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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요일
    모퉁이다방 2017. 11. 9. 21:21




       지난 한주동안 마음이 사막같았다. 결국 두 달 뒤에 살펴보기로 한 일을, 두 달이 되기 전에 하기로 했다. 차장님이 두 달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그렇더라. 괜찮고 마음을 잘 다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주에 혓바늘도 나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책도 안 읽히고, 음악도 안 들렸다. 안되겠다 싶어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왔다. 덕분에 괜찮아졌고, 안심이 됐다. 가보니 결론은 그냥 두 달 기다려도 되었던 거였는데, 그렇게 초조하고 겁이 나고 서러웠댔다. 오늘 가길 잘했다. 마음과 몸은 정말 연결되어 있는 게 맞는 게, 새벽에 욱씬거렸던 것이 오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마음 편히 기다리면 된다.


       마음이 나아지니, 먹고 싶고, 걷고 싶고, 읽고 싶고, 보고 싶어졌다. 오늘은 아침에 지하철 한 번, 오후에 버스 한 번 탄 것만 빼면 내내 걸어다녔다. 충무로에서 을지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걸어가 미쉐린 가이드에 나왔다던 집에 가서 설농탕 한 그릇을 먹었다. 사실 그렇게 맛있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국물이 깔끔하더라. 안국동에 가서는 보이차를 샀다. 친구 생각이 나 한 통을 더 샀다. 친구는 최근에 내게 차를 선물했는데, 오키나와 한정판이었다. 검색해보니 오키나와에서만 나는 과일이 들어간 차였다. 마시면 상콤한 것이 정말 남쪽의 맛 같다. 걸어가던 길에 우체국도 있어 우표도 사뒀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규외 엽서 우표 가격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규외 엽서는 350원, 규외 편지는 420원이란다. 420원 우표만 20장 샀다. 


       궁금했던 안국 프릳츠에 가서 크로와상과 따뜻한 커피도 마셔주었다. 프릳츠 마당에 석탑이 있는데, 석탑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꽤 좋았다. 창덕궁이 옆에 있어, 궁 안의 단풍이 밖에서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워서 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가까운 시간대는 다 매진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상암으로 와 영화를 봤다. <러빙 빈센트>.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1년 후의 이야기. 10년동안 107명의 아티스트가 완성한 6만 여점의 유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슬펐지만 따스했다. '아르망 룰랭의 여행'으로 정리할 수도 있는 게, 아르망 룰랭이 고흐를 찾아 억지로 떠난 이 여행에서 성장한다. 성장하지 않는 이야기가 어디 있냐마는 이렇게 타지역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그러고 싶은데, 잘 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고. 여러 생각이 났다. 곡예사 언니가 권한 반 고흐 소설을 읽고, 닥터 후 고흐 편을 보지 못한 것도 생각이 났고, 지난 해 이 즈음 시옷의 책으로 다시 읽은 고흐와 테오의 편지들도 생각났고, 그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와 분위기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서 책 선정자였던 소윤이를 감동하게 만들었댔다. 그때 기석이가 소개해준 책도 사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번주에 읽어야 겠다.


       집에 와서는 샐러드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오후에 안국동에서 산 보이차를 우려 보았다. 적당한 분량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는 차다. 차가게에서는 분명히 반으로 잘 부서진다고 했는데, 손으로는 도저히 부숴지지 않아 가위로 힘겹게 잘랐다. 약간 진하게 우려졌는데, 끝맛이 깔끔했다. 회사사람들에게 나눠줄 티백에 메모를 남겼다. 한주 사이 사이가 소원해진 사람이 있는데,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렇다. 서운할 때도 있고, 그 사람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상처 받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오늘 본 영화의 마지막처럼, 사는 동안 깊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실수해도, 다음 번에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도 또 실수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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