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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월의 출근길
    모퉁이다방 2016. 4. 20. 23:04

     

     

     

       점자 명함을 받은 순간부터 '이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투표소에서 도장을 찍기 전 망설여졌다. 이 사람은 당선이 안 될 게 확실하기 때문에. 나의 표는 소중하니까, 좀더 실리적인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이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이 사람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오늘 출근을 하면서 이 사람을 봤다. 실제로 본 건 두번째다. 이 사람은 양복을 차려 입고 있었고, 그 옆에 그의 동료가 커다란 판넬을 들고 있었다. 그 판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낙선했습니다. 그래도 일합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 입구에는 이 사람과 이 사람의 동료가 벗어놓은 가방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백팩은 적당히 낡아 있었고, 그 뒤의 까만 손가방에는 세월호 추모리본이 노랗게 달려 있었다. 사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티나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좀더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직접 다가가 말해줬을텐데. 응원한다고. 대신, 있는 힘껏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다짐했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살아가면서 한번도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절망하고 있는 고흐의 글을 읽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는 한 순간도 실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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