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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일기, 구월
    모퉁이다방 2015. 9. 6. 19:49

     

     

     

     

     

     

     

     

        구월이 시작되었다. 좋지 않은 일로 이번 주 평일이 마무리되었다. 끈기를 가지고 어떤 일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터넷으로 재미삼아 본 사주 내용을 내내 떠올렸다. 사주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주의 조언들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 힘들 때 누군가의 용기와 위로가 필요해서 사람들은 사주를 보는 것 같다. 어쨌든 요즘 저 사주 결과를 시시때때로 떠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포기를 해왔으므로, 이제는 그리 많은 포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번 주말은 온전히 혼자 보냈다. 일찍 신촌에 도착해서 학원 아래 스타벅스에 갔다. 지난 주에 술 마신다고 빠진 학원수업에서 중요한 동사를 공부한다고 했다. 지난 월요일에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술 마셔서 숙취로 빠졌다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고, 몸이 아파서 연락도 못하고 못 나갔다고 했다. 지난 주에도 프린트물을 나눠줬을 것 같아서, 그 프린트물을 메일로 받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의 답장이 왔다. 열심히 하시는 분이 안 나오셔서 궁금했어요. 그 말에 힘을 내고, 매일매일 일하면서 MP3 파일을 들었다. 칭찬은 나를 춤추게 만든다. 학원에 가니 지난 달에 다녔던 사람 중에 세 명이 나오지 않아 괜시리 아쉬웠다. 두 명이 더 들어왔는데, 둘 다 무척 잘하더라.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을 들었다. '-나가라' 그러니까 '-하면서' 라는 문형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서로 대화를 만들어 얘기해보자고 해서 이런 문장을 만들었다. '영화라도 보면서 팝콘을 먹을까요?' 선생님은 '이상'은 영화가 주가 아니라 팝콘이 주라고 커다랗게 웃으셨다. 하하.

     

       수업을 하는동안 비가 쏟아졌다. 오늘은 백화점 지하에 가서 혼자서 샤브샤브를 먹자고 결심했다. 백화점 지하에서 샤브샤브를 한 사람씩 먹을 수 있게 파는 걸 언젠가 보았었다. 육수의 종류와 면과 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스키야끼 육수와 칼국수 면으로 정했다. 국물을 끓여 야채와 고기를 넣고 건져내 소스에 찍어 먹었다. 칼국수 면도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샤브샤브집 옆에 있는 오설록 매장에 붙여진 녹차 아이스크림 광고 포스터를 계속 보다보니 먹고 싶어져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홍대까지 걸어와서 지하철을 타고 상암에서 내렸다.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 <뷰티 인사이드> 표를 끊었다.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지하철 역 바로 밖에 있는 청소년 광장 계단에 앉았다. 나무가 많은 구석 자리에 앉아 시옷의 모임 다섯 번째 책을 읽었다. <D에게 보낸 편지>. 나는 이 책의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읽는 순간부터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몇 장 넘기지 않아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작가와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영화 시작 시간이 되기 직전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아, 좋았다.

     

        <뷰티 인사이드>는 B의 말대로 중요한 순간에 잘 생긴 남자들이 나오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한효주가 수수하고 예뻤고, 김주혁이 헤어지자고 고백하던 순간의 언덕길과 눈이 내리는 풍경이 무척 아리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한효주에게 있는 언니라는 존재가 부러웠다.

     

       오늘은 집에서 동그랑땡과 고등어를 구워 아점을 먹고 <이민자>를 보러 갔다. 이동진이 무척 극찬한 영화라서 기대를 했다. 아름다운 마리옹 꼬띠아르도 출연하니까. 나는 그녀의 팬. 영화는 뭐랄까. 연기는 무척 훌륭했다. 모두들 더할 나위 없었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이번 영화에서도 빛났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렇게 연기까지 잘하다니. 정말 그녀에 대해 더 깊이있게 알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야기가 불편했다. 결국 미국에서의 '여자'의 삶은 '남자들'의 사랑, 남자들의 욕심, 남자들의 소유욕으로 불행해졌다. 여자는 당당하고 강인하고 거침없어 보였지만 결국 혼자서 해결한 일은 없었다. 이민자의 삶이란 그러했다고 표현한 걸까. 그 모든 것도 그녀가 예뻤기 때문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누가 가장 나쁜 사람인가, 생각해봤는데 어떤 한 사람을 꼽을 수 없었다. 모두가 악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제의 그 자리에 다시 갔다. 어김없이 맥주 한 캔을 사서. 그 자리에 앉아 김윤아의 음악을 들으면서 삿포로 음식 그림이 가득한 책을 읽었다. 내가 떠난 첫 해외여행은 친구와 함께 한 홋카이도 패키지 여행이었다. 우리는 돈이 얼마 없었고, 곧 어딘가로 떠나야 했고, 그 곳이 조금은 특별한 곳이었음 했다. 그래서 선택했던 여행. 매일 저녁을 먹을 때 조금 일찍 나와 근처 가게에서 맥주를 가득 사서 백팩에 담았다. 매일매일 다른 호텔에서 매일매일 다른 일본 맥주를 마셨다. 그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삿포로였다. 낯선 여행지에서 자신은 꼭 아침 산책을 한다는 가이드 말에 따라 마지막 날 아침 호텔 앞에 있는 골목길 산책을 했더랬다. 매일 밤의 맥주로 빵빵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는 나중에 다시 오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친구가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조금 크면 둘이 같이 맥주여행을 다시 가자고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를 꿈꾸며, 삿포로 맛집을 열심히 들여다 보겠다.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으나, 월요일은 올테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의 사주를 생각하리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될 것이니, 꿈꾸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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