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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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 Winter_U2극장에가다 2010. 5. 9. 21:23
극 중 그레이스, 그러니까 나탈리 포트만은 남편이 파병 가기 전에 남긴 편지를 읽지 않고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둔다. 그 편지는 샘, 그러니까 토비 맥과이어가 파병 가기 전, 만일의 경우,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써두었던 편지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만일의 경우가 발생했다. 그레이스는 거품목욕을 한 직후, 이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동료가 그 편지를 전해줬다. 그는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스는 돌아와 서랍 안에 그 편지를 넣어두기만 했다. 하얗고 커다란 편지봉투의 겉면에는 'Grace'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줄곧 잠만 잤다. 때때로 울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웃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시간이 갔다. 겨울은 여전히 추웠고, 시동생은 그녀를 위해 부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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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 기린님, 나는 괜찮아요극장에가다 2010. 3. 27. 15:22
어떤 외로움은 외롭다는 느낌보다, 말이 먼저 온다. 내가 봤다. 그런 사람. 그이는 자신이 전혀 외롭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했다. 집을 평생 사지 않겠다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외롭다고 말했다. 실은 외로워요. 그러자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는데, 평생 집을 사지 않겠다, 결혼따위 절대 하지 않겠다 결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외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표정은 꼭 십대에 실연 당한 소년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뻗어 스크린에 대고 그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라이언,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당신은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잖아. 어떤 외로움은 말이 먼저 온다. 영화는 결국 '쿨'하지 않은 결말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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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벅 - 사랑, 나는 항상 그걸 참는다.극장에가다 2010. 2. 6. 21:49
드디어 을 봤다. 언제 사다놓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지난 주말, 영화는 보고싶은데 나가기는 귀찮아서 DVD를 뒤적거렸다. 역시 좋은 영화였다. 그러니까, 1월의 나는 '그 많은 세월이 전부 물거품이 됐어요'라는 대사가 있는 영화를 봤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또 1월의 나는 '쿼일은 고통이란 모름지기 속으로 조용히 삭여야 한다고 믿었다.'라는 문장이 있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주 두꺼운 소설이었다. 중간에 덮어버렸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봄에 더 잘 어울리는 소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월에 읽는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사랑, 나는 항상 그걸 참는다.' B는 내게 을 추천해주면서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이미 아담스 부부 이야기였다. 영화에서 에이미 아담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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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그러니까, 488일의 톰극장에가다 2010. 1. 25. 22:41
금요일, 홍대에 있었다. B를 기다리는 동안 브뤼트라는 잡지에 김연수가 쓴 글을 읽었다. 그건 체 게바라에 관한 글이기도 했고, 파블로 네루다에 관한 글이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보고 울컥 했던 시. 파블로 네루다 시의 어떤 구절에 대해서 김연수는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구절.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 그녀는 가끔 나를 사랑했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어딘가에서 본 영화 카피.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의 톰이다. 영화는 연애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500일동안. 연애를 하는 남자 이름은 톰. 그리고 연애를 하는 여자 이름은 썸머. 톰은 어여쁜 썸머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혹은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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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 아저씨 마음에도 불씨가 있나요?극장에가다 2010. 1. 18. 22:27
오래간만의 극장 나들이. 를 봤다. 한 1시간 정도 제대로 봤나. 앞부분은 거의 다 자버렸다. 왜냐면, 전날 늦게까지 빼갈과 맥주를 마셨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택시를 타고 새벽에 집에 왔고, 아침 일찍 출근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영화보기 전에 포테이토와 콜라가 아니라 찐-한 커피를 마셨어야 했는데. 영화의 처음. 아버지와 아들이 걷고 있었다. 황량한 길이 펼쳐졌고, 누추한 차림의 두 사람이 그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고,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것 같은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쿵쿵.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달게 자고 깨어나 보니, 두 사람은 어떤 지하창고를 발견했는데 거기가 천국이다. 따뜻하고, 먹을 것 천지다.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하고, 수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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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 그 때 왜 그랬어요?극장에가다 2009. 11. 10. 00:57
