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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보리
    모퉁이다방 2016. 3. 10. 23:48

     

     

     

        1월부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운동의 처음은 동생 회사에서 선물해준 1개월 무료 이용권 덕분이었는데, 당시에는 등록만 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가 올해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소소한 시련들을 맛본 후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내일도 나가볼까, 하고 나갔고. 내일은 나가지 말아보자, 하면 그 다음날 아침 몸 컨디션이 영- 엉망이었다. 그러니 다음에는 꼭 나가자, 가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고, 인바디를 쟀는데 모든 몸이 '적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트레이너도 지표를 보더니 놀라면서 칭찬해줬다. 이렇게 딱 5월까지 열심히 하면 몸이 엄청 좋아질 거라고 했다. 이번주 월요일에도 운동을 했고, 화요일에도 했고, 수요일에도 했다.

     

        하지만, 오늘 목요일. 칼퇴의 계획이 실패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오늘도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운동을 갔어야 했는데. 오늘, 잡생각이 많아 일의 속도가 느려졌고, 하물며 오후에는 차장님과 잡담 시간도 가졌기에 칼퇴에 실패했다. 오늘은 퇴근셔틀버스가 없는 목요일. 7시 조금 넘어서 Y씨랑 2200번을 타러 나갔다. 원래는 회사 앞 정류장에서 타는데 버스 시간을 보며 출판단지 안쪽으로 한 정거장 걷기로 했다. 한 정거장 가보니 시간이 어중간해서 한 정거장을 더 가려고 하는데,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에서 2200번이 지나가는 걸 봤다. 다음 버스는 15분 정도 기다려야 했고, 우리 앞에는 새로 생긴 맛있는 빵집이 있었다. 지난 주 목요일날 우리는 여기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뱉고야 말았다. Y씨, 우리 빵 먹고 갈래요? 내가 살게요. 운동, 그래, 하루 정도 쉬어줘야 해요. 너무 열심히 했어.

     

       햄치즈 파니니를 먹고 싶었지만 파니니는 마감되었단다. 감베리 샌드위치를 시켰다. 일주일 전에 우리는 감베리가 뭔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했더랬다. 감베리는 이탈리아어로 어린 새우. 스팀 우유도 시키고, 프레첼도 하나 시켰다. Y씨는 따뜻한 우유가 아니라 스팀우유라니 뭔가 된장녀가 된 기분이에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통통한 새우가 꽉 차 있는 감베리 샌드위치를 반씩 나눠 먹고, 아무 맛이 안나는 無맛있지만 짠맛이 묘하게 맛있는 딱딱한 프레첼을 먹었다. 미지근한 스팀우유도 마셨다. 그리고 막 떠나려는 2200번을 용감하게 막아세웠다. 그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말했다. 나는 파주에서는 못 살 것 같아요. 일산도 좀 그래요. 파주와 일산에는 회사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다.

     

       그렇게 Y씨랑 헤어져 6호선을 탔는데, 그때부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님이 말하셨지. "밀가루는 안되요. 절대!"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아침에는 먹고 싶은 걸 먹어요. 제일 먹고 싶었던 거요." "오늘 아침에는 뭘 드셨는데요?" "피자요!" "밀가루, 안되요! 빵, 안되요! 그래서 그랬어. 회원님 뱃살이요." 흑- 1월 말의 일이다. 그래, 밀가루는 다이어트의 적이었는데. 오늘 나는 아침으로 만두와 김밥을 먹고, 점심으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고, 저녁으로 새우 샌드위... 그렇지만 맛있었으므로 후회는 없다. 하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는 새빨간 거짓말. 김사랑 님이 말씀하셨다. "세 끼 다 먹으면 살쪄요." 제시카 님도 말씀하셨다.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 먹었어요." 김민희 님은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먹는 거요? 귀찮아요." 젠장! 옥주현 님의 명언도 있지.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다." 아, 욕 나온다.

     

       그리하여 나는 저녁으로 밀가루를 먹은 내 몸에 대한 죄책감을 잔뜩 끌어 안은 채 월드컵경기장에서 내렸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시키고 최대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만두야 안녕! 돼지고기야 안녕! (너는 참으로 맛있었다. 내가 제일 나중에 젓가락 내려 놓은 거 알지?) 통통한 새우를 머금은 빵아, 밀가루야 안녕! 이별은 참으로 힘든 것. 그렇게 걷다 보니 별도 보이고, 밤도 보이고, 이제 곧 떠날 늦겨울도 보였다. 때마침 이어폰에선 가을방학의 노래가 나왔다. 계피가 노래했다. 이렇게.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맘을 알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엔

    울고 싶어

    사랑에 실패하는 건 괜찮아

    자신에 실망하는 게 싫어

    그런 나로 살아가야만 하니까

     

       이런 계피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아이보리'가 생각났다. 그래서 들었다. 듣다가 그래 '아이보리'가 이런 가사였지, 했다. 본능적으로 나는 '아이보리'를 찾은 것이다. 3월에는 뛰어보기로 했다. 천천히 뛰어볼 것이다. 불광천은 봄이면 걷는 게 신날 정도로 고운 벚꽃길이 펼쳐진다. 벚꽃나무가 경쟁하듯 아름답게 줄지어 서 있다. 그런데 벚꽃은 찰나라 더 보고 싶다 싶을 때 사라진다. 올해는 그 길을 뛰면서 보려고. 그래 보려고 한다. 봄아, 얼른 와라. 겨울아, 너는 이제 가자. 이별은 힘들지만 우리, 그만 헤어지자. 응? 그러니까, 결론은 내일 꼭 운동을 하기로. 그리고 오늘, 심사숙고 끝에 과감하게 포기한 그 하나에 후회가 없기를.

     

       3월, 또다시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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