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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모퉁이다방 2021. 1. 17. 18:12
퇴원을 하자마자 안방 침대 위치를 옮겼다. 침대 양옆에 작은 사이드 테이블이 있는 구조였는데 한쪽을 분리하고 침대를 벽쪽으로 붙였다. 남편은 자면서 온갖 몸부림을 치는 내가 침대에서 떨어질까 정말 불안하단다. 침대에서 떨어진 건 주문진으로 놀러가 만취했던 그 날 딱 한 번 뿐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지면 정말 큰일나니까 침대를 옮기자고 했다. 당연하게도 내 자리는 벽쪽이다. 벽 아래 두 개짜리 멀티탭을 두고 하나는 핸드폰 충전기, 하나는 집게 스탠드를 꽂아 두었다. 요즘은 배 때문에 옆으로 돌아눕는 게 편해 벽쪽으로 빵빵한 베개 하나를 두고 두 발을 휘감고 잔다. 이번주에는 배 한쪽이 단단하게 튀어나오는 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는데, 찾아보고 물어보니 배뭉침이라고 한다. 처음 겪는 증상이라 이상이 있는건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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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의 시간서재를쌓다 2021. 1. 7. 20:27
2020년 2월 27일 출간이니, 봄이 오고 있을 즈음 친구에게 선물해줬던 책이다. 책의 앞부분에 작가님의 사인이 '2020. 봄'이라고 적혀있다. 친구의 소설 선생님이고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보지도 않고 선물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무얼 읽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 생각이 났다. 친구는 당시 술술 잘 읽힌다는 후기를 전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적당한 때에 주문하려고 했는데 내 장바구니를 본 친구가 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래도 주려고 했다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새해를 앞둔 어느 날 친구의 깜짝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를 풀어보니 하얀색 스벅 다이어리와 책, 다정한 엽서가 있었다. 친구는 이렇게 썼다. "임신 기간이 너에게 어떤 시간이 될런지 궁금하다. 나는 그때는 몰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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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모퉁이다방 2021. 1. 6. 13:40
새해는 병원이었다. 1월 1일 밤, 갑자기 피가 왈칵 쏟아졌다. 말 그대로 왈칵. 연휴라고 동생이 와서 남편이랑 셋이 알찜을 포장해와 먹고 있었다. 화장실로 가는 그 짧은 순간에 몇번이나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흥건한 피였다. 덩어리도 나왔고 피가 계속 쏟아졌다. 동생과 남편이 달려왔고 나는 잘못된 것 같아, 어떡해를 연발했다. 남편이 119를 부르겠다고 했다. 동생은 언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라고 토닥여줬는데 얼굴에 겁이 가득했다. 초기에도 한번 피가 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빨간 피가 묻어나왔다. 소량이라도 빨간 피는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 날도 나는 남편에게 잘못된 것 같아를 연발했고 남편은 응급실에 가보자고 했다. 팀장님께 연락하고 응급실에 갔다. 간호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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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모퉁이다방 2020. 12. 30. 05:37
아빠는 주례사에서 너희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커덩했다. 아빠는 딸의 중요한 날, 꾸미지 않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이다. 커오는 동안 나는 자주 아빠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아빠의 외로운 어깨를 뒷모습으로 마주하면 결혼식장에서처럼 가슴이 철커덩했다. 를 읽으며 가슴이 아리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던 건 아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 아빠처럼 외로웠던 사람이 여기 또 있었네. 지금보다 젊은 시절 아빠는 과묵했다. 힘들고 외로워도 그 감정들을 잘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바둑을 두고 밤시간 사무실에서 혼자 시간을 오래 보내셨다. 요즘의 아빠는 수다쟁이다. 그동안 못했던 말을 다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저 먼 옛날 얘기도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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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서재를쌓다 2020. 12. 13. 16:56
추위에도 익숙해졌나 생각했던 어느 아침, 일어나 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창문으로 내다보니 밖은 새하얗다. 이미 4월도 끝나려 하는데 완전한 설경이었다. 깜짝 놀라서 곧바로 딸에게 말해줬다. 딸은 당시 열 살. 겨울을 좋아하고 눈도 무척 좋아하는 딸이다. 몹시 기뻐하며 둘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옆집 사람이 이미 스키복을 껴입고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웃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눈에 신바람이 난 우리를 보고 "맞다, 잠깐 기다려봐요"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그릇과 숟가락, 그리고 시럽이 들려 있었다. 그릇은 비어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걸까 싶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갓 쌓인 새하얀 눈을 펐다. 그릇에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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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모퉁이다방 2020. 12. 6. 08:37
종로에서였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정말 누군지 몰라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내 뒤통수에 대고 엄청 섭섭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봤는데 생김새가 조금 달라졌지만 아무개를 닮은 거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아무개가 그동안 무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개는 특유의 엄청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쫓아왔다. 그 누군가는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며 나를 혼냈다. 누군지 아시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모른 척 하면 안되죠. 나를 훈계했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이 순간 얼더니 맞아요, 하며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순간 서러워져 엉엉 울었다. 그렇게 엉엉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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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에서 늦가을모퉁이다방 2020. 11. 28. 09:39
이번주 바람이 무척 거세졌다. 버스를 기다리며 찬바람을 맞고 있는데 손이 시렸다. 이제 겨울이 왔구나 싶었다. 늦잠을 자리라 다짐했지만, 6시에 눈이 떠졌다. 이불 속에서 지난 사진들을 보다가 늦여름에서 늦가을 사이 사진들을 정리해두자고 생각했다. 많은 일이 없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올 가을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좋았던 재택근무 시절. 아끼는 엄마잔을 꺼내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근무 준비. 주말에는 살 뺀다고 밥이 일체 들어가지 않은 김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아직, 여름. 아직, 초록. 실버스타의 소주 칠링. 평일에 집에서 이런 구름을 볼 수 있었던 건 재택 덕분이었다. 동생이 각자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랜선술자리를 갖자고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책 사고 받은 사은품 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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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서재를쌓다 2020. 11. 7. 06:47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이 시시때때로 나타났으나 포스트잇을 가지고 다니지 못해 표시하질 못했다. 집에 가서 얼른 붙여둬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붙이려고 하면 그 구절들을 찾질 못하겠는 거다. 지난 남해여행에 가져갔다 앞부분만 살짝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어느 시인이 SNS에 무척 좋다는 글을 남긴 걸 보고 책장에서 꺼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짤막한 글들이라 읽기 좋았는데, 한참을 읽다 생각했다. 시와 산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구나. 제목이 시와 산책인 줄도 모르고. 이 책을 읽는동안 이소라편을 봤는데 예능 보면서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다. 참가자들은 이소라에게 눈물섞인 진심을 전했고 이소라는 이런 마음을 받아본 지 무척 오래되었다고, 노래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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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리틀 라이즈티비를보다 2020. 10. 11. 18:08
시즌 1을 끝내고 '몬터레이'를 여러 번 검색해 봤다. 이 드라마에는 니콜키드 만, 리즈 위더스푼 등 화려한 스타들이 줄이어 등장하는데 그들보다 나는 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는 마을의 분위기에 마음을 뺏겼다. 몬터레이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항구도시로 옛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고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일년 내내 온난하고 강수량이 적어 해안 휴양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역사가 오래된 재즈 축제가 열리고, 유명한 수족관도 있는 곳이란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사는 어마어마한 저택 뒤로, 혹은 앞으로 몬터레이 바다가 보인다. 집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바다가 연결되어 있어 백사장을 밟을 수 있기도 하고, 집 안 수영장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도 있다. 통유리창인 안방에서 파도가 생생히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