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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선동, E
    모퉁이다방 2016. 2. 23. 22:33

     

     

     

        세어보니 거의 일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E와 나는 작년 이맘 때쯤 전주 여행을 갔었다. 오직 가맥집을 가기 위해. 금요일 퇴근을 하고 만나 고속도로를 달려 한밤에 전주의 복작복작한 가맥집에 마침내 앉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설레였었나. 그때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서울에 괜찮은 가맥집이 있다고 해서 간만에 E와 만났다. 우리는 클라우드 맥주병으로 테이블 한 면을 가득 채웠다. 먹태도 먹고, 과자도 먹고, 사발면도 먹었다. E는 역시 맥주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는 어떻게 이렇게 질리지 않을까. 맥주를 마시다보니 비가 왔다. 술맛이 더 났다. 우리의 목표는 잔뜩 마시고 취하지 않기였다.

     

       익선동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언니, 요즘 이 골목길이 뜨고 있대요. E가 말했다. 지도를 따라 낙원동의 오래된 골목길로 들어왔는데, 거기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새롭게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었다. 열두 달이라는 한옥 가게에서 맥주를 팔길래 2차를 하러 들어갔다. 마당에 앉았는데 ㅁ자의 건물에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 지붕이 씌어져 있었다. 비가 조금씩 오다가, 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졌다. 마당에 앉은 덕에 그 소리와 모양을 그대로 듣고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훈제햄이 들어간 오일 스파게티 하나와 각각 다른 맛의 수제 맥주를 시켰다. 

     

       언니. 연애는 많이 했고, 적게 했고를 떠나서 그냥 힘든 것 같애요. 모르겠어요, 정말. 그때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하면 웃어줬는데, 지금 이 애는 안 웃어줘요. 그때 그 사람은 이렇게 하면 귀여워해줬는데, 지금 이 사람은 이렇게 하면 귀여워 안 해줘요. 잘 모르겠어요. 어려운 거예요. 연애는.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연애다. 내가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당신들은 어떻게 해서 인연들을 만났는지. 지난 토요일에는 함께 일본어 공부를 하는 분이랑 점심을 단둘이 먹었는데, 나의 올해 목표가 애인 만들기 임을 아시는 분이 물었다. 금령씨는 왜 올해 목표가 연애예요? 올해 결혼하고 싶은 거예요? 그냥 사랑받고 싶어서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듬뿍 받고 싶어서요. 말하면서 알았다. 나 사랑받고 싶은 거구나. 1월의 어느 일요일, 광화문에서 혼자 <이터널 선샤인>을 봤다. 무척 좋아해서 극장에서 다시 보길 바랐던 영화인데, 내가 그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제 혼자 영화 보는 거 그만 하고 싶다는 거였다. 십년이 넘게 혼자 영화를 수도 없이 봐 왔고, 그게 너무나 좋다고 느끼던 사람인데. 이번 겨울, 내가 변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맥주가 약간 부족했다. 그래서 한 잔을 시켜 나눠 마시려고 했다. 주문을 하자 직원 분이 그렇게 나눠 마시면 맥주가 맛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반 잔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이런 친절하고 고마운 가게가 있나. 한 잔 같은 반 잔이었다. 맥주를 마시다 둘 중에 누군가가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가서 슬픈 노래들만 내내 부르자고 했다. 그러다 울어버리자고 했다. 우리는 낙원동이 내려다보이는 2층의 노래방에서 슬픈 노래만 불렀다. E는 내가 모르는 사이 슬쩍 울었다고 했다. E는 에코 브릿지의 <부산에 가면>을 부르고 싶어했는데, 없었다. 나는 자우림의 노래를 불렀는데, E가 칭찬해줬다. 1시간으로 모자라 30분을 추가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1시간을 더 넣어주셨다. 낙원동은 정말이지. 겁나 친절하고 겁나 고마운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2시간 동안 슬픈 노래만 불러댔다. E가 지드래곤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내 멜론 재생목록에 그 노래를 추가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 날의 목표를 이뤘다. 취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에서 <부산에 가면>을 들었다. 아, 낮술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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