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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 J
    모퉁이다방 2016. 3. 24. 23:20

     

     

     

       "금령아, 결혼하지마." 언니가 그랬다. 언니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알지. 이 말은 새댁들의 단골 멘트인 것을. 언니는 새댁이 되었다. 우리는 간만에 파주에서 만났다. 바람이 살을 에일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나는 언니네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다 새로운 빵집이 생긴 걸 발견했다. 구경하려고 들어갔다가 이것저것 샀다. 두개씩 사서 각각의 봉투에 담았다. 하나는 내 봉투, 하나는 언니 봉투.

     

        언니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간의 안부를 건넸고, 나는 외롭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간의 소식을 전했다. 그러는 사이, 언니의 동생이 왔다. 언니는 그동안 동생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만나게 해줬다. 그리고 언니의 신랑도 왔다. 이렇게 넷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언니네 동네 치킨피자집에서 함께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언니네 집에 가서 언니가 준비해놓은 맥주를 마셨다. 언니는 만났을 때 뭐 먹을지 내게 고르게 했는데, 나는 치킨을 좋아하니까 치킨을 먹자고 했다. 언니가 집에서 먹게 될 경우를 대비해 닭봉을 사 놓은 지도 모르고. 언니네 집에서 맥주도 마시고, 마른오징어도 먹고, 계란말이도 먹었다. 안타깝게도 닭봉구이는 많이 남겼다. 흑-

     

        오빠는 언니가 싫다는 데도 기어코 결혼식 영상을 틀었다. 거기엔 당연하게도 언니가 있었고, 오빠가 있었고, 언니와 오빠를 축하해주러 그 날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언니는 결혼식 전에 결혼식 같은 거 하기 싫다고 했었는데, 영상을 보더니 저 날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모든 게 나를 위한 날이었다고. 그 느낌이 무척 괜찮았다고.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오빠는 언니가 싫다고 하는데도 신혼여행 사진도 보여줬다. 언니는 호주의 맥주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야기해줬다. 마지막으로 한 잔의 맥주를 더 마시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런 것이다. 결혼은 할만한 것이다.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지만, 이런저런 즐거움이 있으니까.

     

       언니의 동생은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해했는데, 언니가 그랬다. 언니가 몇 번이나 만나자고 했는데 내가 몇 번이나 거절했다고. 그랬나. 나는 단번에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 그랬다. 인터넷 뱅킹도 못하던 언니와 만나자고 하면 매번 거절하던 내가 만나 그것도 언니의 동생과 언니의 남편과 함께 언니의 신혼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결혼식을 지켜봤고, 어쩌면 언니도 나의 결혼식을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았던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만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벅찼던,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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