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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일기, 인사동 부암동
    모퉁이다방 2015. 8. 11. 23:19

     

     

     

     

     

     

     

     

     

     

     

     

     

     

     

       토요일. 학원에서 나오니 바람이 어마어마했다. 치마가 뒤집히고, 힘없는 간판들이 날리고. 그러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금새 그쳤다. 또 쏟아졌다. 나는 비가 오는 동안 백화점 안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고, 또 비가 오는 동안 버스 안에 있었다. 종로로 가는 버스였는데, 반대 방향으로 타서 그대로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오랜만에 버스에 앉아 졸았다. 창가에 앉아 비가 내리는 풍경도 내다봤다. 조용한 음악도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종로에서 내려 인사동까지 걸었다. 제주 오름을 오르러. 그 날 제주의 아침 오름에도, 오늘과 같은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김영갑의 사진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사실 전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정성스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김영갑'이 아니라 '전시'가. 3층으로 나뉘어진 전시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사진들은 넓어졌다. 그만큼 제주가 더 잘 보였다. 초기 작품에서 시작해 중기 작품, 후기 작품들로 이어지는 구성이었다. 3층이 후기 작품들의 공간. 3층의 사진들에 발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나는 3층에서 노력,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건 내가 1층과 2층을 돌아봤기 때문에 떠올랐던 단어였다. 어떤 사진 앞에서 꽤 오래 머물렀는데, 그 사진에는 돌담이 있었고, 제주의 강한 바람에 제 몸을 맡긴 풀들이 있었다. 그 뒤로 오름이 있었다. 굳게 뿌리 내린 오름이었다. 미동도 없는 오름이었다. 단단한 오름이었다. 그 위로 하늘의 구름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진전을 나와 좀더 걸어보자, 는 생각에 조계사까지 갔다. 연꽃 축제 중이었다. 연꽃도 구경하고, 연꽃을 찍는 외국인들도 구경하고, 예불이 진행 중인 절도 구경했다. 그리고 동생을 만나 부암동에 가서 스파게티를 나눠 먹고, 포르투갈 와인을 나눠 마셨다. 꼭 포르투갈 와인을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포르투갈 와인이 제일 저렴했다. 우리가 그 식당에서 제일 오래 머물렀다. 해가 있을 때 들어와서, 깜깜해진 뒤에야 나왔다. 와인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그 해 제주를 생각했다.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도 생각했다. 그래서 8월이 가기 전에 다같이 모여 제주 음식을 먹자고 연락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물건 하나씩 가지고 나와 서로 나눠 갖자고 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동생 다리 때문에 택시를 부르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에서 나오니 부암동 깊숙한 곳이라 그런지 고요했다. 공기에 풀내음이 가득했고, 풀벌레 소리도 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걷다 택시를 부를 걸 후회했다. 택시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찌되었건, 우리들의 여름이 가고 있다. 동생의 다리도 나아가고 있고, 잘 보이진 않지만 새로운 계절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 여름이 잘 마무리 되기를. 다음 주에도 열심히 돌아다녀 봐야겠다. 주말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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