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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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극장에가다 2014. 9. 11. 22:18
그의 우직하고 건강한 청춘을 보면서, 내 지나간 청춘이 그리웠다. 내 청춘도 솔직했었다. 내 청춘도 어느 날은 실패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처럼 튼튼하고 유쾌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그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가 안나라면 만섭이랑 사귄다! 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시도때도 없이 우는 김소연을 보고 좀 주책이다 생각했는데 내가 딱 그렇다. 이 유쾌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두어 번 훔쳤다. 반짝반짝 빛나라, 청춘.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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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극장에가다 2014. 8. 30. 16:07
지난 수요일, 신경주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맥주 한 캔과 쥐포를 샀다. 신경주역과 동대구역 중간 즈음 맥주캔을 땄다. 동대구역에서 롯데리아 봉지를 든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냄새로 보아서는 불고기 버거를 사신 듯 했는데, 봉지 소리 때문인지 내내 드시지 못하고 있으시다가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다 다시 들어오셨는데 짐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기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각사각 봉지 소리와 달큰한 불고기 소스 냄새가 났다. 일요일, 서울역에서 시네마 열차 시간표를 보고 결심했다. 올라올 때는 시네마 열차를 타기로. 상행선 영화가 이었다. 동생이 보고와서 너무 좋았다고 한 영화. 게다가 키이라 나이틀리. 나흘동안 경주에 있었다. 닷새 일정이었는데, 토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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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극장에가다 2014. 8. 6. 22:05
울어 버렸다, 고 친구는 말했다. 그 말만 듣고 보러 갔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으로. 피아노를 치는 남자는 말을 잃었다. 어릴 때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난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부모를 잃은 현장에 자신도 함께였다고 했다. 물론 그는 말하지 않으므로 여기저기서 추측하고 들은 이야기이다. 남자는 이모들의 댄스 강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집에서는 나이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인 콩쿠르 연습을 한다. 피아노를 치면서 커다란 설탕이 박힌 게 분명한 슈케트라는 빵을 즐겨 먹는다. 그 뿐. 오직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담 프루스트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사는 프루스트의 집으로 가던 도중 레코드를 떨어뜨리고,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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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극장에가다 2014. 8. 3. 16:30
아침이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 해가 떠오르기 전, 한 사람이 숨을 거뒀다. 늙은 남자는 도쿄의 한 병원 옥상에 있다. 지금 막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깨어나기 시작한 도쿄의 아침을 내려다보고 있다. 늙은 남자를 찾아 젊은 남자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늙은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말한다. 쇼지, 오늘 니 엄마가 죽었다. 사토시는 진짜 배우가 된 것 같다. 예전에도 잘했지만, 최근의 연기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의 팬이었던 것이 뿌듯할 정도다. 이 영화에서 사토시가 제일 빛났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첫째 아들이, 첫째 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좀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아는 동생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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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잡극장에가다 2014. 7. 21. 22:23
토요일에 부천에 다녀왔다. 간만에 영화를 연이어 봤다. 을 보고, 을 봤다. Y언니가 올 부천의 화제작 예매에 일찌감치 성공했다. 그것도 쾌적한 자리로. 아마도 나의 올해 부천은 이 두 편이 다일 듯 한데, 두 영화 다 좋았다. 둘 다 일본영화인데 스타일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나 달라서 연이어 보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도 좋았지만, 이 더 좋았다. 간만에 극장에서 여러 번 크게 소리내어 웃은 듯. 유쾌하고 상쾌한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숲이다. 내내 나무가 나온다. 주인공이 대입에 실패하고 '허무하게' 고른 직업이 임업 관리직.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쌓인 숲에서 나무를 돌보고, 베고, 심는 일이다. 이야기는 뻔했다.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골에서 기묘한 음식들, 곤충들과 고된 작업으로 힘들어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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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뷰티극장에가다 2014. 6. 29. 12:19
사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영화가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단 한 편의 소설로 성공한 뒤, 다음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 남자는 세 명의 여자를 만난다. 첫 번째 여자는 첫사랑. 두 번째 여자는 친구의 딸인 스트립 댄서. 세 번째 여자는 104살의 수녀. 첫 번째 여자.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듣는다.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그 주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진짜 슬픔이었다. 두 번째 여자. 병을 치료하느라 번 돈을 다 썼던 스트립 댄서로 그보다 먼저 죽는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알아 차릴 수 있는 여자였다. 세 번째 여자. 104살의 이가 다 빠진 수녀가 홍학떼가 남자 집의 테라스로 몰려들던 믿을 수 없이 신비로웠던 새벽에 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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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극장에가다 2014. 6. 7. 14:47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이 영화를 특별히 만든 건 리스본의 풍경과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 같다. 주인공 그레고리언스는 어느 날,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빨간 코트의 여자를 구하고 그녀가 남기고 간 한 권의 책과 마주한다. 그 책 속에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코트와 책과 티켓을 전해주기 위해 역으로 향한다. 간신히 열차 시간에 도착한 남자. 남자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얼떨결에 열차를 타게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그리고 그 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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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 H에게극장에가다 2014. 5. 31. 16:20
반성한다. 나는 너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었었다. 그건 곧 끝나버릴 거라고, 너는 지금 그것에 미쳐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라고 단정했었다. 달콤함은 곧 끝날 것이고, 현실이 코앞에 다가오면 너도 너의 지금 그 사랑이 힘겨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니가 틀렸다고 자만했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극장 시간표를 보다 마침 시간이 딱 맞아 달려가서 본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형의 컴퓨터와 하는 사랑. 영화는 달콤했지만, 나는 그 달콤함에 취해 곧 끝나버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을 기다렸다. 영화의 결말 부분, 내가 예상한 대로 사랑의 끝이 왔다. 사랑도 끝났고, 영화도 끝났다. 나는 내가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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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극장에가다 2014. 3. 15. 15:17
사실은 어제 보고 싶었다. 퇴근하고 늦은 시간에 혼자 보고 밤산책하며 집까지 걷고 싶었다. 그러면 요란하지 않고 완벽한 금요일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야근을 하는 바람에 계획 취소. 대신 오늘 조조로 봤다.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사람이 많지 않을 때 보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가지고 들어갔는데, 커피집에서 가져온 휴지가 모자랐다. 영화 보는 내내 울었다. 몇 번은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흐느끼며 울었다. 이야기는 예고편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짐작할 수 있었던 그대로 이어졌다. 새로울 것도 없었다.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좋았다. 우리 이제 더이상 그러지 말자고. 그렇게 악해지지 말자고. 나빠지지 말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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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극장에가다 2014. 2. 11. 22:16
을 봤다. 아무 것도 모른채 보았으면 어땠을까. 길을 걷다 포스터를 보고 무슨 영화지, 하고 충동적으로 보았으면 어땠을까. 평론가들이 준 별점이 너무 좋아서 잔뜩 기대를 하고 봤다. 사실 그 별점 때문에 보러 간 셈이다. 나 언제 벅차 올라야 하는거야, 중반부터 내내 생각했던 것 같다. 내겐 좀 어려웠다. 영화를 본 뒤, 이해가 안 되서 찾아본 이야기들 중에 재미난 것은 많았지만 영화보는 내내 온전히 마음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서촌을 걸었는데, 가려던 술집이 문을 닫아 그 앞에 있던 박노수 가옥에 들어갔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집인데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살았다고 한다. 이층의 벽돌집이었다. 고인이 된 박노수 화백의 가족이 기증을 해 미술관으로 개장을 했단다. 정원도 있었다. 작은 동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