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아빠
    모퉁이다방 2015. 10. 13. 22:20

     

     

     

        아빠는 일요일에 올라와 월요일에 내려가셨다. 지난 여름부터 걱정했었다. 평생 살이 쪄 본 적 없는 아빠는 요새 부쩍 더 마르셨다. 자주 탈이 나셨고, 전화 목소리에 힘이 없을 때가 많았다. 늘 내 힘없는 전화 목소리를 걱정했던 아빠가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원래 지난 여름에 검진을 받았어야 했는데, 메르스 때문에 한차례 미뤘었다. 일요일 새벽차를 타고 올라온 아빠는 전날 우리가 열심히 청소해 놓은 집에 와 대장약을 네 통 마시고, 티비를 같이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검진 전날에는 흰죽만 먹어야 해서 흰죽을 한가득 만들어 놨는데 (우리도 같이 먹으려고) 니글거린다며 한 그릇도 다 드시지 않으셨다.

     

        월요일 아침, 아빠와 나는 일찍 집을 나와 불광천을 산책했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날이 갑자기 쌀쌀해졌다. 차가운 가을 공기를 들이마시며 불광천길을 걸었다. 내가 말했다. 이 나무들이 모두 벚꽃나무라고. 봄이 되면 여기 벚꽃길이 열린다고. 아빠는 고향집 밭 근처에 있었던 벚꽃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은 아빠, 작은 엄마, 사촌 동생이 십 여년 전에 직접 심어 놓은 나무가 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렸다고, 너무 아깝다고. 그 나무들이 근사해질 참이었다고. 아빠는 요즘 아주 옛날 이야기를 엊그제 이야기인양 생생하게 이야기하신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 이야기도 하고, 아빠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도 하고.

     

       아침산책을 하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병원셔틀버스를 탔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검진은 그만큼 일찍 시작됐다. 나는 아침 커피를 마시러 1층에 내려간 시간만 빼면 같은 자리에 앉아 거의 5시간을 아빠를 기다렸다. 한 권 다 읽어버릴 참으로 얇은 새 소설책을 가지고 갔지만 잘 읽히지 않았다. 소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다. 아빠가 내시경하러 들어갈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1시간 뒤에 간호사가 나와 보호자 분 함께 들어와서 얘기를 들으라고 할 때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똑같은 검사결과를 들었는데, 아빠는 가볍게 듣고 나는 무겁게 들었다. 아빠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너무 순진하다고 했다. 나는 순진해도 좋고, 병원이 우리 돈을 쓸어 가도 좋으니, 아빠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터미널에서 아빠를 보내고 혼자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는데, 비로소 안심이 됐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걱정이 되서 일하다가도 눈물을 갑자기 흘리곤 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약을 잘 먹고, 세 끼 꼬박꼬박 좋은 음식들로 챙겨 먹고, 매년 검진을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 거였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어제 아빠 잘 도착했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왔다. '고생했다 하더라. 너희들이 자기를 살렸다고.' 오늘 친구에게 물어본 뒤에 위에 좋은 뉴질랜드 마누카 꿀을 고향집 앞으로 주문했다. 공복에 하루 한 숟갈씩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위의 염증도 없어진단다. 이제, 좋은 일만, 다행인 일만 남았다. 가을이 되었고, 마음이 따듯해졌다. 정말 다행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