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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월의 삿포로, 첫날
    여행을가다 2016. 12. 12. 23:23


       지난 일요일에 E를 만났다. E는 이번주 주말에 혼자 삿포로 여행을 떠난다. 몇달동안 주말 없이 열심히 일한 뒤 얻은 포상휴가라고 했다. 우리는 그 전 주에 함께 토마스쿡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을 보고 양꼬치를 안주 삼아 칭따오를 마셨다. E는 봄에 친구들과 함께 칭따오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마신 칭따오는 정말이지 이곳의 칭따오와 비할 맛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마시는 것도 이렇게 맛있는데? 라고 물었고, 그러니까 언니가 가봐야 한다니까요! 라는 대답을 얻었다. 언젠가 칭따오에서 칭따오 맥주를 마시고 말겠다.


       나는 E가 떠날 삿포로에도 맛있는 맥주들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내게 찢어졌지만 내용은 고스란히 남은 가이드북과 교통카드가 있어 그걸 전해주러 일요일에 만났다. E는 항공권만 예약해 놓은 상태. 나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온천하고 맥주 마시고, 평소보다 좀더 걷고 오라고 했다. E는 찢어진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더니, 내가 보고 싶은 건 이거예요, 라며 어떤 페이지를 보여줬다. 길이 있었고, 전차가 있었고, 그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내리고 있었다. 볼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하고 삿포로의 이번주 날씨를 검색해봤다. 와, 믿을 수 없게도 일주일 내내 눈이었다. 하루는 눈 또는 비였고, 나머지는 모두 완벽한 눈 그림이었다. E야, 너 정말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오늘 저녁 뉴스를 보는데, 지금 홋카이도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비행기가 결항되고 있단다. 결항이라는 단어보다, 폭설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꽉 찼다. 벅차게-


       E는 안전하게 삿포로에 도착할 것이고, 눈이 가득한 설국에서 사흘밤을 보내다 올 것이다. 어그 부츠를 신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어다니고, 눈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온천을 할 것이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며 잠이 들고, 잠이 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너무나 부러운 것! E를 위한 아주 늦은 팔월의 여름 삿포로 여행기 (라고 쓰고 맥주 여행기라고 읽는다 >.<). 맥주를 많이 마신 탓에 기록을 하지 않아 (그렇다, 지나친 음주는 기록을 와해한다. ㅠ.ㅠ)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나가보겠다.





       다이소에서 산 천원짜리 지갑은 여행갈 때 아주 유용해서, 이제는 우리 세자매의 여행 필수아이템이 되어버렸다. 현재는 홋카이도 밑에 타이페이 글자가 추가되었다.





       예전 타이페이 여행 때 친구가 만들라고 해서 만든 카드가 있는데, 여행 때마다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전달에 일정금액을 사용하면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라운지 가려고 친구랑 엄청 일찍 만났다. 저가항공이라 밥을 주지 않으니 배를 채우자며, 맥주를 마셨다. 오후 출발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몽글몽글, 두근두근, 몽롱몽롱-





       공항에 도착해서 친구는 안내 데스크로 가더니 커다랗고 자세한 삿포로 지도를 받아왔다. 여행 내내 친구는 그 지도로 도착지를 척척 잘도 찾아갔다. 계획도시라 길들이 반듯하기는 했지만, 내게는 방향이며 몇 블록 더 가야 하는지도 파악하기 쉽지 않았는데, 친구는 잘도 찾아가더라. 친구는 지도 능력자였다! 삿포로역에서 숙소로 갈 때 기차노선 앞에서 전철역을 한참을 찾다 왜 없냐고, 물어보고도 원하는 답을 듣질 못해 갸우뚱거렸는데, 그것만 제외하면 아무 문제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올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드문드문 한적한 풍경을 지나고, 불빛들이 따닥따닥 조밀해졌을 때 친구가 말했다. 와, 여기가 삿포로구나-





       숙소는 예약한 대로 높은 층이었고, 강일 게 분명한 곳이 내려다 보였다. 어두워서 강인지 들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예약한 대로 욕실이 있었고, 두 개의 침대가 있었다. 예약한 대로 하나의 자그마한 소파가 있었고, 하나의 자그마한 책상이 있었다. 내가 창밖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 사이, 친구는 가지고 온 옷들을 옷장에 걸어뒀다. 이 곳에서 3일 밤을 잘 거였다. 친구는 목욕하고, 온천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이 숙소에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대욕장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선택한 숙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첫 끼를 (사실은 첫 안주를) 뭘로 할지 고심했는데, 꼬치류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텔 프론트에 가서 더듬더듬 물었다. 야끼도리를 먹고 싶습니다. 근처에 맛있는 야끼도리 집이 있습니까? 직원분이 미소를 띄며 자신의 단골집을 두 곳 알려줬다. 주변 지역이 깔끔하게 인쇄된 지도를 꺼내 두 곳을 표시해줬다.





       이 때의 기분은 몇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서울은 무척 무더웠는데, 짐을 다 내려놓고 맥주를 마시러 나온 우리에게 홋카이도의 여름바람이 불었다. 와! 둘이 동시에 탄성을 뱉어냈다. 너무너무 시원한 바람이었다. 이번 여름 힘들었지? 여기서 잘 놀다 가. 내가 잘해줄게, 여기 좋은 곳이야,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많이 걷고, 잘 놀다 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시원한 바람! 둘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지금 우리가 내뱉을 수 있는 온갖 좋은 말들을 다 해댔다. 그렇게 삿포로 번화가까지 걸어갔다. 직원이 알려준 곳 중 좀더 동네 술집 같은 분위기로 들어갔다. 담배연기가 자욱해서 당황했지만, 인상 좋았던 직원의 추천을 믿어보기로 했다.





    삿뽀로 클래식 나마비루 후타츠 구다사이-





       오늘 뭐 먹지? 삿포로 편에서 신동엽과 성시경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감자구이와 오징어 젓갈도 시켰다. 처음에는 좀 밋밋했는데, 그들이 왜 감탄했는지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는. 친구가 그 프로를 안 봐서 꼭 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별로 맛 없을 것 같다며 망설였는데, 엄청 잘 먹었다. 아, 맛있었다.





    꼬치는 뭐가 뭔지 메뉴를 봐서 알기가 어려워 인기 세트 메뉴를 시켰다.

    나는 좀 많이 질겼는데, 친구가 맛있어했다.  





    캬- 친구의 감탄이 이어지고.





    또 마시고,





    또 먹고,




    또 마셨다. 이건 실패. 그냥 그랬다. 역시 맥주가!


       역시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라멘골목도 들르고 (배가 불러 다음날을 기약했다), 인형뽑기 기계가 가득한 오락실도 들렀다. 친구는 인형뽑기를 하고 싶어했는데, 너무 비싸다며 신중하게 인형들과 인형들 사이를 오고갔다. 결국 원하는 위치에 인형이 놓여져 있는 기계가 없다며 그냥 나왔다. 지금의 위치로는 인형을 절대 뽑을 수 없다고 말하며. 마트에 들러 캔맥주와 안주를 샀다. 친구는 대욕장에 가서 첫 목욕을 하고 왔고, 나는 씻고 누워 친구가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티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다, 핸드폰에 있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생각나 티비를 끄고 핸드폰의 영화를 켰다. 핸드폰의 조그만 창으로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오늘 밤은 집에 돌아갈 걱정 없이, 마시다 쓰러져 자면 그만. 두 시간 넘게 날아 삿포로로 온 날. 괜찮은 첫날이라고 자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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