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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기 일지, 첫번째
    모퉁이다방 2016. 4. 5. 22:37

     

     

     

       일요일에 마라톤을 신청해뒀다. 비록 5키로이긴 하지만. 살이 빠지기 시작하자 뭔가 더 열심히 움직여보고 싶어서 주말에도 뭘 해보자 궁리했다. 요가도 생각해보고, 훌라를 배우는 것도 생각해봤다. (훌라는 강습까지 알아봤는데 내가 가능한 시간의 강좌는 너무 비쌌다 ㅠ) 그러다가 작년에 포기한 마라톤이 생각났다. 친구는 나한테 딱 한번만 같이 뛰어보자고 말했다. 뛰고 나면 너무 힘들고 뿌듯한 것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게 너무너무너무 좋다고, 나도 느껴봤음 좋겠다고 했다. 그때 신청을 하고 연습을 나름 하다 독감에 걸려 버려서 친구만 뛰었었다. 신청한 거리가 10키로인가 7키로였는데, 잘 뛰어지질 않았다. 거리가 부담스러워 감기가 와 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좀더 가볍게 5키로로 신청했다. 5키로를 뛰고, 좋으면 7키로, 그 다음엔 10키로를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혼자 뛰는 일이지만 달리기가 끝나면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혼자 가서 혼자 뛰고 혼자 돌아오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S에게 같이 뛰자고 했다. 고맙게도, S가 그러겠다고 했다. 얼마 전 S를 만났는데, 사실 자신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였다고 했다. 장거리는 젬병인데 요즘 조금씩, 길게 뛰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요일인데, 화요일인 오늘에서야 첫 달리기를 했다.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불광천에 나가 스트레칭을 하고, 멜론 플레이어를 켰다. '뛰자' 폴더의 음악들을 재생시켰다. 나이키 러닝 어플도 켰다. 알파고를 닮은 무뚝뚝한 남자 트레이너가 말했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일 년 만에, 아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알파고 트레이너가 1키로가 되었다고 말해주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사람들이 많네, 벚꽃이 폈는데 안경을 안 쓰고 나와서 하나도 안 보이네, 동생은 순환운동 잘 하고 있을까, 트레이너가 언니는 이번주에 안 오냐고 찾을텐데, 내일 아침에는 삼계탕을 먹자, 삼계탕 국물에 견과류를 갈아 넣을까, 그런데 나 너무 천천히 달리고 있는 거 아닌가 등등. 알파고 트레이너가 1키로가 되었다고 말해주자 단번에 걷고 싶어졌다. 아, 걷고 싶다. 달리고 있지만 걷는 거랑 비슷한 속도인데, 힘은 들고. 걸어 버릴까. 그냥 걸어 버릴까.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 그냥 달렸다.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지만 걸어버리면 다시 뛸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 계속 뛰었다. 그러다 2키로가 되었고, 3키로가 되었다. 내 머릿 속은 벚꽃이니, 야경이니 이딴 것도 없이 계속 걸을까, 뛸까, 걸어 버릴까, 뛸까, 이 생각 뿐이었다. 그래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목표한 거리를 끝까지 뛰었다. 다리가 풀리고 어질어질했지만, 뿌듯했다. 그제서야 벚꽃들도 보였다. 세어보니 뛰는 동안 모두 열 곡의 노래를 들었다. 랜덤 재생이었는데, 마지막 곡이 기가 막히게 '벚꽃 엔딩'이었다.

     

    1. 뱁새 (Live) / 선우정아

    2. 여름 밤 탓 / 슈가볼

    3. Everybody's Changing / Keane

    4. 뜨거운 안녕 (워리어스) / 유희열

    5. Farewell / 박경환

    6. Highway / 쿠쿠리

    7. La Mitad de Nuestras Vidas / La Buena Vida

    8. I don't know what to do / Pete Yorn, Scarlett Johansson

    9. Bikini / 페퍼톤스

    10. 벚꽃 엔딩 / 버스커버스커

     

    2016.4.5 

    5.01km

    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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