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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긴어게인
    극장에가다 2014. 8. 30. 16:07

     

      

        지난 수요일, 신경주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맥주 한 캔과 쥐포를 샀다. 신경주역과 동대구역 중간 즈음 맥주캔을 땄다. 동대구역에서 롯데리아 봉지를 든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냄새로 보아서는 불고기 버거를 사신 듯 했는데, 봉지 소리 때문인지 내내 드시지 못하고 있으시다가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다 다시 들어오셨는데 짐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기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각사각 봉지 소리와 달큰한 불고기 소스 냄새가 났다. 일요일, 서울역에서 시네마 열차 시간표를 보고 결심했다. 올라올 때는 시네마 열차를 타기로. 상행선 영화가 <비긴어게인>이었다. 동생이 보고와서 너무 좋았다고 한 영화. 게다가 키이라 나이틀리.  

     

       나흘동안 경주에 있었다. 닷새 일정이었는데, 토요일에는 어쩐지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일요일에 출발했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게 아쉽기도 했지만, 좋기도 했다. 더 외로워지기 위해 떠난 여행이기도 했는데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 날은 엄마를 불러 좋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경주의 모든 무덤 앞에서 합장을 했고, 몇백년은 됐을 것 같은 커다란 나무를 만나면 기둥에 손을 대고 되뇌었다.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지난 여름, 유난히 자신감이 떨어졌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서른 다섯에도 성장통이라는 게 있나보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싱어송라이터이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왔다. 남자친구도 음악을 하는데, 그의 음악이 담긴 영화가 대히트를 한 덕에 특급 대우를 받으며 미국으로 입성한 것이다. 하지만 마크 러팔로를 만났을 때는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상태. 그는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키이라 나이틀리의 노래를 듣고서 마크 러팔로는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한다. 당신의 음악이 좋다고. 그는 한때 잘 나가는 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헤어져 살고, 회사로부터도 해고 통보를 받은 빈털털이.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스튜디오를 구하지 못해 뉴욕의 거리 위에서 데모를 만들기 시작한다. 당연히 지나가는 다양한 소음들이 함께 녹음된다.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라고 외치는 옆 건물 아저씨의 고함소리까지. 둘은 그것도 나름의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키이라 나이틀리는 혼자가 된다. 그건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택한 거였다. 그녀는 남들이 단점이라고 지적한 그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그것들을 모두 안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언제나 당당했다. 마지막 장면, 그를 완전히 떠나 보내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밤 거리. 그 길 위에서 그녀는 조금 울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 계절동안의 자신의 성장을 느꼈다.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났고, 서울에 도착했다. 맥주는 다 마셨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노을이 무척 예뻤다. 노을도 알았을 거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무척 예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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