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동안 마음이 사막같았다. 결국 두 달 뒤에 살펴보기로 한 일을, 두 달이 되기 전에 하기로 했다. 차장님이 두 달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그렇더라. 괜찮고 마음을 잘 다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주에 혓바늘도 나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책도 안 읽히고, 음악도 안 들렸다. 안되겠다 싶어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왔다. 덕분에 괜찮아졌고, 안심이 됐다. 가보니 결론은 그냥 두 달 기다려도 되었던 거였는데, 그렇게 초조하고 겁이 나고 서러웠댔다. 오늘 가길 잘했다. 마음과 몸은 정말 연결되어 있는 게 맞는 게, 새벽에 욱씬거렸던 것이 오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마음 편히 기다리면 된다.
마음이 나아지니, 먹고 싶고, 걷고 싶고, 읽고 싶고, 보고 싶어졌다. 오늘은 아침에 지하철 한 번, 오후에 버스 한 번 탄 것만 빼면 내내 걸어다녔다. 충무로에서 을지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걸어가 미쉐린 가이드에 나왔다던 집에 가서 설농탕 한 그릇을 먹었다. 사실 그렇게 맛있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국물이 깔끔하더라. 안국동에 가서는 보이차를 샀다. 친구 생각이 나 한 통을 더 샀다. 친구는 최근에 내게 차를 선물했는데, 오키나와 한정판이었다. 검색해보니 오키나와에서만 나는 과일이 들어간 차였다. 마시면 상콤한 것이 정말 남쪽의 맛 같다. 걸어가던 길에 우체국도 있어 우표도 사뒀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규외 엽서 우표 가격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규외 엽서는 350원, 규외 편지는 420원이란다. 420원 우표만 20장 샀다.
궁금했던 안국 프릳츠에 가서 크로와상과 따뜻한 커피도 마셔주었다. 프릳츠 마당에 석탑이 있는데, 석탑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꽤 좋았다. 창덕궁이 옆에 있어, 궁 안의 단풍이 밖에서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워서 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가까운 시간대는 다 매진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상암으로 와 영화를 봤다. <러빙 빈센트>.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1년 후의 이야기. 10년동안 107명의 아티스트가 완성한 6만 여점의 유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슬펐지만 따스했다. '아르망 룰랭의 여행'으로 정리할 수도 있는 게, 아르망 룰랭이 고흐를 찾아 억지로 떠난 이 여행에서 성장한다. 성장하지 않는 이야기가 어디 있냐마는 이렇게 타지역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그러고 싶은데, 잘 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고. 여러 생각이 났다. 곡예사 언니가 권한 반 고흐 소설을 읽고, 닥터 후 고흐 편을 보지 못한 것도 생각이 났고, 지난 해 이 즈음 시옷의 책으로 다시 읽은 고흐와 테오의 편지들도 생각났고, 그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와 분위기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서 책 선정자였던 소윤이를 감동하게 만들었댔다. 그때 기석이가 소개해준 책도 사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번주에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