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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 메뉴는 샐러드
    모퉁이다방 2017. 5. 24. 21:01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한 핸드폰 액정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깨어진 금이 줄어들 일은 없다. 산산이 부서질 일만 남았을 뿐. 한번 일어난 마음은 언제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왜 평상시엔 그렇게 잊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걸 다 기억하고 살다간 지독한 염세주의자가 될 거다. 아직 거의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6월의 휴가엔 노트북을 가져가서 하루하루 모두 기록할 계획이다. 시간이 지난 뒤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힌 채 기록하는 것과,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 무엇이 더 좋은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후자의 기록을 해 보겠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시작하는 건, 그날들을 위한 습관을 기르는 일.


       지난 일요일에는 친구를 만나러 동쪽으로 갔다. 우리는 긴 숲길을 걸을 계획이었는데, 초반부터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걷다 포기해버렸다. 버스를 타고 가 올림픽 공원을 걸었고,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언젠가 함께갈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강의가 있다고 보여줬는데, 친구는 단번에 그 강의가 듣고 싶다고 했다. 고민하다 그래 같이 듣자고 신청을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 여행 때문에 한 번의 수업을 듣지 못한다. 친구에겐 듣지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어제 첫날 함께 읽을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 한번 읽었던 단편이었다. 강의료가 만만치 않아서 내일이 수업인데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아마도 고민은 내일 점심때까지 계속 될 듯.


       확 트인 바람이 부는 곳에서 간단하게 치맥을 하자고 계획했으나, 앉은 자리가 너무 더웠다. 해가 쨍쨍했다. 첫 잔을 마실 때 열기 때문인지 취기가 금새 오르는 것 같더니, 해가 조금씩 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말짱해졌다. 우리는 한 잔 더 마실까, 한 잔만 더 마시고 갈까, 이러다가 많이 마셨다. 계산을 할 때 아주머니가 계산서를 보더니 술을 많이 드셨네요, 라고 말씀하셨다. 친구의 아이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 전에 우리는 홍대의 술집에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았다. 여행지가 배경인 소설을 읽고 있는데, 초반에 한참 안 읽히다가 이제야 재밌어지고 있다. 책을 펼쳤는데, 바로 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니 김포공항 도착 전이었다. 공덕에서 내려서 6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는데, 김포공항까지 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려 공항철도를 탔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6호선을 갈아탔는데, 일요일 늦은 시간이라 열차가 늦게 왔다. 빨리 자야 하는데, 초초해졌다. 그러다 이동진의 라디오에서 들은 멘트가 생각이 났다. 무척 좋아서 나중에 적어놔야지, 그래서 쓸쓸해질 때마다 봐야지 했던 멘트. 이어폰과 메모지, 볼펜을 꺼내 쭈그리고 앉아 이동진의 말들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다 적고 나니 열차가 왔다.



       3714님께서 엊그제 갑자기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벌려놓았던 학원, 약속 등등 다 정리하고 내친김에 스쿠터까지 하나 새로 장만했습니다. 네비게이션 없이 종이 지도로만 의지해서 여행 한번 해보려구요. 얼마동안 있을지, 어디로 갈지, 아무 것도 생각해둔 게 없지만 우선 출발해보려 합니다. 여행의 끝에 제가 어디에 서 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네요, 하셨습니다.


       이런 여행을 가보시게 되면 떠나 있어도 이곳을 많이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여행을 가게 되면 그곳을 보러 가려고 한다, 혹은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걸 상상하고 가게 되는데 정말 여행이 길어지고, 혼자이게 되면 결국 거기서 생각하게 되는 건 자기 자신 혹은 떠나온 이곳, 여기서의 어떤 일들,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생각하게 되죠. 그게 여행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굉장히 큰 소득 중의 하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D-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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