고 난 후면 어머니는 부엌 처마 밑에 걸어두고 아끼던 굴비 두름에서 한 마리를 꺼내 연탄불에 구워 살을 발라내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시곤 했다. 연탄불에 구운 옛날 굴비의 맛이야 뭐라 말을 보태고 말고 할 필요도 없지만, 나는 특히 굴비 살을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먹는 게 좋았다. 유년에 먹던 그 맛과 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나는 밥 한 숟가락에 조린 무 한 점을 얹고 그 위에 갈치를 얹는다. 햅쌀밥과 가을무와 갈치 속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삼단 조각케이크를 나는 한입에 넣는다. 따로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건 전혀 다른 맛이다. 정말 이렇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과 무와 갈치가 어울려 내는 이 끝없이 달고 달고 다디단 가을의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먿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 

- 168-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