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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 - H에게
    극장에가다 2014. 5. 31. 16:20

     

     

     

        반성한다. 나는 너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었었다. 그건 곧 끝나버릴 거라고, 너는 지금 그것에 미쳐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라고 단정했었다. 달콤함은 곧 끝날 것이고, 현실이 코앞에 다가오면 너도 너의 지금 그 사랑이 힘겨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니가 틀렸다고 자만했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극장 시간표를 보다 마침 시간이 딱 맞아 달려가서 본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형의 컴퓨터와 하는 사랑. 영화는 달콤했지만, 나는 그 달콤함에 취해 곧 끝나버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을 기다렸다. 영화의 결말 부분, 내가 예상한 대로 사랑의 끝이 왔다. 사랑도 끝났고, 영화도 끝났다. 나는 내가 뭔가 냉소적이고 부정적이고 심술궂은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서도 계속 이 영화 생각이 났다. 그의 표정과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날 밤, 깨달았다. 내가 바랬던 대로 컴퓨터와의 사랑은 끝났다. 그녀는 처음부터 형체가 없었고, 무형의 감정만이 그의 마음 속에 존재했다. 그와 그녀는 둘이면서도 완벽한 한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사랑의 달콤함에 미쳐 있었다. 만질 수 없었지만, 그래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이 있으니 그녀도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떠났을 때, 그가 울었던가. 그는 전처에게 편지를 썼다. 지나가 버린 사랑에 대해, 자신이 더 노력하지 못했음에 대해,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그 잊혀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할 무형의 사랑에 대해. 그건 '그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떠났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몸이 있었던지 없었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여자가 나타났고, 둘은 동시에 사랑에 빠졌으며, 열렬히 사랑하고 질투했고, 가슴 아프게 이별했다. 이별하고 나니 몸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 끝나면 모든 육체는 사라지니까. 마음만이 존재하니까. 모든 사랑은 사랑이라고. 단 하나의 사랑도 사랑이 아닌 사랑은 없다고. 나는 이제 어떤 사랑도 부정하지 않겠다고.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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