변기 위에 앉아 지난주 영화잡지를 펼쳤다. 이야기. 역시 내가 고민한 그 질문이 한 평론가의 글 중심에 놓여 있었다. "왜 그랬니?" 이선균이 서우에게 묻는다. "근데 그 때 왜 그랬니?" 누구는 를 보고 1마리 어린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고, 누구는 속 이선균이 연기한 중식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다섯 정거장 되는 거리에 메가박스가 생겼다. 그 날은 영화가 고팠던 날이라,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데도 걸어서 그 곳에 갔다. 새로 생긴 극장의 복작거리는 분위기를 상상했었는데, 건물 주위에도 건물 안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봤다. 역시 평론 속 표현처럼 나는 이선균의 그 대사가 너무 갑작스러웠던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다. 곱씹어봐도 그건 갑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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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 쇼팽이 폴란드를 떠날 때극장에가다 2009. 11. 3. 23:12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이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쇼팽의 이별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엠피쓰리플레이어에 이 곡을 집어넣었다. 에서는 커다란 두 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콜린 퍼스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 또 하나는 슬픔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콜린 퍼스가 제노바로 이사를 한 것. 이 외에는 별다른 사건이랄 건 없다. 그저 무덤덤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막내가 한 번 길을 잃는 일이 있긴 했다. 바닷가 근처 수도원이 있는 산에서였다. 아이는 엄마가 보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일 지도 모른다. 엄마는 막내가 걱정돼 이승을 계속 떠돌고 있는 걸 수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막내의 깊은 그리움이겠지. 그 일을 제외하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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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 비커스가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극장에가다 2009. 10. 25. 21:32
을 보러 극장에 갔을 때만 해도 이 영화가 무슨 영환지도 몰랐다. B씨가 기다리고 있는 영화라고 했고, 그날 마침 극장에서 예고편이 나왔다. 씨네21에 대대적인 특집기사가 실렸고, 피터 잭슨이 제작한 영화란다. 그냥 그런 정보만 가지고 지난 주 월요일, 내가 좋아하는 왕십리 CGV에 가서 영화를 봤다. 맛난 아메리카노까지 챙겨 마시고 들어가서 본 영화는 그야말로 충격. 첫 장면부터 바짝 집중해서 봤다. 모큐멘터리 형식인데, 2시간 가까이 정말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봤다. 재밌더라.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건 SF지만,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스쳐가는 영화다. SF의 탈을 쓰고 있는 정치 영화. 팜플렛을 보니 '디스트릭트 9'라는 제목은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백인들만 거주했던 지역명에서 따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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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그레이스 - 당신을 온전히 그리워 할 수 있는 시간극장에가다 2009. 10. 23. 23:00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스탠리(존 쿠삭)의 부인은 직업 군인이다. 현재 그녀는 부재 중이다. 이라크로 파병 간 상태. 스탠리에게는 사랑스런 두 딸이 있다. 착한 첫째 딸과 귀여운 둘째 딸. 엄마가 이라크에 가 있으니 불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빠는 큰 딸 하이디에서 이라크 관련 뉴스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막내 던은 엄마와 약속을 했다. 시계에 같은 시각으로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눈을 감고 서로를 생각하기로. 그게 정확히 몇 시쯤일까. 그게 궁금했다. 오후 네 시쯤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끝난 뒤였고, 오후였고, 해가 지기 전이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내내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엄마를 잃은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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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 비, 봄, 바람, 구름, 불빛, 꽃의 영화극장에가다 2009. 10. 10. 01:53
때를 알고 내리는 비. 때를 알고 스치는 바람. 싱그러운 연두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사르르 사르르 흔들리면, 꿈만 같이,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치 의 대나무 숲의 바람의 소리와 같아요. 사르르 사르르. 나뭇잎들의 소리가 한 차례 밀려나면 그 뒤로 한 때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때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꿈결처럼. 비 내리는 봄날의 밤, 불빛만 비치는 강 위에 배처럼. 그녀가 나타납니다. 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얼마나 기다렸던지요. 어느날 잡지에서 허진호 감독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정우성이 나온다 했고, 중국 여자배우가 나온다 했지요. 두보의 시 한 구절을 딴 제목이라 했지요. 나는 그의 영화라면 다 좋으니까, (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요) 기다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