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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모퉁이다방 2015. 10. 1. 20:59

     

     

     

       우리는 이 블로그를 통해 만났다. 언니는 인터넷 서점의 링크를 따라 이 블로그에 들어왔고, 언니가 남긴 댓글에 의하면 언니와 내가 비슷한 감성의 사람인 것 같아 그 뒤로도 계속 이 곳에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는 김연수를 좋아하고,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알고 지낸 지 2년 정도 됐을 때, 언니가 연극을 함께 보자고 했다. 자신의 친구가 극본을 쓴 연극인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언니도 초대를 하면서 큰 결심을 했겠지만, 나도 그 연극을 보러 가기까지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우리는 조금 쌀쌀한 가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연극을 함께 보고 극본을 쓴 언니 친구와 함께 셋이서 대학로의 고깃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게 7년 전 이야기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지켜봐줬다. 언니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직장을 옮겼고, 스페인의 순례길을 걸었고, 파주에 집을 얻어 독립을 했고, 몸이 아파 수술도 했다. 소개팅을 했고, 한 남자를 만났으며, 그 사람을 내게 소개시켜 줬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좋았던 책을 추천해주고, 선물해주기도 했다. 만나면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댔다. 내한한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러 두 번씩이나 가기도 했다. 한 번은 각자의 친구와 함께 갔고, 다른 한 번은 둘이 함께 갔다. 두번째 갔을 때 요시다 슈이치와 함께 각각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찍어준 사진에 언니의 눈이 감겨 있는 걸 행사가 끝나고 맥주를 마시러 간 양꼬치 집에서 발견했다. 흠. 그 순간, 우리는 절교할 뻔 했다.

     

       우리는 한 계절에 한 번씩 혹은 한 계절이나 두 계절을 건너띄고 만났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둘 다 술도 잘 못 마시는 주제에 엄청 마시곤 했다. 반가워서. 이렇게 우리가 만나 친구가 된 게 신기해서. 언니는 내게 친구들의 공연을 보여줬고, 그 친구들도 소개시켜줬다. 맥주도 많이 사줬고, 술에 취해 잠들어버리는 나를 집에 들여 보내고는 걱정이 되서 여러번 전화하고, 여러번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한 해 한 해 함께하는 시간들을 쌓아갔다. 그런 언니가 지난 달 결혼을 했다. 어느 날, 내게 금령아 나 남자친구 생겼어, 라고 말하더니, 몇년 뒤 어느 날 금령아, 나 결혼한다, 라고 말했다. 그런 언니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언니는 따뜻하게 맞이해줬고 혼자 밥을 먹을 나를 걱정해줬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밥은 잘 먹고 갔는지 메시지를 보내줬다.

     

        언니가 청첩장을 건네 준 날, 우리는 어김없이 맥주를 잔뜩 마시고 만취 상태로 파주 거리를 걸었다. 언니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나는 언니가 끌고 나온 자전거를 타보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맥주를 좀더 사기 위해 들어간 마트에서 발견한 대패삼겹살에 내가 흥분하자 언니는 바로 구입했지만, 만취한 나는 언니 집에 오자마자, 언니가 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꿈나라로 멀리멀리 떠났다. 언니는 테이블 위에 고기를 구울 만반의 준비를 다한 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언니의 결혼 전, 함께하는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장만옥을 닮은 언니는 결혼식날 참 이뻤다.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축하를 받았다. 괜히 눈물이 찔끔 났다. 우리가 이렇게 친구가 되어, 서로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게 되다니. 언니는 호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호주의 한 가운데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다고 했다. 언니는 그곳에 다녀온다고 했다. 언니가 그곳에서 만들어올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언니는 그러겠지. 별거 없었어. 별로 재미없었어. 언니의 재미난 이야기는 항상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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